김범석 쿠팡Inc 의장 |
쿠팡 지분을 보유한 미국 정보기술(IT) 투자회사인 그린옥스와 알티미터가 한국 정부의 쿠팡 차별로 큰 손실을 봤다고 주장하며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무역구제 조치를 해달라고 청원했다. 이들은 또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 절차에 착수하겠다는 의향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미국 정부의 직접적인 개입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쿠팡의 로비로 움직였던 미 의회 중심의 문제 제기와 차원이 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사들 “이 대통령과 긴밀한 중국 기업 보호하려 쿠팡 차별했다” 근거 없는 주장 펼쳐
이들 투자사는 22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내고 USTR에 한국 정부의 쿠팡 관련 조치를 조사하고, 무역법 301조에 근거해 관세 및 기타 제재를 포함한 적절한 무역 구제 조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 이후 한국 당국이 쿠팡을 겨냥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수십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또 투자사들은 이재명 대통령과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 앞으로 보낸 중재의향서에서 “개인정보 유출은 핑계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이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 내 중국 대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쿠팡이 잠식하자, 한국 정부가 공정위·국세청·금감원·노동부 등 여러 기관을 동시다발적으로 동원해 쿠팡을 겨냥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 대통령에게 ‘친중 프레임’을 씌워 트럼프 행정부의 개입을 끌어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 같은 한국 정부의 대응이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전형적으로 관찰되는 자의적 행동이며, 국제중재에서 ‘간접 수용’의 징후로 인정돼 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쿠팡에 대한 과도한 대응의 사례로 김민석 국무총리가 “쿠팡 유출 사건에 대한 법 집행은 마피아를 소탕할 때와 같은 각오로 임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적시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업무보고에서 김 총리가 쿠팡에 대한 언급 없이 금융감독 기관들을 향해 시장 질서를 엄격하게 바로잡아달라고 주문한 것이었는데, 이들 투자사는 쿠팡과 관련된 것이라고 연결 지은 것이다.
미 매체인 액시오스는 “미국 벤처 투자자들이 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이번 조치는 한·미 간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투자사의 움직임에 다른 쿠팡 투자자들도 추가로 합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임시대표가 3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쿠팡 침해사고 및 개인정보 유출, 불공정 거래, 노동환경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청문회에서 위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린옥스·알티미터는 어떤 회사?…‘트럼프 계좌’ 이끈 사업가
액시오스에 따르면 그린옥스는 11억달러(약 1조6115억원) 이상에 해당하는 쿠팡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정부의 차별 조치로 인해 수억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한다. 그린옥스의 설립자인 닐 메타는 현 쿠팡 이사이기도 하다. 그는 2010년 쿠팡 이사진에 합류했고, 2012년 그린옥스를 설립한 후 현재까지 대표 파트너로 활동하고 있다.
알티미터가 보유한 쿠팡 주식은 2억1000만달러로 평가된다. 알티미터의 설립자인 브래드 거스트너는 ‘인베스트 아메리카’라는 비영리 정책 이니셔티브를 이끌며 이른바 ‘트럼프 계좌’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트럼프 계좌 프로그램은 미국 정부가 아동에게 투자계좌를 만들어 주고, 주식·자본시장에 조기 투자할 수 있도록 해 자산 형성을 돕는다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지난해 7월 발효된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에 반영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럼프 계좌’에 만족해하며 거스트너를 “우리 정책에 적극 참여한 사업 지도자”라고 사람들 앞에서 칭찬한 바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되나
쿠팡 투자자들이 USTR에 조사를 청원한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정을 위반하거나 불합리하고 차별적 관행으로 미국의 무역을 제한할 경우 이에 대응할 권한을 행정부에 부여한다. 이해관계자 누구나 조사를 청원할 수 있으며, USTR은 청원 접수 45일 내로 조사 개시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는 앞으로 45일 안에 쿠팡 사태에 대한 입장을 어떤 방향으로든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USTR이 조사 개시를 결정하면 한국 정부와 협의에 나서게 된다. 협의를 통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고, 조사에서 미국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판단할 경우 USTR은 관세나 수입을 제한하는 기타 조치 등으로 한국에 보복할 수 있다. 만약 USTR이 조사를 개시하면서 쿠팡만 다루지 않고 한국의 디지털 분야 규제 전반을 문제 삼으면 사안이 더 커질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국회에서 논의된 온라인 플랫폼법과 최근 제정된 허위조작정보근절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우려를 표명해왔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중재 신청은 본격적인 절차에 착수하기 전 90일간의 ‘냉각기간’을 갖게 돼 있다. 이 기간에 한국 정부가 중재를 제기한 측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90일 후 심리가 시작된다.
워싱턴 | 정유진 특파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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