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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계절 내내 '하늘감옥' 갇혔던 해고 노동자, 이젠 땅에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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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영하 10도 안팎의 강한 추위가 햇빛으로 잠시 풀린 14일 정오, 세종호텔 맞은편인 서울 중구 명동역 1번 출구 앞에 경찰 수십 명이 출동했다. 경찰은 도로와 인도에 펜스를 설치하더니 명동역 인근을 지나다니는 시민들의 이동을 통제했다.

경찰 통제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 조끼와 깃발 등으로 자신의 소속을 드러낸 일부 시민들은 펜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짓던 시민들의 수는 오후 1시쯤 되자 펜스 안에서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급격히 늘었다. 어림잡아도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이들은 일제히 도로 위에 설치된 10여 미터(m) 높이의 철제 건축물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철탑 위에는 너무 허름해진 나머지 절반가량 소실된 깃발을 든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 때마다 철탑 아래에서는 응원의 함성이 쏟아졌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그는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지부장. 지난해 2월 13일 철탑에 올라 지금까지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촉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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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세종호텔지부장. ⓒ녹색당



세종호텔은 코로나19 펜데믹 기간이던 지난 2021년 경영 위기를 이유로 호텔 직원 15명을 정리해고했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사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해고 노동자들은 세종호텔이 정리해고 1년 만에 흑자로 전환되고, 매해 최대치의 객실 수익을 갈아치우고 있음에도 자신들을 복직시키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싸움을 이어 왔다.

혹한 속에 고공농성을 시작한 고 지부장은 봄,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을 맞기까지 4계절 중 하루도 땅을 밟지 못했다. 대신 매일 북을 치고 깃발을 흔들며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투쟁을 알렸다. 고공농성 소식이 알려지면서 '말벌 동지'로 불리는 시민들이 찾아와 그의 투쟁을 응원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농성장에 방문하는 등 정치권의 관심도 불러 모았다. 또 지난해 9월부터는 해고 노동자와 세종호텔 간 노사 교섭도 다시 시작했다.

하늘에서 무수한 성과를 낸 고 지부장은 336일 만에 땅에 내려오기로 했다. 그는 이제 해고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시민들 곁에서 복직 투쟁을 이어가려고 한다. 고 지부장이 활동가들의 부축을 받으며 크레인을 타고 내려오자, 시민들은 '고진수 위원장님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일터로 돌아갈 차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의 복귀를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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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이 336일 만에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땅으로 내려왔다. ⓒ녹색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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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앞 도로에 있는 10m 높이 구조물에 올라 복직을 요구하며 336일째 농성을 벌였던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고진수 지부장이 14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구조물에서 내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고공농성 기간 동안 건강이 나빠진 듯한 고 지부장은 휠체어에 몸을 맡긴 채 시민들 틈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세종호텔은 매해 객실 매출로 사상 최대 수익을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는 잠시 위기일 뿐 분명히 물밀듯이 관광 수요가 늘 테니 고용을 유지해 달라고 했지만, 지금 세종호텔 일터에 남은 조합원은 2명뿐"이라고 비판했다.

고 지부장은 "고공농성 1년 동안 이전의 투쟁보다 훨씬 더 많은 많은 동지들의 진심 어린 연대를 확인했다. 비록 고공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복직 답을 받아내진 못했지만, 아래에서 더 많은 동지들과 함께 투쟁해 나가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고공에서 내려오는 지금 하나도 아쉽거나 슬프지 않다.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 결코 멈추지 않는다"라며 "오늘 함께해준 많은 동지들께 감사 인사 전하고 싶다. 빠르게 회복해서 투쟁 현장으로 복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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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 ⓒ박상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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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진수 세종호텔지부장. ⓒ박상헌 사진작가



고 지부장은 발언을 마친 뒤 국립중앙의료원으로 후송됐다. 또한 그는 이날 오후 3시 세종호텔과 해고 노동자 간 7차 교섭에 참여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이날 이뤄진 7차 교섭은 노사 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은 채로 종결됐다. 해고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은 세종호텔 실소유주 격인 주명건 대양학원 명예이사장이 교섭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호텔 로비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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