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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머니 姓으로 살고 싶어요”… 딸 소원 들어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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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 내팽개치고 가출한 무책임한 아버지
연락 두절… 실종 신고·이혼 절차도 마쳐
공익법 재단 도움으로 姓 변경 허가 받아
가족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간 아버지의 딸이 “나는 어머니의 성으로 살고 싶다”며 법원에 성본(姓本) 변경 허가를 청구해 수개월 만에 인용 결정을 받아낸 사연이 뒤늦게 전해졌다.

세계일보

세계일보 자료사진


21일 공익 인권법 재단 ‘공감’에 따르면 A(여)씨는 지난 2025년 공감 사무실을 찾아 성본 변경 허가 청구에 관해 상담했다. “저는 주(主)양육자였던 어머니의 성을 따르고 싶습니다”라는 말로 운을 뗀 A씨는 자신의 가정사에 관해 얘기했다. 가정에 소홀했던 아버지가 어머니와 어린 A씨를 놔두고 무책임하게 가출한 점, 이후 연락이 두절돼 어머니는 실종 신고를 하고 이혼 절차까지 마쳤다는 점 등을 담담하게 소개했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헌법재판소가 민법의 호주(戶主) 제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에 따라 ‘자(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라는 민법 조항이 효력을 상실했다. 국회는 민법을 고쳐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혼인 신고 시 모(母)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라고 새롭게 규정했다. 이 조항은 2008년 1월부터 시행 중이다.

얼핏 자녀가 아버지 대신 어머니 성을 따를 길을 활짝 연 것처럼 보이나 실은 여러 제약이 따른다. 자녀가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려면 부모가 혼인 신고 때 미리 그렇게 협의한 다음 신고서에 표기를 해야 한다. A씨처럼 민법 개정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은 구체적 이유를 들어 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를 청구해 반드시 인용 결정을 받아야만 한다. 호주제 폐지 이후에도 한국 사회에 아버지 성을 우선하는 ‘부성주의’ 원칙은 엄연히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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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의 사연을 접한 공감은 법원을 상대로 한 성본 변경 허가 청구에 법률적 조력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부성주의 원칙에 대한 문제 의식을 토대로 성 변경에 대한 A씨의 확고한 의지, 부모와의 관계, 성 변경이 이뤄졌을 때 A씨가 얻을 실질적 이익 등을 꼼꼼하게 서술한 뒤 법원에 성본 변경 허가 청구를 제기했다.

이에 법원은 “A씨 아버지의 의사도 확인해야 한다”며 보정 명령을 내렸다. 어렵게 확보한 아버지의 주소로 A씨 성의 변경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묻는 서면을 보냈으나 부친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그는 여러 차례에 걸친 법원의 출석 요구에도 끝내 불응했다. 판사 앞에 선 A씨는 “성본 변경 절차가 까다롭고 낯설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저처럼 가족이 아닌 사람의 성씨의 그늘에서 고통받고 있을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며 “제 사건이 선례가 되어 힘을 주고 싶다”고 진술했다.

해가 바뀌어 지난 1월6일 법원은 ‘A씨의 성본 변경을 허가한다’라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다. 판사는 구체적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A씨의 승소를 이끌어낸 공감 소속 이도경 변호사는 “성인 자녀가 진지한 고민 끝에 어머니 성을 물려받기로 결심했다면 법원은 이를 허가함이 헌법상 성평등 원칙에 부합하는 결정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어머니 성을 따르는 것이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지는 사회가 올 날을 기대해 본다”고 덧붙였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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