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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도, 알고도 놓쳤다”···군산·울주·임실이 드러낸 복지 ‘공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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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보건복지부는 22일 정은경 장관 주재로 위기가구 사망 사건 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복지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보건복지부 제공


열흘 새 전국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이 잇따르며 ‘발굴·신청·지원’으로 이뤄지는 복지 체계 전반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단계마다 별도 문턱을 세워두고, 당사자가 이를 넘어야만 가동되는 ‘수동적 복지’ 체계를 ‘적극적 개입’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22일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10일 전북 임실(3명)을 시작으로 17일 전북 군산(2명), 18일 울산 울주(5명)에서 잇따라 발생한 비극은 복지망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 문제가 아니었다. 세 사건 모두 위기 신호가 포착됐지만, 끝내 보호로 전환되지 못했다.

첫 번째 단계인 ‘발굴’은 군산 사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군산시 경암동 아파트에서 숨진 70대 어머니와 30대 아들은 올해 초부터 월세와 전기·수도요금을 내지 못했다. 지난 2월부터는 주변과 연락도 끊겼다. 이들은 정부 공과금 체납 모니터링 기준인 3개월에 한 달을 못 미쳐 위기가구 발굴망에 걸리지 않았다.

두 번째 방어선인 ‘신청’은 울주 사건에서 벽에 부딪혔다. 울주군 다세대주택에서 숨진 30대 가장 A씨는 지난해 3월 복지 사각지대 발굴 명단에 올라 긴급 생계·주거지원비 806만원과 생필품을 지원받았다. 담당 공무원이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안내했지만 A씨는 끝내 거부했다. 더 개입할 수단은 없었다. 수급 자격을 가리기 위해서는 가구의 소득·재산 조사가 필수적인데, 현행 금융실명법 등은 당사자 서면 동의 없이 소득·재산 정보를 조회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지막 ‘지원’은 임실 사건에서 끊어졌다. 숨진 60대 아들 B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해 가며 거동이 불편한 90대 노모를 수년째 홀로 돌봐왔다. 이들은 사망 이틀 전 자살을 시도해 병원 치료를 받았고 퇴원 당일 정신건강복지센터 방문상담이 이뤄졌다. 하지만 돌봄 부담을 즉각 덜어줄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은 정신건강복지센터 소관 밖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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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사건 모두 복지 제도가 작동했음에도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정해 놓은 기준 안에 들어오지 못하면, 지원의 손길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굴망에서 빠진 대상자를 현장 판단으로 보완하지 못했고, 수급 신청 문턱에 막혀도 직권 개입은 이뤄지지 않았다. 상담은 진행됐지만 돌봄·생계 지원이 자동으로 연계되지도 않았다. 경직된 복지 구조의 한계를 드러냈다.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22일 정은경 장관 주재로 위기가구 사망 사건 관련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복지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된 ‘신청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공무원의 직권 신청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특히 울주 사건처럼 공무원이 개입하고 싶어도 당사자 동의가 없어 막혔던 문제를 풀기 위해, 직권 신청 시 금융실명제 예외를 적용하는 등 관계부처와 정책 개선을 논의할 방침이다. 또 극단적인 상황 전 위기를 예방할 수 있도록 긴급복지 선정 기준 완화,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 고도화 등도 논의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발굴 고도화’나 ‘직권 신청 확대’ 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직권주의는 정보가 닿지 않아 신청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 뿐, 경직된 수급 자격 때문에 지원을 거절당하는 문제까진 해결할 수 없다”며 “일선 복지 공무원 등이 복합 위기 가구를 판단하고 집중 개입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역시 “신청 절차를 손보는 것을 넘어 기준액에서 단돈 10원, 20원만 초과해도 수급에서 탈락시키는 가혹한 선정 기준부터 개편해야 한다”며 “발굴을 해도 실제 지원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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