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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것 같다고요? 그저 벗어났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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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展
페미니즘 사진 작가 故박영숙 개인전
아라리오 서울서 내달 18일까지 개최
'미친년들' 포함 41점과 영상 총망라
억눌린 여성의 현실 도발적으로 표현


파이낸셜뉴스

박영숙 '내 안의 마녀 #5' 유족 및 아라리오 갤러리 제공


살림과 육아를 내팽개친 불량한 여자가 매니큐어를 칠하고 정면을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품을 것이 없어 공단 베개를 끌어안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는 넋 놓은 여자도, 한복 치마 끈을 풀어헤치자 옥죄던 가슴이 열려 신나게 웃어대는 실성한 여자도 있다. 전시장에는 우리 사회가 그간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지탄의 대상인 여자들의 모습이 가득 채워져 있다.

한국 페미니즘 사진의 선구자인 박영숙 작가(사진)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하는 자리가 서울 종로에 마련됐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은 지난해 10월 박 작가 별세 이후 첫 개인전 '보라, 저 여자가 노래하고 춤춘다'를 다음달 18일까지 개최한다고 23일 밝혔다.

그는 한국에서 페미니즘 사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1세대 작가다. 사진 속에서 대상화돼 온 여성을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등장시켰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를 대표하는 '미친년들' '육체 그리고 성' '내 안의 마녀' 주요 연작 등 사진 41점과 영상, 아카이브 자료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갤러리 1층과 지하 1층에서는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발표한 대표 연작을 집중 조명한다. '육체 그리고 성(1998)'과 '미친년들(1999)', '상실된 성(2001)',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2002)', '내 안의 마녀(2005)', '꽃이 그녀를 흔들다(2005)'는 여성의 몸과 욕망, 억압과 광기를 정면으로 응시한 작업들이다. 사회적 통념에 갇힌 '여자'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스스로 노래하고 춤추는 존재로 재현한 작가의 시선이 집약돼 있다.

3층에서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초기 작업을 통해 작가의 문제의식이 형성된 궤적을 조망한다. '장면(1963-67)', '마녀(1988)', '장미(1988)' 등 흑백 사진 연작은 이후 등장하는 '광기 어린 여자'의 원형을 예감하게 한다. 아날로그 슬라이드 필름 영사 방식으로 제작된 영상 작업 '자궁의 노래: 이제 크신 어머니 자고 깨니(1994)'는 디지털로 복원돼 함께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대표작인 '미친년들' 연작(1999~2019)은 허공을 응시하는 여성, 한복 치마끈을 풀어헤친 채 웃는 여성 등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난 여성들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는 여성의 억눌린 현실을 '미친년'이라는 도발적인 화두로 드러내며 여성의 주체성과 분노를 시각화했다.

'미친년들' 연작 가운데 1999년작은 남성 위주의 사회적 관습에 의해 인내와 침묵을 강요당해 온 역사 속 모든 여인들을 위해 그려진 게 특징이다. 이후 20여년간 다양한 연작으로 변주된 '미친년' 프로젝트는 "자신을 미치게 하는 고통이 무의식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모른 채, 정신을 놓아버릴 정도의 고통들을 겪어내며 참고 또 참았던, 그렇기에 미친년이 되고 처녀 귀신이 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여자들을 위해 오늘의 여자들이 대신 수행하는 몸짓이자 기록"이라고 정의한다.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 연작(2002)도 주위 여성들의 경험을 작품의 서사에 녹여낸 결과물이다. 화면은 반복되는 일상의 가사 노동을 행하는 여자들이 '미친년의 시공간'을 떠올리고 상념에 젖어드는 순간을 포착한다. 포토 콜라주 '마녀' 역시 여성 억압의 역사를 환기하는 작품이다. 서양의 마녀 화형 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어 억압받고 희생된 여성들의 기억을 불러내고 위로하려는 메시지를 담았다. '마녀'는 전시에 출품된 또 다른 포토 콜라주 '장미(1988)'와 함께 1988년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여성해방 시와 그림의 만남: 우리 봇물을 트자'에서 처음 선보인 바 있다. 두 작품은 훗날 박 작가의 페미니즘 사진에 유의미한 계기를 마련했다.

아라리오 갤러리 서울 측은 "박 작가는 사진의 역사 속에서 대상화돼 온 여성을 자기 서사의 저자이자 발화의 주체로 격상시키고 있고, 이 작가는 조형 감각을 생활 속으로 확장하며 가구를 '쓰이는 조형'이자 일상 속에서 경험되는 조각으로 제시한다"고 평했다.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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