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화 가치 하락이 지속되자 급기야 미국 재무장관이 나서 구두 개입을 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미국이 나서게 된 배경이 무엇인 지를 떠나 이례적인 현상이기에 보다 근본적인 환율 안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원화 가치 하락에 대해 "한국의 강력한 펀더멘털(경제 기초 여건)과는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외환시장에서의 과도한 변동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외환 당국자들이 구두 개입을 할 때 사용하는 표현과 비슷하다.
미국은 무역 상대국의 통화 가치 하락 영향으로 무역 적자를 보게 되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압박 목적으로 엄포를 놓곤 한다.
수출 상품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원화 약세를 유지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켜보는 것인데, 이번에는 원화 약세를 걱정해 주는 모양새여서 이전과는 다르다.
블룸버그 통신도 베선트 장관의 언급에 대해 "미국 재무부가 이례적으로 한국 원화에 대한 직접 신호를 보냈다"면서 "보기 드문 공개 지원(rare support)"라고 표현했다.
같은 날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도 베선트 장관과의 회담에서 엔화 약세에 대한 우려를 전달해 공유했다고 한다.
미국이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장관을 만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통화 가치 하락이 대미투자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지 점검하는 차원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나라는 관세 협상으로 올해 미국에 200억 달러를 상한액으로 현금 투자하게 된다. 외환 시장 상황에 따라 실제 투자액은 조정할 수 있기에 외환시장 상황은 변수가 된다.
이유야 어떻든 간에 외환 당국이 구두 개입은 물론 온갖 대책을 내놓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환율은 1400원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연말에는 정부가 대책을 내놓으면서 원화 환율이 일시적으로 내려가자 달러화 사재기가 나타나기도 했다.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1450원 선을 넘어선 것은 1997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지난해 12·3 계엄 등 3차례 뿐이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 강화 효과는 있는 반면 수입 비용 상승으로 반도체나 이차전지 등 대기업들은 손해를 본다는 분석도 있다. 물가 상승과 해외여행·유학비 등으로 생활비가 증가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증시는 불장(Bull market)이지만 환율 수준으로만 보면 우리 경제는 위기라 할 수 있다.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은 중국 저가 공세 등으로 시장 점유율과 수익성이 크게 압박 받고 있다. 산업 구조 혁신과 신산업 육성 등 대책이 절실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의 고(高)환율이 외환 위기 때 처럼 달러화 부족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1조원대의 대외순자산과 4000억달러가 넘는 외환 보유액이 있다. 지난해 1~11월 경상수지 흑자는 1018억 2000만달러에 이른다.
경제 성장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근본적인 환율 대책이라고 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15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 금리를 연 2.5%로 동결한 뒤 "지금 우리나라에서 달러화를 찾기 너무 쉽다. 달러화가 풍부하다."고 했다. 문제는 달러화 가치가 더 올라갈 거라고 생각을 해서 현물 시장에서 달러화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나 엔화 약세 등의 원인이 있긴 하나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져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했으나 지난해 0.9% 성장률에 따른 기저 효과가 크다. 정보통신(IT) 부분을 제외하면 올해 성장률은 1.4%에 머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기업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내놓게 하거나 국내에 복귀하는 서학개미들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조치가 외환시장 안정에 얼마나 도움을 줄 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것은 글로벌 무대에서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을 치르는 국내 기업들이 우수한 무기를 갖고 싸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뛰어난 기술 등을 확보해 경쟁할 수 있도록 해야 이길 수 있다.
강력한 성장 의지를 갖고 미래지향적 정책과 혁신을 주도할 때 달러 열풍도 잠재워 원화 가치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환율은 성장률이나 물가 상승률, 실업률 같은 주요 거시 경제 지표 변화를 예상해 움직인다.
환율이 다시 오를 것이라는 투자자와 실수요자들의 기대 심리를 누그러뜨리는 것이 최대 과제다.
디지털데일리 주필
서울신문 편집국장, 논설위원을 거쳐 아리랑국제방송 시사보도센터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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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재무' 구두 개입도 달러 열풍 못 막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