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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증명사진의 비밀…다른 간부와 ‘거꾸로’ 왜?[청계천 옆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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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정치 현장 이모저모포토슬라이드 이동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 결정을 받들고 위대한 우리 국가의 줄기찬 도약과 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애국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선 역사적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가 수도 평양에서 개회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국무위원회 명단. 평양 =노동신문 뉴스1


오늘(2026년 3월 23일) 북한 노동신문은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회의 개막을 보도하며 국무위원회·내각 구성원들의 증명사진을 대거 공개했다. 그런데 사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눈에 띈다. 인공기(북한 국기)의 위치가 직급에 따라 다르고, 무엇보다 김정은의 사진은 다른 모든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구도를 취하고 있다.

●인공기가 말하는 위계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부위원장 등 핵심 직위의 인물들 사진에는 인공기가 피사체의 왼쪽에 배치되어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인물들의 사진에는 인공가 없거나, 배경이 단순하게 처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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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 결정을 받들고 위대한 우리 국가의 줄기찬 도약과 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애국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선 역사적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가 수도 평양에서 개회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내각총리, 부총리 등 고위 간부 명단. 평양 =노동신문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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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조선노동당 제9차 대회 결정을 받들고 위대한 우리 국가의 줄기찬 도약과 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를 열어나가기 위한 애국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선 역사적 시기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가 수도 평양에서 개회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국무위원회 명단. 평양 =노동신문 뉴스1


이것은 단순한 촬영 관행이 아니다. 인공기와 함께 찍힌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지위를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 단순한 소품 하나로 수십 명의 관료들 사이에 촘촘한 위계질서를 새겨 넣었다.

●김정은의 사진은 왜 다른가

그러나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김정은의 사진이다. 다른 인물들의 사진에서 인공기는 피사체의 왼쪽에 위치한다. 그런데 김정은의 사진에서 그는 인공기보다 더 왼쪽에 서 있다. 즉, 국기가 오른쪽 배경에 놓이고 김정은이 화면의 가장 왼쪽, 시각의 출발점을 차지하는 구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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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는 3월 22일 제15기 첫 국정활동으로 되는 제1차 회의에서 김정은동지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으로 또다시 높이 추대하였다”고 보도했다. 평양 =노동신문 뉴스1


이 배치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시각심리학의 기초 개념을 알아야 한다. 시선의 흐름에서 보통 시작은 왼쪽이다. 특히 한글과 영어 등 좌횡서 문화권에서 그렇다. 따라서 가장 먼저 인식되는 자리, 가장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자리다. 신문 1면의 가장 왼쪽 상단이 대부분 톱기사로 배치되는 것처럼 최고의 위치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인공기보다 왼쪽에 선다는 것은 “나는 국가보다 앞선다”는 시각적 선언이다. 국기는 배경으로 물러나고, 김정은이 전경(前景)을 장악한다. 보는 이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김정은에게 먼저 닿고, 그다음에 국기를 인식하게 된다.

인공기 배경 김정은의 증명사진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의도는 시각적 차별화다.

오늘 노동신문에는 수십 명의 관료 사진이 일렬로 게재됐다. 비슷한 정장, 비슷한 조명, 비슷한 배경. 이 균질한 배열 속에서 김정은의 사진만이 다른 구도를 취한다. 이것이 바로 차별화의 전략이다.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하나의 이질적 요소는 즉각적으로 눈을 끌어당긴다. 독자는 의식하지 못한 채로 김정은의 사진에 특별한 주목을 부여하게 된다. 사진 배치만으로 “이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카테고리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무의식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 사진 한 장이 만드는 정치적 현실

이런 시각적 연출이 매일 반복될 때 그것은 단순한 미적 선택을 넘어 정치적 실재가 된다. 노골적인 구호보다 저항감 없이, 더 깊이 스며드는 설득이다. 사진은 현실을 기록하지만, 동시에 현실을 구성한다. 오늘 노동신문의 사진 배치는 북한 선전 기구가 그 사실을 얼마나 정교하게 실천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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