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 모습/사진=뉴스1 |
대법원 문턱에 가기 어려운 민사 소액 사건과 징역 10년 이하의 형사 사건 등이 헌법재판소가 요구하는 재판소원 청구 요건을 충족할 수 없어 논란이다. 헌재가 민사 소액 사건인 납북 귀환 어부 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재판소원을 각하하면서 '돈 있는 사람만' 재판소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현실화됐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오후 납북 귀환 어부 사건 유가족들이 청구한 재판소원을 각하했다. 이들은 "형사보상금이 지연돼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가 최종 패소했다. 이 사건은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 2호 사건이기도 하다.
헌재는 지정재판부 3명의 만장일치로 각하를 결정했는데 이유로 보충성 요건에 흠결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헌재는 "재판소원은 다른 법률에 구제 절차가 있는 경우 그 절차를 모두 거친 후가 아니면 청구할 수 없다"고 했다. 법에서 정한 불복 절차가 있음에도 대법원을 거치지 않고 헌재를 찾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심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사건은 1·2심만 거쳤고 대법원 상고심를 받아보지 않았다.
그러나 유가족은 대법원에 상고해도 기각될 것이 당연해 상고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사건 대리인인 최정규 법무법인 원곡 변호사는 "민사 소액 사건이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상고하는 것이 실익이 없어 상고하지 않은 것"이라며 "상고이유가 법률상 명백히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임에도 헌재가 보충성 원칙을 형식적으로 적용했다"고 밝혔다.
실제 소액사건심판법 제3조에 따르면 3000만원 이하의 소액사건은 △법률·명령·규칙 또는 처분의 헌법 및 법률 위반 여부에 대한 판단이 부당한 경우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경우에만 대법원에 상고 또는 재항고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형사사건도 10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았을 땐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383조에 따르면 사형·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서 중대한 사실오인이 있어 판결에 영향을 미친 때 또는 형의 양형부당의 이유가 있을 때 상고할 수 있다. 이에 대법원에서 민사 소액 사건과 저형량 형사사건은 대부분 기각된다.
헌재는 이 같은 유형의 사건도 상고가 법적으로 금지돼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예외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헌재는 납북 귀환 어부 사건 각하 결정문에 "소액사건심판법에 따라 상고이유에 해당하지 않아 상고를 포기했다고 주장하나 보충성 원칙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적었다.
헌재가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면 재판소원을 염두에 둔 청구인들의 사실상 실익이 없다는 점을 알면서도 상고를 무조건 해야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재판소원을 청구하기 위해 대법원 상고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상고가 기각될 것이 뻔한 상황에서 대법원까지 가보자고 의뢰인에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며 "결국 앞으로 재판소원을 위해 대법원에 무조건 상고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장판사는 "재판소원을 위해서 대법원에 상고까지 하려면 얼마나 큰 비용이 나가겠냐"며 "희망 고문을 연장하는 일일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납북 귀환 어부 사건은 어부들이 간첩으로 몰려 처벌을 받았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이다. 무죄 선고 이후 어부들은 형사보상을 청구했으나 법원 판결이 1년 넘게 미뤄지면서 손해를 봤다. 이에 어부들의 유가족은 형사보상 지연에 대한 국가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형사보상 기한은 6개월'이라는 내용은 훈시규정에 불과하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유가족은 지난 12일 재판소원제도가 시행된 첫날 헌재에 재판소원을 제기했다.
이혜수 기자 esc@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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