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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걸 잃었지만…이곳, 이웃들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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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목계마을은 지금
경향신문

주민들이 지난 18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 마을회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80여명 중 2명만 치료 위해 이주
“큰일 겪고 나니 더 애틋하고 돈독”

1년 전 영남산불은 산림뿐만 아니라 마을과 지역공동체 여러 곳도 폐허로 만들었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의 목계마을도 그중 하나다. 이웃한 의성에서 지난해 3월22일 시작된 산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나흘 만에 이 마을을 덮쳤다. 마을에 사는 60여가구 대부분이 피해를 봤고, 17가구가 살던 보금자리는 완전히 불에 탔다. 주민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8일 찾아간 목계마을은 지난해 영남산불이 남긴 흉터가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마을 뒤편의 야트막한 산에는 불에 그을린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 있어 을씨년스러웠다.

마을 곳곳에 타버린 집을 철거하고 난 빈터가 보였고, 일부 집터에는 컨테이너로 지은 임시 숙소가 들어서 있었다. 수도배관만 땅 위로 덩그러니 솟아 있기도 했다. 영농창고가 사라진 자리에는 비닐하우스가 놓여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화마의 흔적이 여전하지만 주민들은 남아서 삶을 이어가는 쪽을 택했다. 주민 80여명 중 산불 이후 마을을 떠난 사람은 2명뿐이다.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주를 택한 사례다.

주택이 모두 파손된 가구 중 절반가량(8가구)은 새롭게 건물을 올렸다. 다른 주민들도 불탄 부분을 수리하거나 임시 주택 등에 머물며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다. 불길에 무너져 허물어진 담벼락은 지자체가 다시 세웠다.

초조하고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은 이웃끼리 서로 보듬으며 이겨내는 중이다. 노인정이 불에 타버려 지금은 마을회관이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날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산불로 집을 잃고 임시 숙소에 머물고 있는 류희자씨(78)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 뒷산이 더 검게 변하는 것 같다”면서 “도깨비불처럼 날아와 마을 곳곳을 덮쳤을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살아 있는 게 다행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산불로 국민학교 시절부터 모아둔 옛날 사진들, 30년 넘게 쓴 가계부가 타버렸다. 삶의 흔적이 사라져서 많이 속상했다”며 “그럼에도 오래 보고 지낸 이웃들이 있는 이 마을이 좋다. 지금 와서 어디를 가겠나”라고 했다.

이금남씨(68)는 지난해 산불의 기억이 더욱 고통스럽다. 당시 불로 아주버님이 아내를 잃었기 때문이다. 영남산불로 인한 사망자 31명 중 1명으로, 이 마을의 유일한 사망자였다. 그는 “(아주버님이) 산불 당시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서 아직까지 후유증에 시달리고 계신다”면서 “산불 전에는 잔병치레 한번 없었는데, 요즘도 식사를 제대로 못하고 기침을 자주 하신다”고 걱정했다.

김춘화씨(73)는 “영농철에 논이나 밭두렁을 태우는 일은 서로 조심하고 금지하는 분위기가 마을 전체에 퍼져 있다”며 “가끔 누군가 불을 냈다는 뉴스를 보면 한목소리로 분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일을 겪고 나니까 이웃들이 더 애틋해지고 돈독해졌다”며 “마을 사람들이 더 자주 모이면서 힘을 주고 있다”고 했다. 청송 |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청송 | 글·사진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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