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라는 숫자가 반복되는 건, 이 프로젝트가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영상원 30주년을 기념하여 같은해 30주년을 맞은 CJ ENM과의 합작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개봉한 영화는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커뮤니티 비프 섹션에서 <프로젝트 30>이라는 이름으로 공개된 바 있다.
한예종 출신으로 꾸려진 감독진이 실로 화려하다. <세계의 주인> 윤가은 감독, <만약에 우리> 김도영 감독, <탈주> 이종필 감독 등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젊은 감독들은 물론 김홍준·김형구 등 한예종에서 교수를 역임했던 감독들과 재학 중인 학생들까지, 다양한 세대의 연출자들이 참여했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되는 30가지 이유>를 기획, 제작한 김순모 제작사 아토 대표(오른쪽)와 김성현 CJENM PD가 서울 상암동 CJENM센터 회의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어떻게 성사됐을까. 경향신문은 한예종 영상원 출신 기획자들이 설립한 제작사 아토(ATO)의 김순모 대표와 CJ ENM 영화 투자 담당 김성현 PD를 19일 서울 상암동 CJ ENM센터에서 만나 영화 뒷이야기를 들었다.
아토가 CJ ENM 측에 기획서를 제안한 건 지난해 초의 일이다. 같은 해 9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까지 반 년 안에 영화를 완성해야 하는 촉박한 일정에서 섭외에만 두 달이 걸렸다. 김 대표는 “재미있는 기회라고 많이들 생각해주셨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거절한 분들도 많다”고 했다.
섭외 과정에서 ‘3분짜리 영화가 뭐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일반적인 숏폼 영상과 달리 (영화적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재기발랄한 무언가를 3분 안에 담아낸다면 그 또한 영화가 될 수 있지 않겠냐고 생각했다”고 했다.
‘오멘(징조·조짐)’이라는 대주제와 영상원 30주년이라는 취지. 그 이외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가는 철저히 감독에게 맡겼다. 대형 투자·배급사와 함께하면서 감독에게 전적인 자유가 주어지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김 PD는 “(다른 때와 달리) 이번 프로젝트는 한예종과 아토에 많은 걸 맡겼다”며 “취지가 중요했고, 특히 단편은 창의성이 발휘돼야 하는 영역”이라고 했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되는 30가지 이유>를 기획하고 제작한 김순모 제작사 아토 대표(오른쪽)와 김성현 CJENM PD가 19일 서울 상암동 CJENM센터 회의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흥행의 부담과 자본의 간섭에서 벗어나서일까. 김 대표는 “감독들이 만들면서 행복해하더라”고 전했다. 가족들과 유럽에 있던 김형구 촬영감독은 체코 프라하 현지에서 장비를 렌트해 단편 <TRICET, 서른>을 완성했다고 한다. “아무거나 찍어오셔도 된다”는 김 대표의 말에 낸 용기였다.
이처럼 자유롭게 촬영된 단편 30편은 공통 주제가 있었다는 걸 믿기 어려울 정도로 소재와 형식이 제각각이다. 그래도 자주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면, ‘영화가 망했다던데,’ 하는 위기 의식이다. ‘영화’라는 이름의 여자의 장례식장을 비추기도 하고(오세연, <어느날 영화가 죽었습니다>) 챗 GPT에 영화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기도(이요섭, <미래 영화>) 한다. 자조적인 유머이지만 그를 풀어내는 방식은 저마다의 재기발랄함을 지니고 있다. ‘그래도 한국 영화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게 되는 이유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중 오세연 감독의 <어느날 영화가 죽었습니다>에서 관에 들어간 ‘영화’. CJ ENM 제공. |
이번 극장판은 전편 합본으로 공개된 부산국제영화제 때와는 달리, ‘예열’ ‘심연’ ‘폭발’이라는 3개 주제로 10편씩 묶어 상영된다. <소공녀> 전고운 감독이 총괄 디렉터를 맡아 소제목과 단편들의 배치를 조율했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는 정가영 감독의 동명 단편에서 제목을 따온 것이다.
영화는 감독의 유명세를 강조하지 않고, 단편 영화제처럼 각 단편을 나란히 조명한다. 김 대표는 “상업영화라면 당연히 감독의 이름이 중요하지만, 우린 그런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3막을 나눌 때 감독의 브랜드를 고려하지 않고 각 영화가 지닌 힘만 고려해 배치했다”고 했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중 김도영 감독의 단편 <내 영화는 들어간다>에 출연한 배우 정유미. CJ ENM 제공 |
한예종 영상원과 아토, CJ ENM이 이번 협업을 통해 쌓은 건 또 다른 협력을 위한 토대다. 한국 영화가 위기일 수록 신진 창작자 발굴에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김 PD는 “제2의 봉준호, 박찬욱가 나와야 한다는 건 영화계가 여전히 안고 있는 숙제”라며 “이번을 계기로 한예종과의 산학협력을 늘리는 등 신인 발굴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4일부터 일주일간 상영된 1막 ‘예열’에 이어 현재는 2막 ‘심연’이 상영되고 있다. 28일부터는 3막 ‘폭발’이, 다음달 4일부터는 30편을 모두 묶은 합본이 5일간 상영된다. CJ CGV 단독 개봉으로 1·2·3막은 3000원, 합본은 8000원에 볼 수 있다.
<당신이 영화를 그만두면 안 되는 30가지 이유> 포스터. CJ ENM 제공 |
감독들의 참여 소감
<내 영화는 들어간다> 김도영 감독 (<만약에 우리>, <82년생 김지영>)
“짧은 단편이 주는 자유로움에 행복했다.”
<우리가 죽기 전에> 남궁선 감독 (<고백의 역사>)
“오히려 굉장한 걸 할 수 없는 제약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쏟아져나오는 화두와 에너지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만감이 교차한다> 윤가은 감독 (<우리들>, <세계의 주인>)
“뭣도 모르던 시절, 친구들과 머리 맞대고 등 돌리고 얼싸 안으며 영화 만들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스케줄 속에서 허둥지둥대며 영화를 만드는 순수한 기쁨과 고통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바세린> 이경미 감독 (<비밀은 없다>)
“나는 죽어도 죽어도 이대로는 그만 둘 수 없다.”
<꿩> 이종필 감독 (<탈주>)
“영상원 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프로젝트에, 학생 시절 영화를 만들며 느꼈던 즐거움을 떠올리고 영화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참여했다.”
<내 영화는 들어간다> 김도영 감독 (<만약에 우리>, <82년생 김지영>)
“짧은 단편이 주는 자유로움에 행복했다.”
<우리가 죽기 전에> 남궁선 감독 (<고백의 역사>)
“오히려 굉장한 걸 할 수 없는 제약 조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쏟아져나오는 화두와 에너지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
<만감이 교차한다> 윤가은 감독 (<우리들>, <세계의 주인>)
“뭣도 모르던 시절, 친구들과 머리 맞대고 등 돌리고 얼싸 안으며 영화 만들던 학창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스케줄 속에서 허둥지둥대며 영화를 만드는 순수한 기쁨과 고통을 오랜만에 다시 느꼈다.”
<바세린> 이경미 감독 (<비밀은 없다>)
“나는 죽어도 죽어도 이대로는 그만 둘 수 없다.”
<꿩> 이종필 감독 (<탈주>)
“영상원 3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프로젝트에, 학생 시절 영화를 만들며 느꼈던 즐거움을 떠올리고 영화의 위기를 말하는 지금,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영화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참여했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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