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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3800건이나 접수하기도”…전자소송·AI가 진입장벽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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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 사라진 소송공화국]
<중> 낮아진 문턱 소송의 대중화
생성형 AI ‘법률 비서’ 역할 거뜬
AI발 소송 남발 사태 이어질수도
실제 판례 꾸며내 재판까지 영향
서울경제

“친구가 1억 원을 빌려간 뒤 연락을 받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대화창에 질문을 입력하자 불과 2초 만에 답변이 쏟아졌다. 챗GPT는 “개인적 문제를 넘어 법적 대응을 검토해야 할 단계”라며 “내용증명을 보낸 뒤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민사소송을 제기하라”고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내용증명과 소장 초안까지 순식간에 써냈다. 변호사가 내놓을 법한 답변을 AI가 뚝딱 완성한 것이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앤스로픽의 클로드 등 생성형 AI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AI가 사실상 ‘법률 비서’ 역할까지 수행하는 시대가 본격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맞춤형 법률 조언을 얻기 위해 상담료를 내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야 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기본적인 법률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전자소송 시스템의 보편화까지 맞물리면서 소송 제기의 문턱이 한층 더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대법원에 따르면 2024년 처리된 민사소송 가운데 전자소송 비중은 99.8%에 달했다. 민사 1심 본안 사건의 3분의 2 이상은 양측 모두 또는 최소 한쪽 당사자가 변호사 없이 진행한 사건으로 나타났다. 과거에는 소장을 작성하고 증빙서류를 갖춰 직접 법원을 찾는 과정 자체가 일반인에게 큰 부담이었지만 이제는 AI가 소장과 준비서면 초안을 작성해주고 전자소송 시스템이 이를 온라인으로 접수할 수 있게 하면서 절차적 장벽까지 크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법률 지식이 부족한 개인도 AI의 도움을 받아 서류를 만들고 전자소송으로 곧바로 사건을 접수할 수 있게 되면서 소송은 훨씬 쉽고 빠르게 제기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특히 법조계에서는 전자소송의 편의성과 생성형 AI의 대중화가 결합할 경우 소송 건수가 지금보다 더 가파르게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 소송 남발로 알려진 A 씨는 2024년 상반기 대법원이 심리한 민사 사건 7283건 가운데 3830건을 혼자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A 씨는 소송이 각하되면 항소하고 대법원 판결 뒤에는 재심까지 청구했다”며 “이런 사람이 AI까지 활용한다면 소송은 더욱 급증하고 법원의 행정력 낭비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AI를 활용한 소송이 늘면서 법조계에서는 이른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으로 오히려 재판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AI가 내놓는 답변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 법령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제시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법관이 제출된 자료를 일일이 다시 확인해야 해 재판 진행이 지연될 수 있다. 한 부장판사는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된 서면을 보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판례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혼선을 줄이기 위해 법원도 대응에 나섰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0일부터 사법정보공개포털에서 ‘허위 사건번호 확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AI가 생성한 허위 사건번호로 인한 이용자 혼선을 막고 사법 정보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법조계에서는 AI를 재판과 법률 서비스에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을지를 둘러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이미 AI 기반 법률 서비스와 관련한 갈등도 확산하고 있다. 최근 일본생명보험(닛세이)의 미국 법인은 오픈AI를 상대로 챗GPT가 변호사 자격 없이 법률 조언을 제공해 회사가 불필요한 소송에 휘말리는 피해를 입었다며 1030만 달러(약 156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김성태 기자 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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