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더불어민주당에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나흘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의료진의 진찰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최후의 조찬’은 전복죽이었다. 수저를 들었지만 반 그릇 이상 남겼다. 단식에 들어가기 전 음식량을 줄여야 한다는 의사 충고가 있었다. 위염이 있어 갑자기 굶으면 위가 뒤틀릴 수 있다는 조언도 있었다. 그래서 단식 초반 사흘은 쌀뜨물을 먹기로 했다. 항간에 그가 마시는 허연 국물을 두고 곰국이라는 소문이 퍼진 이유다.
2003년 11월26일 최병렬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비리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반발해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한나라당 불법 대선자금 사건(차떼기 사건)으로 궁지에 몰리던 때였다. 단식농성의 정치적 목적은 분명했고, 목적 달성 여부는 불분명했다. 단식농성 장기화가 예상됐고, 65살이라는 나이는 부담이었다. ‘구국 단식’이 아닌 ‘건강 단식’이라는 조롱에도 ‘단식 전 빌드업’을 착실하게 했다. 이재오 사무총장은 동조 단식을 했다.
장동혁 페이스북 갈무리 |
위기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눈치 없는 소속 의원이 격려 방문을 와서는 저녁에 먹은 보신탕 얘기를 했다. 민주노동당은 민생현안을 도외시한 거대야당 대표의 단식농성을 ‘단식투정’이라고 비난하며 짜장면을 전달하려 했다. 단식농성장인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찰이 철가방을 탈취하려 했고, 짜장면 그릇이 엎어지며 단무지와 함께 당사 앞을 굴렀다. 노동계는 거대야당 대표의 단식농성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했다.
밥은 굶었지만 허약했던 당내 리더십을 확보하며 정치적 허기를 채울 수 있었다. 단식 중인 그를 엿새 만에 1천여명이 찾아 격려했다. 당내 주류는 물론, ‘최틀러 극한투쟁’에 반대하던 소장파까지 ‘대표에게 힘을 모아줘야 한다’고 했다. 당시 정치인 최장 단식 기록(23일)을 갖고 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농성 8일째를 맞은 최 대표를 찾았다. “나도 23일간 단식해봤지만, 굶으면 죽는 것이 확실하다.” 김 전 대통령은 단식 중단을 권하며 그 유명한 ‘굶으면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최 대표는 단식 9일째 한겨레 지면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기도 했다. “대통령과 일 대 일로 만나서 흉금을 터놓고 토론하고 싶다”고 했다.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이 공조해 측근 비리 특검법을 재의결했다. 최 대표 단식은 열흘 만에 끝났다.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그는, 단식 빌드업에도 불구하고 엿새 뒤에야 당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재의결된 법안을 노무현 대통령이 공포하며 시작한 특검 수사는 허망했다. 한나라당이 지목한 주요 의혹은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났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14일 당 윤리위원회의 제명 결정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국회의원회관을 잠시 방문한 뒤 차량에 탑승하며 지지자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는 무반응…한동훈 “조작·보복이지만”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단식은 15일 오후 2시 넘어 갑자기 결정됐다. 여당과 대통령을 향해 더불어민주당을 수사 대상으로 하는 쌍특검(통일교·공천헌금 특검) 도입을 촉구하는 단식이라고 했다. 여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뜬금없다’는 시각이 많았다. 한동훈 전 대표 제명 결정으로 급격히 나빠진 당 안팎 여론과 리더십 위기를 돌파하려는 ‘공복 이벤트’라는 비판이었다.
23년 전 최병렬 대표의 단식은 ‘야당대표 대 대통령’ 일 대 일 구도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장 대표의 단식은 기이하게도 ‘장동혁 대 한동훈’ 구도만 선명해졌다. 현직 당대표가 전직 당대표와 싸우는 꼴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대표의 정치적 자해 행위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장 대표 단식 나흘째인 18일, 더불어민주당은 ‘왜 저러는지 안타깝다’는 입장을 냈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김영삼·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통령의 야당 정치인 시절 단식 사례를 거론하며 “제1야당 대표의 목숨 건 단식은 역사의 물줄기를 크게 전환하거나 최후의 수단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18일 더불어민주당에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나흘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의료진의 진찰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청와대는 공식 반응이 없다. 단식 돌입 전 미리 잡힌 일정이긴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여당과 야5당 지도부를 초청해 오찬 회동을 했다. 장 대표는 불참한 행사였다. “대한민국 파이팅”을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국민의힘은 “지금 한가한 ‘오찬 쇼’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불편한 속내를 드러내며, 이 대통령과 국민의힘의 지도부 양자 회담을 제안했다. 18일 새로 임명된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이 업무를 시작하는 20일 ‘인사차’ 국회를 방문하며 장 대표의 단식농성장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 홍 수석은 이날 “청와대와 정치권을 잇는 가교로서 귀를 크게 열고, 부지런히 움직여 다양한 의견들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하나 된 힘으로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장 대표의 단식에 반응한 것은 한동훈 전 대표였다. 제명 처분 이후 한동안 페이스북을 끊었던 그는, 18일 “저에 대한 징계는 명백한 조작이자 정치보복”이라면서도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국민과 당원께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전·현직 당대표의 자해적인 충돌을 봉합하기 위해 우선 당원게시판 사건에 대한 한 전 대표의 소명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 해명과 사과가 자칫 정치적·법적으로 발목을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현재의 당내 상황에 대한 포괄적 사과로 뭉뚱그리는 화법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18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더불어민주당에 통일교·공천헌금 쌍특검 수용을 요구하며 나흘째 단식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에도 최장 기록으로 리더십 확보 시도?
장 대표의 단식 전 마지막 식사가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지난 연말 장 대표는 이미 몸무게가 7㎏ 빠진 상태였다. 몸만들기 없이 바로 시작한 단식은 몸에 무리가 크다. 명분도 약하지만 오래 할 수도 없다. 일주일 정도 단식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가는 어정쩡한 모습으로는 얻는 것도 없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장 대표가 ‘정치적 기록’에 민감하다는 시각도 있다. 장 대표는 지난 연말 내란전담재판부법에 반대하며 24시간 필리버스터를 했다. ‘국회 최장 기록’이라는 점이 부각되며 야당 대표의 결기를 보여줬다는 당 안팎 평가와 함께, 리더십 위기를 잠시 진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기록 세우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치인 최장 단식 기록은 진보정당 인사들이 가지고 있다. 최장 기록은 30일이다. 2011년 노회찬·심상정 진보신당 상임고문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한 달간 단식농성을 했다. 원내 기록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이 갖고 있다. 2005년 쌀 관세화 유예협상 비준동의안에 반대하며 29일간 단식했다. 중간에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지만, 다시 단식에 나섰다. 강 의원은 명상과 복식호흡으로 몸 상태를 유지했다고 한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 후원하기] 시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겨울밤 밝히는 민주주의 불빛 ▶스토리 보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