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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엔 최소 1억···‘콘크리트 유령’이 된 폐주유소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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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권 폐주유소 가보니
오염·범죄 노출 흉물 방치
5년 새 900곳 주유소 감소
경영난 심화에 ‘제로 마진’
비싼 철거비에 퇴로도 봉쇄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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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기 남양주시 경춘로 국도변의 한 폐주유소. ‘쓰레기 불법투기 금지’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무색하게 폐기된 목재 더미와 녹슨 드럼통, 각종 철제 구조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천장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페인트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주유 기계들이 뽑혀 나간 빈자리에는 주인을 잃은 간판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한때 차량 행렬로 북적였을 주유소가 ‘콘크리트 유령’으로 변했다.

2024년 폐업 신고가 이뤄진 지 1년 6개월이 흐른 현장은 완전히 방치 상태였다. 담벼락과 사무실 곳곳에는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낙서들이 락카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다. 벽면 기둥을 타고 올라간 나무 덩굴은 건물의 숨통을 죄는 듯 보였다. 더 오래된 폐주유소들도 마찬가지로 뼈대만 남아 전국 곳곳에 자리잡은 상태다. 경기도 동두천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국도변의 경우 본래 위치에서 다른 사업을 구상하기 어렵고 수익성도 낮아 매물이 팔리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지방 소멸과 수익성 악화 속에 퇴로를 찾지 못한 외곽 주유소들이 거대한 흉물로 남겨지고 있다. 18일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영업 주유소 수는 1만 694곳으로 집계돼 5년 전 대비 895곳이 문을 닫았다. 추세대로면 5년 내로 전국 주유소 수가 1만 곳 아래로 떨어질 전망이다. 그나마 같은 기간 정부 공동 구매와 세제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 숫자가 77곳 늘었지만 전반적인 폐점 속도를 늦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전환에 따른 수요 감소와 고금리로 인한 운영비 상승이 결합된 구조적 몰락으로 풀이한다. 알뜰주유소 확대와 체인형 대형 사업자들의 공세로 가격 경쟁이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많다. 실제 국내 주유소 3곳 중 2곳은 영업이익이 거의 나지 않을 만큼 경영난이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주유소협회가 1101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2024년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당시 영업이익률이 1% 미만이라고 답한 곳은 63.3%(686개)를 차지했다. 심지어 적자를 기록한 업체도 18.5%(200개)나 됐다. 김문기 한국주유소협회장은 “지금은 더 상황이 더 나빠져서 사실상 ‘제로 마진’ 수준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전했다.

견디다 못해 문을 닫으려 해도 거액의 ‘탈출 비용’이 발목을 잡는다. 최소 1억 5000만 원은 확보해야 지자체 폐업 신고 요건을 갖출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990㎡(약 300평) 부지 규모를 갖춘 주유소의 경우 통상 토양 정화에만 1억 원 가까이가 소요된다고 본다. 여기에 지하 유류 탱크나 건축물을 철거하는 비용이 추가로 5000만 원 이상 붙는 구조다. 이 때문에 ‘그나마 폐업할 수 있는 주유소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는 자조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염 범위가 광범위할 경우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면서 “워낙 막대한 액수다 보니 엄두를 못 내고 방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도심 외곽일수록 더욱 가혹하게 작용하고 있다. 폐업 후 오피스텔이나 상가 등을 올리는 경우가 많은 대도시권과는 달리 지방 소멸 위험 지역은 마땅한 대안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2020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상당수 주유소가 문을 닫은 서울(75곳)과 부산(61곳) 등 대도시와 달리 외곽에서는 낮은 공시지가와 거래 절벽 탓에 폐업조차 선택지로 두지 못하는 처지다. 인구 감소 지역에서는 부지 가치가 정화 비용보다 낮아지는 ‘자산 역전 현상’까지 발생해 주유소가 악성 매물로 전락한다. 경북 지역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방의 경우 300평 부지가 평당 30만 원 선에서 거래되는 사례도 있는데 매각하더라도 철거비를 감당하기 벅찬 수준”이라며 “매수자마저 나타나지 않으니 소유주가 관리를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방치된 폐주유소가 단순한 미관 저해를 넘어 환경 오염과 치안 부재를 야기하는 ‘사회적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노후 탱크에서 유출된 기름은 지하수와 토양을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오염시킨다. 인적이 드문 사무실이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악용될 소지도 크다. 이 때문에 국회에서도 수 차례 주유소 폐업 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는 법안이 논의된 바 있으나 다른 자영업자와의 형평성 문제로 공전을 거듭해왔다. 김 협회장은 “정부와 정유사뿐만 아니라 업계 스스로도 기금을 조성하는 등 사업자가 안전하게 시장을 떠날 수 있도록 돕는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글·사진(남양주)=황동건 기자 brassg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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