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퓰리처상을 받은 논픽션 작가 트레이시 키더가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25일(현지시간) AP 통신에 따르면 키더의 아들은 폐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해 온 부친이 24일 보스턴 딸의 집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AP에 전했다. 유력 출판사로서 오랫동안 키더의 책을 출간해 온 랜덤하우스는 성명에서 “고인의 스토리텔링에는 진실성과 호기심이 반영돼 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 부인 프랜시스와 아들 냇, 딸 앨리스 그리고 4명의 손주가 있다.
키더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1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고교 졸업 후 명문 하버드대에 진학한 그는 원래 정치학을 공부했으나 창의적 글쓰기에 매료된 나머지 영어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 시절 학군단(ROTC) 과정을 이수한 그는 1967년 졸업과 동시에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그 직후 본인은 별로 내켜하지 않았던 베트남 전쟁에 파병됐다. 정보 장교인 키더는 1969년 귀국할 때까지 직접 전투 현장에 나서진 않았다. 다만 참전 경험은 훗날 그가 작가로 대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미국에 돌아온 키더는 제대 후 언론사를 위한 프리랜서 기고자로 활동했다. 아울러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에 적을 두고 본격적으로 글쓰기 훈련을 받았다. 1970년대 내내 키더는 그리 성공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그런데 1981년 펴낸 ‘새로운 기계의 영혼’이 호평을 받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키더 또한 일약 미국 최고의 논픽션 작가로 부상했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논픽션 작가 트레이시 키더(1945∼2026). 1981년 펴낸 ‘새로운 기계의 영혼’으로 이듬해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AP연합뉴스 |
한국어로도 출간된 ‘새로운 기계의 영혼’은 1970년대 말을 배경으로 신형 컴퓨터의 시장 출시를 앞두고 고군분투하는 어느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의 열정을 조명한 책이다. 학교에서 소프트웨어 공부를 막 마친 신참 사원부터 이미 오랫동안 하드웨어에 종사해 온 베테랑 기술자까지 다양한 이들로 구성된 팀이 차세대 컴퓨터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묘사했다. 이 저서로 키더는 1982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후로도 킨더는 ‘고통은 너를 삼키지 못한다’, ‘홈타운’, ‘오랜 친구’, ‘아이들 사이에서’, ‘하우스’, ‘노숙인’ 등 다수의 논픽션 저술을 집필했다. 이 가운데 2003년 펴낸 ‘꿈은 삶이 된다’가 특히 유명하다. ‘21세기의 슈바이처’로 불린 폴 파머(1959∼2022) 전 하버드대 의대 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다. 의료 여건이 열악한 개발도상국 국민의 건강 증진에 평생을 바친 파머가 6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킨더는 “재능 있는 의사이자 깊은 동정심을 가진 의사였으며 우리 모두가 원하는 의사였다”는 말로 고인을 추모했다.
킨더는 생전에 ‘문학 저널리스트’, ‘창의적 논픽션 작가’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런 표현들을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문학 저널리스트는 “가식적”이라며 배척했고, 창의적 논픽션에 대해선 “내 글은 지어낸 창작이 아니다”고 손사래를 쳤다. 키더는 “나는 논픽션에 소설의 기법을 차용했을 뿐”이라며 “굳이 나를 정의한다면 ‘이야기꾼’(storyteller)이 올바를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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