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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애가 어려운 이유? 상대의 '이 모습'을 사랑하기 때문 [읽다 보니,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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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데이

깊은 상처는 오직 내가 깊이 사랑한 사람만이 남긴다.


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 로버트 글릭은 누군가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을 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먼저, 내 마음을 아프게 해보세요.” 결국 가장 절실한 글은 기쁨이 아니라 상처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이 말처럼, 사랑을 다루는 글은 단순한 행복의 기록이 아니라 감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비로소 밀도를 갖는다.

임경선 작가의 소설 '다 하지 못한 말'은 사랑이 주는 설렘과 황홀뿐 아니라 이면의 고통과 소모까지도 담담하게 드러내며 사랑의 고통을 견뎌낸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안겨준다.

이별 후에야 비로소 가능한 객관화


'다 하지 못한 말'의 주인공 '나'는 스스로의 일상을 단단히 지키며 살아가던 독립적인 직장인이다. 그런 그는 피아니스트 '당신'을 만나면서 안정적이던 삶은 서서히 균열을 맞는다. '나'는 감정에 휩쓸리듯 사랑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흔들리고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이별 후 '나'는 한때 깊이 사랑했던 관계를 복기하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실체를 다시 들여다본다.

복기의 끝에서 마주한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니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이 정말 '그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상대를 충분히 알지 못한 채 관계를 시작했고,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사랑의 방향이 어긋나 있었을 가능성을 자각하게 된다.

우리는 그의 이상화된 모습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 속 주인공들의 뜨거운 사랑은 점점 '깊이'보다 '효율'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요즘의 연애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최근 청년층에서는 연애 자체를 선택하지 않는 흐름도 뚜렷해지고 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만 19세부터 34세까지 비혼 청년 104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연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감정·시간 소모가 부담된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비연애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전 세계 17개국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성인 1만88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삶에서 가장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서 한국만 '물질적 행복'을 삶의 최고 가치로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애를 하더라도 방식이 달라졌다. 짧은 시간 안에 여러 사람을 만나 비교·선택하는 '로테이션 소개팅'처럼 효율적인 만남 구조가 확산되고, 깊은 관계보다는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소설 속 '나'는 이별 후 “어쩌면 나는 당신이 아니라, 사랑을 사랑한 게 아니었을까. 당신은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을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머릿속에 그려낸 당신의 이상화된 모습을 사랑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되묻는다. 이 질문은 관계에서의 핵심을 짚는다. 사람들은 종종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이미지에 감정을 투사한다. 일부 단서만으로 상대를 해석하고, 부족한 부분은 기대와 욕망으로 채워 넣는다. 외롭고 마음이 지쳐 있을수록 누군가를 통해 그 공백이 채워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작은 호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조그만 끌림으로도 그를 나의 구원자로 여기는 마음, 이상화의 덫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계의 대상이 '현실의 타인'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이미지'로 바뀐다는 점이다. 상대를 독립된 인격이 아닌 나의 감정과 욕망을 채워줄 존재로 바라보게 된다. 이 경험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관계는 기대만큼 나를 채워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 결과, 상처를 줄이기 위해 감정을 절제하고 '효율적인 연애'를 선택하게 된다.

연애가 어려워진 이유


과거에는 감정을 따라 관계를 이어갔다면 이제는 감정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얼마나 설레는지보다 얼마나 덜 소모되는지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된 셈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관계가 점점 ‘안전한 선택’으로만 설계된다는 점이다. 기대를 낮추고, 깊이를 조절하고,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동시에 관계의 밀도는 그만큼 얇아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출발점에는 여전히 ‘이상화’가 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석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결국 연애가 어려워진 이유는 단순히 시대가 바뀌어서라기보다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투데이/정지윤 기자 ( chxmas@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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