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이나 고기가 없어도 음식의 맛이 이렇게 깊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 프랑스에서 온 전업 요리사 숀(25) 씨는 연근과 묵나물로 만든 들깨 쌀수제비를 맛본 뒤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파인 다이닝에서 일하며 재료를 농축하고 분해해 맛을 끌어올리는 데 익숙했던 그에게 사찰 음식은 정반대의 접근이었다.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재료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이 인상 깊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날 그는 요리를 시작하기 전 명상부터 하는 사찰 음식 수업 전 과정을 끝까지 따라했다.
숀 씨가 참여한 이 수업은 조계종이 운영하는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의 정규 프로그램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발우게를 함께 읽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사진을 찍거나 웅성대는 관광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낮은 목소리의 독송이 이어지자 실내에는 차분한 공기가 감돌았다. 이곳에서의 사찰 음식 체험은 조리법을 익히는 시간이기보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돌아보는 과정에 가까웠다.
최근 한국사찰음식문화체험관에는 외국인 참가자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체험관에 따르면 2025년 외국인 참가자는 1144명으로 전년(689명) 대비 66% 증가했다. 2021년 113명, 2022년 621명, 2023년 1217명으로 이어지는 증가 흐름도 뚜렷하다. 지난해 내국인 참가자는 5823명으로 전년(6491명)보다 소폭 줄었지만 외국인 유입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체험관 측은 미국·캐나다 등 미주 지역에서 온 참가자 비중이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수업에는 외국인과 내국인을 합쳐 20명 안팎의 참가자가 모였다. 혼자 여행 중 들른 외국인 관광객부터 아들과 부모가 함께 참여한 가족 단위 참가자까지 구성도 다양했다. 참가자들은 연근과 묵나물을 활용한 들깨 쌀수제비와 궁채초무침을 직접 만들었다. 재료가 놓인 조리대 앞에서 참가자들은 서두르지 않고 나물의 향과 질감을 하나씩 살폈다.
조리를 시작하기 전과 마친 뒤에는 명상 시간이 마련됐다. 조명이 꺼지고 참가자들이 눈을 감자 실내에는 숨소리만 들릴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강사의 안내에 따라 호흡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뒤에야 본격적인 조리가 시작됐다. 요리 전에 마음부터 정돈하는 과정이라는 설명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장면이었다.
수업을 진행한 하경 스님은 사찰 음식의 의미를 음식 철학과 수행의 맥락에서 풀어냈다. 하경 스님은 “사찰 음식은 세상에 대한 자비심과 수행을 위한 음식”이라며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교나 화려한 양념에 의존하기보다 자연 재료를 최소한으로 가공해 필요한 만큼만 조리하고 최소한의 양념으로 먹는 방식이 사찰 음식의 기본”이라고 설명했다.
스님은 사찰 음식에서 쓰지 않는 ‘오신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마늘·파·부추·달래·흥거가 이에 해당한다는 말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마늘” “파”라며 입을 모아 답했다. 하경 스님은 “오신채는 향이 강하고 기운을 돋워 수행자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여겨진다”며 “불교에서는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재료를 절제한다”고 설명했다. 음식 선택 자체가 수행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전달됐다.
숀 씨는 “프랑스 요리는 재료를 어떻게 변형할 것인가에 집중하지만 사찰 음식은 재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묻는다”며 “요리사로서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체험을 “10점 만점에 9점”이라고 평가하며 “한국을 찾는 다른 외국인에게도 꼭 추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출신 채식주의자 일라(30) 씨 역시 “사찰 음식은 이전에 접했던 채식 요리와는 결이 달랐다”며 “맛의 강약보다 음식을 대하는 태도를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요리를 배우는 수업이라기보다 사찰의 생활 방식과 철학을 이해하는 과정에 가까웠다”고 표현했다.
이 같은 반응은 최근 확산되고 있는 웰니스·비건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 사찰 음식이 단순한 채식 메뉴를 넘어 먹는 과정 자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평가다. 사찰 음식이 해외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로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 시즌3에 출연한 정관 스님을 꼽는 시각이 많다. 최근에는 예능 흑백요리사 시즌2를 통해 선재 스님의 사찰 음식이 다시 주목받으며 불고기·김치 중심이던 K푸드 인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스펙트럼으로 외국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체험관 관계자는 “외국인 참가자 상당수가 ‘맛있는 한국 음식’을 넘어 한국의 생활 방식과 사고를 이해하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방문한다”며 “사찰 음식은 그런 요구에 잘 맞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신서희 기자 sh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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