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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이 위험하다”…디지털 기술 진화 이면의 민낯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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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 관광박람회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 개설
지난 21일 ‘2026 경남관광박람회’가 열린 창원컨벤션센터를 찾았다. 박람회장은 완연한 봄을 맞아 나들이 계획을 세우러 온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붐볐다.

인파로 북적이는 전시장 한쪽, 화려한 관광 홍보 부스 사이로 유독 관람객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이 있었다. 이 부스는 경남경찰청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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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 부스에 방문객들이 경찰관들의 설명을 듣고 있다.


여행 정보를 찾으러 온 관람객들은 이곳에서 예기치 못한 ‘현대판 괴담’을 마주했다.

“어머, 이게 정말 나라고요? 소름 돋아요.”

이 부스를 찾은 한 여성이 TV 화면을 보고는 짧은 비명을 질렀다. 부스 내 설치된 딥페이크(deep fake) 체험 기기에 얼굴을 비추자 영상 속 주인공의 얼굴이 순식간에 이 여성으로 바뀌었다.

딥페이크는 딥러닝(deep learning)과 가짜(fake)의 합성어로, 딥러닝 기술을 사용하는 이미지 합성 기술을 말한다.

정교하게 합성된 영상은 입 모양과 눈깜빡임까지 완벽하게 재현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중화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허위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인데, 디지털 기술의 진화가 가져온 그 이면의 민낯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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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 부스를 찾은 방문객이 딥페이크 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경남경찰청의 통계는 이러한 공포가 단순한 기우가 아님을 보여준다.

성폭력 처벌법상 허위 영상물 편집‧반포 범죄가 2024년 34건에서 2025년 83건으로, 144%나 급증했다.

과거에는 전문가의 영역이라고만 생각한 합성이 이제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떠도는 사진 한 장만으로도 가능한 ‘일상적 테러’가 된 것이다.

현장에서 만난 경남청 여성청소년과 안성인 경위는 “지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해 협박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범죄가 쉬워진 만큼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부스 운영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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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 부스를 찾은 방문객이 딥페이크 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부스의 다른 한편에서는 ‘숨은 카메라 찾기’가 한창이었다. 시중에 은밀히 유통되는 불법 촬영 기기들이 전시돼 있었다. 얼핏 보면 일반 안경이나 차 키, 라이터와 다를 바가 없었다.

기자는 애초 이 물건들 내부에 초소형 렌즈가 있다는 설명을 듣고 유심히 살펴봤지만,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기를 보던 한 남성 관람객은 “불법 촬영 기기를 뉴스로만 접하다 실제 직접 보니 이렇게 정교할 줄 몰랐다”며 혀를 찼다.

경남 지역 내 ‘카메라 등 이용 촬영 범죄’ 검거 수치는 매년 우상향하고 있는 추세다.

2023년 229건(224명)이었던 검거 건수는 2024년 309건(281명)으로 늘더니 2025년에는 362건(407명)에 달했다.

2년 만에 검거 건수는 약 58%, 검거 인원은 무려 81%가 급증했다. 이는 경찰의 단속 강화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불법 촬영의 독버섯이 깊게 퍼져 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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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경찰청이 마련한 ‘디지털 성범죄 ZERO 센터’ 부스를 찾은 가족 방문객이 딥페이크 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이번 행사가 단순 전시를 넘어 ‘센터’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 전문성에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현장에는 전문 상담사가 상주하는 ‘여성폭력 현장상담소’가 함께 운영됐다.

특히 상담소는 피해 접수부터 전문 상담, 그리고 보호 지원 연계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해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현장에서 507명이 참여한 ‘불법 촬영 범죄 인식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8%가 불법 촬영 피해를, 5%가 딥페이크 피해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명 중 1명은 이미 디지털 성범죄에 노출된 셈이다.

또 응답자의 97%가 불법 촬영‧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필요한 정책으로 △불법 촬영 부문에서는 ‘예방 점검 활동 강화(23%)’ △딥페이크 부문에서는 ‘범죄 단속 활동 강화(29%)’를 꼽았다.

무엇보다 이번 홍보 부스 체험이 인식 개선으로 이어졌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95%가 만족스러웠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SNS에서 불특정인과 사진을 공유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백승호 경남청 여성보호계장은 “인공지능 발달에 따른 기술의 편리함 뒤에 숨은 치명적인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게 이번 행사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경남경찰청은 이번 행사의 의미를 ‘도민과의 밀착형 예방’에 뒀다.

경찰은 이번 설문 결과를 토대로 도민들이 가장 불안해하는 ‘생활 밀착형 공간’에 대한 불법 촬영 점검을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또 급증하는 딥페이크 범죄에 대응해 경찰의 단속 역량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할 계획이다.

채경덕 여성청소년과장은 “디지털 성범죄가 갈수록 고도화 되고 있으며, 범죄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어 누구나 범죄 표적이 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며 “피해 시 신속하고 적극적인 신고가 이뤄져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당부했다.

창원=글·사진 강승우 기자 ks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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