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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에 펼친 ‘한·일 현대미술교류 80년’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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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70년대 한국 일본의 미술교류상을 다룬 3섹션 전시장의 일부. 전시장 벽에 윤형근 작가의 76~77년작 ‘청다색’(맨 왼쪽)과 이우환 작가의 77년작 ‘점으로부터’‘선으로부터’ 연작들이 나란히 내걸렸다. 그 아래 바닥엔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 출품했던 일본 작가 에비즈카 고이치의 설치작품 ‘조응-1977년 7월 대구의 여운’이 놓여져 있다. 노형석 기자


40년 전, 50대 예술가 백남준은 30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진행자 삼아 일본을 주무대로 한 위성쇼를 실현시켰다. 미국 뉴욕~일본 도쿄~한국 서울을 잇는 위성 중계 무대를 사카모토와 같이 진행하면서 동서양 소장 예술가들을 무대에 초대하고 기발한 모양새로 어울리게 하는 미디어 난장이었다. 제목은 ‘바이 바이 키플링’. 동서양은 결코 화합할 수 없다고 단언한 19세기 영국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의 명제를 반박하는 의미를 담았다. 뉴욕의 진행자는 도쿄 스튜디오의 사카모토와 위성 영상으로 빨간 사과를 휙 주고받았다. 20대 낙서 작가 키스 해링, 록 뮤지션 루 리드, 건축 거장 이소자키 아라타가 농담 섞인 대화를 하며 어울렸다. 86 서울아시안게임 마라톤 우승자 나카야마 다케유키의 역주 장면과 캠코더 넣은 비디오볼이 통통 튀는 영상도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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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한인작가 김희려가 1961년 그린 유화 ‘밀항’의 세부. 1섹션 ‘재일코리안의 시점’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재일코리안 미술작품보존협회 소장품이다. 노형석 기자


백남준이 1986년 만든 명작 ‘바이 바이 키플링’이 지금 일본 요코하마미술관 전시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1990년대 버블(경기 거품) 시대의 상징으로 유명한 약 300m짜리 랜드마크 타워가 지척에 보이는 이 미술관에서 지난해 연말부터 열리고 있는 ‘항상 옆에 있으니까 일본과 한국, 미술 80년’전의 2섹션 출품작이다. 일본 문화 위주로 내용이 채워졌다며 군사독재 치하 한국에서 비난 받았던 이 위성쇼는, 지금 전혀 다른 한국 작가들의 작업들에 둘러싸인 채 관객을 맞고 있다. 1950~60년대 재일 한인 동포들의 빈곤한 생활 현실을 담은 한인 작가들의 리얼리즘 인물화, 1970~80년대 일본에서 왕성하게 전시했던 한국 제도권 모더니즘 작가들의 벽지풍 단색조회화, 2000년대 이후 자이니치 3세대 작가들이 한반도 분단을 성찰하며 시도한 설치·영상 프로젝트 작업 등이 백남준 영상과 기기묘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각양각색의 배경과 지향을 품은 전시장의 작품들은 종전 이후 지난 80여년간 일본에서 한국 미술이 또 다른 별자리를 이루어왔다는 사실 또한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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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작가들의 현대미술 교류상을 담은 3섹션 ‘넓어진 길’의 들머리 전시장 일부. 1968년 7월 일본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한국현대회화’전에 출품됐던 이우환 작가의 68년작 ‘풍경’ 연작(2015년 재제작)이 오른쪽 벽에 내걸렸다. 마주보는 왼쪽 벽에는 이 작가와 함께 활동했던 일본 모노하 미술유파의 대표작가 세키네 노부오의 오브제 작품 ‘위상 No.13’이 보인다. 노형석 기자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해방된 1945년부터 현재까지 80년간 이어온 양국 미술 교류의 여정을 양국 작가 50여팀의 주요 작품 160여점과 아카이브로 풀어가는 얼개다. 요코하마미술관 제안으로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과 3년 이상 준비 과정을 거쳐 일본 현지에서 한국 현대 미술과의 교류 관계를 조명한 최초의 전시회다. ‘항상 옆에 있으니까’란 큰 제목에서 암시하듯 교류를 주도하기보다 일본 사조의 영향을 받고 현지 진출과 전시 소개에 치중했던 한국 현대 미술가들과, 차별 속에서 경계인 현실을 드러내는 데 고투했던 동포 작가들의 문제적 상황을 드러내는 자리에 가깝다. 현지 전시한 한국인 작가들 비중이 높고 일본 작가들은 일부 대가들의 작품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까닭에, 엄밀히 말하면 일본 미술계에서 활동한 한국인들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성격이 뚜렷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현대 미술사의 그늘에 묻혔던 1950~60년대 동포 작가들의 핍진한 리얼리즘 회화들과 2000년대 이후 청년세대 한인작가들의 현재진행형 영상·설치·회화 작품들을 집중조명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1섹션 ‘재일코리안의 시점’에서 두드러지는데, 60년대 북송선 타고 북한으로 간 화가 조양규가 노동자풍 인물을 그린 펜화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그의 수작 ‘창고’ ‘맨홀’ 연작이 서두를 수놓는다. 뒤이어 일본 도시 변두리의 조선인 부락 풍경과 소외된 한인 군상, 일제의 학살 만행 등을 담은 전화황, 성리식, 한동휘, 김려, 백령, 송영옥, 조지현 작가의 인물화, 풍경화 작업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김희려 작가의 1961년 작 ‘밀항’은 배 안에서 쪼그린 채 불안과 피로에 찌든 밀항 동포들의 표정과 시선, 몸짓 등을 적나라한 색감과 구도로 묘사한 수작이다. 북송 전 남긴 조양규의 사진·편지·전시간행물과 1962년 발간된 ‘재일조선미술가화집’ 등의 희귀 아카이브, 조선인 남편을 따라 북송선을 탄 북한 내 일본 여성들의 삶을 취재한 일본 작가의 사진과 기록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전시 후반부인 4섹션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의 말미에서는 2000년대 이후 동포 3세대 작가들 작품이 등장한다. 이들은 선대 작가들과는 이질적인 감수성으로 민족수난사와 분단 상황을 해석한 영상, 회화 작업들을 보여준다. 1942년 수많은 징용 조선인들이 수몰된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탄광의 바다 구조물을 포착한 정리애 작가의 ‘섬-드로잉’ 영상과 후지산과 백두산을 배경으로 일본의 전통 복식을 입거나 북한 인공기를 든 여성들을 대비시킨 이정옥 작가의 콜라주 그림들은 동시대 미술의 다기한 맥락에서 읽히는 작업들이다. 2016년 도쿄 무사시노대와 바로 옆 조선대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담벽을 넘어 통행하는 설치 프로젝트를 벌였을 때의 아카이브 자료들과 대화록, 다리 모양 구조물들이 축약되어 재현된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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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도쿄 서부 다마 지역에 자리한 무사시노대와 바로 옆에 인접한 조선대의 미술전공 학생들이 서로 담벽을 넘어 통행하는 설치 프로젝트를 벌였을 때의 아카이브 자료들과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설치작업들도 전시 말미에 나왔다. 노형석 기자


사실 전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1965년 한일 수교 뒤로 1980년대까지 한국 화단을 주도했던 단색조회화(모노크롬)와 이 흐름의 유력한 배경이 됐던 일본 모노파 등과의 교류상을 담은 3섹션 ‘넓어진 길’과 90년대 교류상을 담은 4섹션 ‘새로운 세대, 새로운 관계’ 전반부의 출품작들이다. 3섹션에서는 한국 현대미술가들이 일본에 소개되는 계기를 연 1968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의 ‘한국현대회화’전이 부각된다. 그 전시에 나왔던 이우환 작가의 ‘풍경’ 연작(2015년 재제작)과 함께 활동했던 모노파 대표작가 세키네 노부오의 채색 나무오브제 작품 ‘위상 No.13’이 마주보는 상징물처럼 들머리 공간에 내걸렸다. 두 작품 모두 균질하지 않은 주홍빛 계열의 산업도료를 칠한 색면을 통해 주위 공간으로 색들이 퍼져나가는 듯한 모노파 특유의 감각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윤형근 작가의 1976~77년 작 ‘청다색’과 이우환 작가의 1977년 작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연작들, 1970년대 대구현대미술제에 출품했던 일본 작가 에비즈카 고이치의 설치작품 ‘조응’, 일본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 70년대 말 대구현대미술제 당시 이강소 작가의 낙동강 퍼포먼스 사진, 박현기 작가의 돌+비디오 작업 등도 잇따라 나오면서 국내 제도권 미술판에서 일본과 교류했던 여러 궤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다카마쓰 지로, 사이토 요시시게 등 70~80년대 한국 전시에 참여한 일본 대가들의 평면 오브제 작업들도 화답하듯 이어진다. 전시는 1981년 서울에서 열린 ‘일본현대미술’ 전과 68년 일본 ‘한국현대회화’ 전 당시 현장 사진들, 70년대 한일 미술인들의 경주 답사 당시 찍은 기념사진, 잡지 대담 자료들도 곁들여 교류의 실체들을 전하고 있다. 여성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가 80년대 광주항쟁 등 한국 민주화운동 굽이마다 내놓은 반독재판화들과 거장 이응노 화백의 1985년 방일 당시 기록영화를 내보이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90년대 차세대 한일 작가들의 교류를 담은 4섹션의 경우 일본 대표작가 무라카미 다카시와 나카무라 마사토가 1992년 벌인 한일 순회 2인전의 포스터와 전시장 영상, 당시 프라모델류 등을 출품한 무라카미의 팝아트 작품, 나카무라의 서울·도쿄 거리사진 연작모음이 눈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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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도심 미나토미라이 지구에 있는 요코하마미술관 정면. 일본현대건축을 대표하는 거장 단게 겐조가 설계했다. 노형석 기자


3·4섹션은 낯선 교류사 자료들을 갈무리한 노력이 엿보이지만, ‘구멍’들이 수두룩하다는 점을 숨길 수 없다. 1970년대 일본에 수년간 살면서 현지 화단에서 전시와 담론 소통을 지속했던 김구림, 정상화 등의 핵심 작가들이 빠졌다는 사실이 기획의 무게감을 크게 떨어뜨린다. 50년대 선구적인 물성 오브제 작업으로 60년대 이후 한·일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모더니즘 거장 곽인식의 소품들을 리얼리즘 작품 위주인 1섹션 마지막에 꼬리표 붙이듯 배치한 것도 그렇다. 90년대 이후 양상을 다룬 4섹션의 경우 당시 국내 교류 주역이던 최정화·이불 작가의 작품은 전무하거나 극소수 소품 등만 나온 탓에 교류의 실체가 흐릿해졌다. 2000년대 초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후 청년예술가 교류가 활성화하면서 팝아트의 상상력과 감성이 큰 파장을 미쳤는데 이를 반영한 대안공간 세대 작업들을 거의 찾을 수 없었던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5월부터 ‘로드무비’란 큰 제목을 달고 열리는 한국 전시에서는 상당한 작가 및 컬렉션 보완이 있을 것이라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설명하고 있다. 요코하마 전시의 구멍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요코하마/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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