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이아름 기자 |
오늘날 아시아에서 개별 국가 여성들의 목소리는 초국적 공간인 소셜미디어에서 해시태그(#)를 타고 확산한다. 혼인관계의 성평등, 월경권, 전시성폭력 등에 관한 수많은 목소리들은 하나하나의 해시태그로 묶이며 의제로 발전한다. 그렇게 형성된 해시태그는 소셜미디어 바깥에서 실재하는 사회적 움직임으로 나아간다. 해시태그는 단순히 같은 주제를 모아주는 본래 기능을 넘어 구호로 작동한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해시태그라는 렌즈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을 들여다봤다. 일본의 여성들은 구시대적 가족 규범과 맞서고, 인도 여성들은 종교적 금기가 삶을 제한하는 현실과 싸운다. 내전의 참상과 전시 성폭력의 문제를 고발하는 미얀마의 여성들, 여성착취 구조에 대항하고 피해자들을 돕는 태국의 여성들도 만났다. 각국 여성들이 처한 맥락은 한국과 다르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삶 속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그 공통의 고민 속에서 ‘#아시아여성’이라는 해시태그를 길어올릴 수 있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3·8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해시태그라는 렌즈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여성들이 벌이고 있는 투쟁을 들여다봤다. 일본의 여성들은 구시대적 가족 규범과 맞서고, 인도 여성들은 종교적 금기가 삶을 제한하는 현실과 싸운다. 내전의 참상과 전시 성폭력의 문제를 고발하는 미얀마의 여성들, 여성착취 구조에 대항하고 피해자들을 돕는 태국의 여성들도 만났다. 각국 여성들이 처한 맥락은 한국과 다르지만 중요한 건 모두가 삶 속에서 ‘여성 인권’과 ‘성평등’을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그 공통의 고민 속에서 ‘#아시아여성’이라는 해시태그를 길어올릴 수 있었다.
“여성이 홀로 가족을 부양하거나 아이를 키우는 일은 흔해 보이죠. 하지만 이것은 사실 오랫동안 지속된 구조적 불평등과 폭력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태국은 지표상으로는 성 불평등이 매우 심각한 나라로는 보이지 않는다. 2025년 기준 태국의 세계경제포럼(WEF) 성격차지수는 0.728(1에 가까울수록 성평등)로 148개국 중 66위다. 0.687(101위)인 한국보다도 순위가 높다. 태국이라고 하면 흔히 트랜스젠더와 동성애를 떠올릴 만큼 개인이 성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도 비교적 흔한 편이다. 이런 인식은 관광국가 이미지와 엮여 태국을 ‘소수자의 천국’으로 받아들이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태국 활동가들은 이 나라 여성들이 돌봄과 부양의 의무를 동시에 지는 상황에 처해 있고, 뿌리깊은 도농 간 격차와 맞물려 소녀들의 삶의 경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한다. 태국은 모계 중심 성향이 강한 사회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가계의 재산관리와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문화가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배경으로 작용해왔다는 해석도 있다. 실제로 태국 중견기업 고위 관리직 이상 중 여성 비율은 43.1%로 세계 평균(34%)보다 높다.
하지만 여성의 생활력이 강하다고 가부장적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사회적 권위는 여전히 남성에게 있다. 오히려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관습은 남성의 외도와 경제적 책임 방기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착한 딸’이 되기를 요구받는 농촌의 가난한 소녀들은 학업을 중단하고 도시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흘러들거나 성산업으로 내몰린다. 경제적 이유의 빈곤층 조혼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1월 26일 태국 방콕 예술문화센터에서 열린 “변화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을 것인가?”포럼에서 여성지위향상협회(APSW)의 우사 렌드시순땃(63)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APSW 페이스북 |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최근 우사 렌드시순땃 태국 여성지위향상협회(APSW) 사무총장(63)을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왜 홀로 아이를 양육하는 여성들의 문제가 구조적 성차별의 결과인지, 이런 문제가 왜 다음 세대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시로 빨려들어가는 태국의 10대 소녀들
태국의 여성차별은 극심한 도농 간 빈부격차 문제와 엮여서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의 농촌 소녀들을 불안정하거나 위험한 일자리로 떠밀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태국의 농촌 인구 비중은 2020년 기준으로 49%지만 빈곤층 중에서는 79%가 농촌에 거주한다. 농촌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도시 가구의 68%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농촌의 가난한 10대 여성들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와 집을 떠나 도시의 불안정한 일자리로 유입된다. 빈곤과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도시행을 택하는 소녀들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도시로 떠밀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들은 식당 종업원이나 마사지사 등 비공식적 일자리로 유입되고, 일부는 돈을 벌기 위해 성매매에 종사하기도 한다.
여성지위향상협회(APSW)가 운영하는 태국 방콕 응급 보호소. APSW 응급보호소는 위기에 처한 여성과 아동들의 거주,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을 지원하고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돕는다. APWS 제공 |
-농촌의 젊은 여성들이 도시로 이동하는 일이 흔한가요?
“많은 여학생들이 9학년(중학교 과정)을 마치기 전에 학교를 중퇴하고 대도시에 가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입니다. 도시로 간 소녀들은 숙소, 교통수단, 직장 등 어디에서든 성희롱·성폭력과 같은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중 일부는 마사지사나 웨이트리스를 모집하는 공고를 통해 성매매 산업에 빠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채로 시작했다가, 상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순응하는 경우도 있죠. 적은 소득으로 압박감을 느껴 그런 일을 선택하기도 하고요. 태국에는 다양한 형태와 수준의 성인 유흥업소가 있고, 관광객은 물론 태국 남성들도 이런 업소를 찾습니다. 태국 여성들은 나이와 무관하게 브로커에 의해 성매매에 동원되곤 합니다. 실제로 많은 여성들이 빈곤 등을 이유로 방콕과 파타야, 푸켓 등 주요 관광지의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기 위해 이주하거나 해외로 나가기도 합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미혼모이거나 고향에 있는 가족과 친척에게 송금하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경우입니다.”
일부 소녀들은 조혼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특히 빈곤층 조혼 문제가 심각하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2022년 태국의 조혼율(18세 미만 결혼 비율)은 17%로 동남아시아 평균인 15%보다 조금 높은 수준이지만, 소득 하위 20%의 조혼율은 28.5%에 이른다. 4명 중 1명 이상이 조혼을 하는 셈이다. 렌드시순땃 사무총장은 조혼 문제가 ‘여전히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일부 공동체의 신념’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태국 사회에서 조혼이 흔한가요.
“태국 사회의 조혼 상황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뉩니다. 첫번째는 아동이 결혼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여기는 공동체에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미성년자 스스로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양가 부모가 정해주는 결혼도 있습니다. 또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경우 딸을 결혼시키는 것이 가족의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신부 비용을 받는 기회로 여기기도 합니다. 일부 소녀들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남성과 결혼하거나, 이미 가정을 이룬 적이 있는 남자에게 보내지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 놓인 소녀들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요.
“생후 8개월 된 아픈 아기와 함께 병원에서 쉼터로 인계됐던 18살 소녀 깨우가 기억나요. 깨우는 10살 때까지 알콜중독인 어머니와 함께 살았고, 어머니가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태국 중부지방에 거주하는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중학교까지는 졸업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그 지방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남편을 만났고, 동거 후 헤어졌어요. 그 후에는 이모와 이모의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함께 방콕으로 이주했는데, 방콕에서 임신 4개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깨우의 사례는 어린 나이에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고 아이를 기르는 젊은 여성들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돌봄과 부양, 여성에게 씌워진 ‘이중의 굴레’
여성지위향상협회(APSW)가 운영하는 태국 방콕 응급 보호소. APSW 응급보호소는 위기에 처한 여성과 아동들의 거주,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을 지원하고 신체적·정신적 회복을 돕는다. APWS 제공 |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성역할 분담은 가정을 부양하는 여성들에게 돌봄과 가사노동까지 떠맡도록 하는 이중의 굴레로 작용한다. 실제로 세계경제포럼의 지난해 세계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태국 여성이 하루에 집안일과 돌봄 등 무급 노동에 쓰는 시간은 약 2시간39분으로 남성(47분)의 3배가 넘는다. 혼외 출산이나 이혼 후 아이를 키우는 것도 대체로 여성이다. 태국 한부모가정 중 80%는 어머니만 있는 가정으로 알려져 있다. 이혼한 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채 홀로 아이를 키우는 경우도 많다. 반면 가정폭력을 겪으면서도 이혼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빈곤층 여성들이 조혼이나 조기 취업으로 내몰리거나 돌봄·부양이라는 이중 굴레를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자 아이를 기르는 여성이 많다는 그 자체가 성차별적 구조의 결과물이라고 렌드시순땃 사무총장은 지적했다. 여성과 아이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성차별과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여성이 홀로 가족을 부양하는 것은 왜 심각한 문제인가요.
“여성이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언뜻 보기엔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오랫동안 지속된 구조적 폭력의 한 형태입니다. 어려운 경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더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책임을 지지 않는 가정에서는 상황이 더욱 어렵습니다. 한부모 가정의 여성이 홀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이, 많은 아이들이 친척에게 맡겨지거나 보육 시설에 보내집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자 아이들은 성적 학대에 더 많이 노출됩니다. 저소득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교육을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이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업을 중단하고 일을 시작하거나, 연애를 하거나, 가정을 꾸립니다. 결과적으로 이 문제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태국에서는 남성이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흔한가요?
“네. 남성은 여성보다 가족을 부양할 책임에 대한 압박을 덜 받고 더 많은 자유를 누립니다. 물론 남성도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를 받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폭력이나 착취가 발생하는 배경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가부장적 신념이 뿌리깊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이혼하거나 미혼모가 되는 이유는 가정폭력을 포함한 친밀한 관계 내 폭력 때문입니다. 10대들도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겪습니다. 이런 폭력은 여성이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며 남성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관광 경기침체로 인한 경제적 압박, 약물 남용, 알콜 중독도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여성이 임신했을 때 남편이 책임을 회피하는 이유도 폭력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학대받는 관계를 견디는 사람들도 있지요. 만약 여성들이 교육을 충분히 받았거나 자립할 수 있는 안정적 직업을 가진다면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질 겁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는 저소득층 0~6세 아동에게 월 600바트(약 2만8000원·태국의 일 최저임금은 지역별 편차가 있지만 400바트 수준이다)의 아동수당을 지급하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소득과 관계없이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생활비 수준을 고려해 수당 액수도 올려야 합니다. 아버지가 자녀 양육에 시간적·금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만드는 법도 필요합니다. 더 나아가 아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거나 양육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행위를 가정폭력법에 따른 범죄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공무원들이 개입할 수 있고, 여성들이 양육비 청구 소송을 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교육 시스템과 사회 전반에 걸쳐 성평등을 실질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하는 입법도 필요합니다.”
우사 렌드시순땃(63)은 태국 방콕에 위치한 여성지위향상협회(APSW)의 사무총장으로 30년 넘게 여성 인권 운동가로 활동해왔으며 태국여성재단(FFW)의 전 이사를 역임했다. APSW는 1974년 설립돼 여성과 아동의 권익 보호 활동 뿐만 아니라 성폭력, 가정폭력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 긴급보호시설과 교육·훈련센터등을 운영해 온 유서깊은 단체다. 현재까지 5만명 이상의 여성과 아동들이 이곳의 도움을 받았다.
▼ 이아름 기자 areumlee@khan.kr
이아름 기자 areum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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