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은 어떻게 망하는가.
미국 정치 저널리스트인 팀 앨버타는 저서 ‘미국의 살육’에서 이 질문에 서늘한 답을 내놓는다. 정당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스스로 끌어들인 분노에 의해 무너진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가 ‘공화당 자멸의 기록’이라 평가한 이 책은 주류 공화당이 약화되고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해 당을 장악하기까지의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불행하게도 지금 대한민국 보수 주류인 국민의힘의 모습은 10여 년 전 미국 공화당이 겪었던 내전과 닮아 있다.
앨버타가 지목한 공화당 몰락의 출발점은 2010년의 티파티 운동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며 결집한 극우 보수 세력은 기성 정치권을 향해 거친 분노를 쏟아냈다. 공화당 엘리트들은 이 에너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했다. 선거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파우스트의 거래’였다. 분노로 결집한 지지층은 곧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정당의 이성은 마비됐다. 결국 거대한 분노의 파도는 극단적 선동가 트럼프를 보수 진영의 중심으로 밀어올렸다.
지금 국민의힘이 서 있는 자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을 에워싼 이른바 ‘보수 유튜버’ 집단과 열성 지지층은 미국의 티파티를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정교한 보수 철학이나 정책 비전보다 상대 측에 대한 증오와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세를 키운다. 문제는 당이 이들을 제어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지도부가 ‘윤어게인’으로 상징되는 강성 지지층에 포획된 사이 보수의 주도권은 당사가 아니라 유튜버의 마이크로 넘어갔다.
더 큰 비극은 이 과정에서 보수 정당의 기반과 철학이 무너진다는 점이다. 앨버타는 공화당이 승리에 집착해 분노의 팬덤에 기대기 시작하면서 에이브러햄 링컨에서 로널드 레이건으로 이어졌던 주류 공화당의 정체성이 붕괴됐다고 진단한다.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는 그대로다. ‘자유무역’은 보호무역주의에 자리를 내줬고 합리적 보수가 지켜온 동맹의 가치는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앞에 무너졌다. 미국 주류 공화당이 지켜온 가치가 붕괴되며 전 세계는 각자도생의 혼돈 속에 빠져 있다.
우리 보수 역시 중도 확장이나 시대에 맞는 보수 재정립을 말하면 곧바로 ‘내부 총질’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보수의 싱크탱크였던 여의도연구원은 더 이상 중장기 담론을 생산하지 못한다. 당원 게시판은 특정 인물에 대한 맹목적 지지와 반대파에 대한 인신공격의 장이 됐고 지도부는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민심과 동떨어진 결정을 반복한다. 수도권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2040세대의 고민이나 중도층의 실용적 요구는 ‘TK의 정서’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번번이 굴절된다.
보수가 길을 잃고 헤매는 사이 국내 정치 지형은 회복 불가능한 비대칭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뉴이재명’이라는 실용적 기치 아래 더불어민주당이 외연을 넓히는 동안 갈 곳 잃은 합리적 보수층의 상당수는 이미 민주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일본의 자민당 체제와 같은 ‘거대 1당 국가’로 고착화될 가능성이 크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독주는 건강한 민주주의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앨버타는 2010년대 미 공화당 지도부를 ‘호랑이 등에 올라탄 사냥꾼’에 비유했다. 지지층의 분노라는 맹수를 이용해 권력을 잡았지만 결국 그 분노에 잡아먹혔다는 것이다. 호랑이에서 내리는 순간 사냥감이 될 것이라는 공포가 정치인들을 더 극단으로 내몰았다는 그의 분석은 오늘날 국민의힘에도 유효하다.
정당의 진짜 몰락은 선거 패배가 아니다. 정책으로 승부하는 능력을 상실하고 ‘대화가 불가능한 집단’으로 낙인찍히는 순간, 그 생명은 끝난다. 국정의 균형을 잡아야 할 보수가 제 역할을 못 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국민의힘은 지금이라도 유튜버의 마이크 너머 다수의 국민들을 바라보기를 바란다. 호랑이 등에서 내려올 용기가 없다면 결국 낭떠러지로 추락하게 될 것이다.
윤홍우 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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