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20일 서울 서초구 국제전자센터에서 열린 제4차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사실상 의대 증원을 전제로 한 ‘지역의사제’ 지원 요건과 선발 방식 등을 담은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의료계는 정부가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이 결정되기도 전에 증원 이후 배치 방안부터 구체화했다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증원 반대”를 고수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350명 증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부는 다음 달 2일까지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및 시행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20일 밝혔다. 지역의사제 전형은 서울을 제외한 9개 권역(대전·충남, 충북, 광주, 전북, 대구·경북, 부산·울산·경남, 강원, 제주, 경기·인천)에 소재한 32개 의과대학에 적용한다. 지원자는 해당 의과대학이 소재하거나 인접한 지역에서 중·고교를 졸업해야 한다. 다만, 2026학년도 이전에 중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경우 해당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되는 등 일정 요건을 갖추면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가 20일 입법예고한 ‘지역의사선발전형 적용 지역 및 의과대학’ 목록. 보건복지부 제공 |
지역의사로 선발된 학생에게는 입학금과 등록금은 물론, 교재비와 기숙사비, 식비 등 생활비 등 전액 지원한다. 대신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 동안 의료취약지 등 지정된 지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특히 전문의 수련 과정에서 소위 ‘빅5’ 병원으로의 이탈을 막기 위해, 수련 병원 선택 시 서울 소재 병원은 원천적으로 선택할 수 없도록 했다. 경기·인천 등 수도권이나 지방 소재 병원에서만 수련이 가능한 셈이다.
의무복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원받은 장학금에 법정 이자를 더해 반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위반 정도에 따라 의사 면허 자격정지·취소도 가능하다. 재발급 제한 등 강력한 제재를 통해 제도의 실효성을 담보하겠다는 것이 정부 구상이다.
이날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은 4차 회의를 열고 2027학년도 의대 정원 증원 규모 논의에 본격 착수했다. 앞선 회의에서 ‘증원분 전원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한다’는 원칙을 정한 뒤 열린 회의인 만큼, 구체적인 ‘숫자’가 논의 대상에 올랐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보정심 위원장)은 모두발언에서 “의료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보고한 수요·공급 모형을 조합한 모든 모형 뿐만 아니라 의대 교육의 질 제고를 위한 교육 여건 개선 현황도 함께 검토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날 회의에서 보정심은 추계위가 제시한 12개 추계 모형 중 미래 의료환경 및 보건의료 정책 변화를 함께 고려한 6개 모형으로 좁혀서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해당 6개 시나리오에 따르면, 2037년 기준 의사 부족 규모는 최소 2530명에서 최대 4800명 수준으로 분석됐다. 또 2030년부터 공공의대 등이 신입생 모집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미래 필요 인력 중 600명 규모를 제외하고 일반 의과대학 양성 규모를 심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가 수급추계위원회의 12개 시나리오 중 논의 대상으로 압축한 6개 모델은 수요 모델 기준 4번, 5번, 6번을 활용한 조합들이다. 보건복지부 제공 |
의대 교육 여건과 관련해서는 교육부가 서울 소재 8개 대학을 제외한 32개 의과대학을 점검한 결과, 의학교육 평가인증 기준에 따른 여건이 전반적으로 확보돼 있다고 보고했다. 복지부는 오는 22일 전문가 공개토론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하고, 다음 보정심에서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의료계는 증원 폭을 최소화하기 위한 묘수 찾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의협 차원에서 ‘350명 증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협상에 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증원 전 정원(3058명)의 약 10% 수준으로 2024년 2월 정부가 ‘2000명 증원’을 발표했을 당시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교육에 차질이 없는 적정 증원 규모’로 거론한 수치이기도 하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최근 의협 내부 회의 과정에서 ‘조만간 발표될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를 전공의와 회원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경우 자진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350명은 추계위가 제시한 최소 500명 증원을 막아내면서, 과거 의대에서도 교육 차질 없이 감당할 수 있는 상한선으로 언급한 절묘한 숫자”라며 “의협은 내부 불만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 선을 지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보정심 위원은 “추계위에서 연간 500명 정도는 증원해야 한다는 결과가 나온 상황인데 무슨 근거로 350명 증원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의협 측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지만, 무리한 증원 폭 감축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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