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몇 잔이나 드세요?”라는 질문에 70대 김모 씨는 잠시 손가락을 접어 세더니 웃으며 답했다. “아침에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오후에 또 한 잔…. 집에 가기 전에 한 잔 더 하면 네 잔은 기본이죠.”
노년기에 악력 저하와 체중 감소가 커피 섭취량이 많은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덜 나타났다. 사진 =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
그저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가 노년의 ‘노쇠’를 늦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노쇠는 단순한 체력 저하가 아니다. 근력과 활동성이 빠르게 떨어지고, 작은 충격에도 건강이 크게 흔들리는 상태를 말한다. 의료계에선 ‘비정상적 노화 과정’으로 분류한다.
◆7년을 따라가 보니…커피 많이 마신 쪽이 더 버텼다
21일 의학계에 따르면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장기 추적 연구는 이 같은 통념에 질문을 던진다. 연구진은 55세 이상 성인 1100여 명을 대상으로 약 7년간 생활 습관과 건강 변화를 관찰했다. 참가자들은 하루 커피 섭취량에 따라 다섯 그룹으로 나뉘었고, 체중 변화와 근력, 피로도, 보행 속도, 신체 활동량 등을 종합해 노쇠 여부를 판단했다.
결과는 비교적 선명했다. 하루 4~6잔의 커피를 마신 그룹은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는 그룹보다 노쇠 위험이 눈에 띄게 낮았다. 하루 6잔 이상 마신 사람들 역시 비슷한 보호 효과를 보였다. 흥미로운 점은 하루 2~4잔만 마신 경우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노쇠 발생률이 유의미하게 낮아졌다는 점이다.
특히 차이가 컸던 항목은 근력 유지와 체중 변화였다. 노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악력 저하와 급격한 체중 감소가 커피 섭취량이 많은 집단에서 상대적으로 덜 나타났다.
습관처럼 마시던 커피가 노년기 근력과 활동성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 |
◆“카페인만의 효과는 아니다”…디카페인에서도 비슷한 결과
이번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또 있다. 카페인이 제거된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 사람들에서도 유사한 경향이 관찰됐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커피 속 폴리페놀 등 다양한 생리활성 성분이 체내 염증 반응을 낮추고 산화 스트레스를 줄였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노쇠는 근육 감소와 만성 염증, 신경·호르몬 조절 이상이 겹치며 진행된다. 이 단계에 이르면 가벼운 감기나 낙상도 폐렴이나 장기 입원으로 이어지기 쉽다. 의료계 관계자는 “노쇠한 상태는 몸이 버틸 수 있는 여유 자체가 줄어든 상황”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연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유사한 결과는 다른 나라 연구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포르투갈 연구진은 커피 속 생리활성 물질이 염증 조절과 인슐린 민감성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고, 스페인에서 진행된 대규모 연구에서는 중년 이후 하루 네 잔의 커피 섭취가 사망 위험 감소와 연관된다는 결과도 나왔다.
7년간의 추적 연구에서 커피 섭취량이 많은 집단일수록 근육 감소와 노쇠 위험이 낮게 나타났다. 게티이미지 |
다만 전문가들은 “커피가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수면 장애나 위장 질환이 있는 경우 과도한 섭취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적정량의 커피가 노년기 건강을 지탱하는 하나의 생활 습관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이번 연구가 던지는 분명한 메시지다.
김씨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괜히 커피 마실 때 눈치 보였는데, 이제는 좀 당당해도 되겠네요.” 하루 네 잔. 별 뜻 없이 이어온 작은 습관이 노년의 버팀목이 될 수 있을지, 커피잔을 드는 손에 새로운 의미가 실리고 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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