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철 세프. 강민철레스토랑 |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미식을 완성하는 최고의 재료는, 어쩌면 사랑일지 모른다.
오래 전부터 미식가들은 음식의 맛에 만든 이의 마음이 담긴다고 믿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에는 사랑의 맛이. 미워하는 마음으로 만든 음식은 미움의 맛이, 슬픔으로 마음으로 만든 음식에는 슬픔의 맛이 난다고 말이다. 부모님이 아이를 위해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는 건, 결코 과장만은 아니다.
강민철 셰프는 이 이야기가 단순한 감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떤 마음으로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분명히 달라진다는 것을, 그는 현장에서 수없이 확인해왔다. 마음을 쓰는 만큼 재료를 더 정교하게 다듬고, 불을 더 오래 들여다보며, 스스로도 모르게 한 번 더 손길을 보태게 된다. 그 미세한 차이들이 결국 맛을 바꾼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레시피라고 하더라도 어떤 마음으로 만드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는 걸 현장에서 늘 목격하고 있습니다. 마냥 미신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음식에 대한 애정과 손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요리를 만들면, 한번이라도 더 국자에 휘젓고, 불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맛의 큰 차이를 만듭니다. 애정은 정성을 만드니깐요.”
강민철 셰프. 강민철레스토랑 |
그렇기에 강민철 셰프가 직원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이 음식과 손님을 대하는 마음이다. 특히 ‘인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단 5분 내에 인관관계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관계의 시작인 인사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분 좋은 시작은 그날 식사의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식은 감정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만큼 미식을 실패로 만드는 지름길은 없다.
이어지는 것은 음식을 대하는 마음이다.그는 직원들에게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대하라고 말한다. 그것만큼 애정을 가지고 요리를 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해, 연인을 위해, 부모를 위해. 대상이 바뀌는 순간 마음가짐 역시 본능적으로 바뀐다. 본능에 가까운 변화이기에 쉽지 않지만, 그는 그 마음을 손님에게도 확장하기를 바란다.
“가끔씩 직원들에게 가족을 모시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가족이 오는 날 출근하는 시작부터 자세가 달라집니다. 재료를 손질하고, 요리를 하고, 플레이팅을 하고 서비스를 할 때 대하는 모든 마음이 달라지고, 그것은 곧 태도로 드러납니다. 행사가 끝난 후 직원들과 면담을 하면서, 꼭 그 말을 합니다. ‘그 마음 그대로 손님들을 대하라’고요.”
강민철 셰프의 요리. 강민철레스토랑 |
이는 강민철 셰프의 스승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그는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알랭 뒤카스(Alain Ducasse), 조엘 로부숑(Joël Robuchon)과 같은 전설적인 거장 아래서 요리를 배웠다. 강민철 셰프는 그들로부터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제가 거장으로부터 특별한 레시피를 전수받았다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들이 제게 가르쳐 준 건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상태가 음식에 전달된다’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요리를 함에 있어 시작이며 기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을 가르쳐준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손님들, 행복한 불편함 느끼기를”
강민철 셰프. 강민철레스토랑 |
강민철 셰프는 손님이 ‘행복한 불편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기분좋은 떨림과 설렘을 가지고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레스토랑에서 손님은 영화 속 가장 멋진 주인공이어야 한다.
강민철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서 그곳을 찾는 것이 아니다.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추억으로 기록하기 위해 선택한다.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지불했다. 그것은 고통을 참고 견디며 흘린 땀과 눈물의 대가다. 강민철 셰프는 이를 알기에 손님이 레스토랑에서 만큼은 최고의 대우를 받기를 바란다.
강민철레스토랑의 아뮤즈 부쉬. 강민철레스토랑 |
“저희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들이 행복한 불편함을 느끼길 바랍니다. 레스토랑을 예약한 순간부터 손님은 영화 속 주인공입니다. 가장 멋진 옷을 차려입고, 외모를 단장하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지금껏 느끼지 못한 최고의 대우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결코 편안함이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기분 좋은 떨림은 추억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손님의 결정이 결코 실망이 되지 않도록, 음식뿐 아니라 서비스와 분위기, 레스토랑 안의 모든 것으로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드리고 싶습니다.”
강민철 셰프의 이런 철학은 테이블 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첫 순서에 해당하는 아뮤즈 부쉬(amuse-bouche)는 등장만으로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다. 순백의 테이블을 캔버스 삼아 올려진 아뮤즈 부쉬는 예술작품과 같다. 한국에 존재하는 파인다이닝 중에서도 아뮤즈 부위가 주는 첫 인상만큼은 최고이지 않을까. 조각과 같은 다양한 오브제 위에 올라간 음식들은 샴페인과 함께 페어링해 시각적으로뿐 아니라 미각적으로도 화려하고 화사한 쾌감을 선사한다.
전통 위에 덧입혀진 강민철 셰프만의 色
강민철 셰프. 강민철레스토랑 |
강민철 레스토랑은 클래식한 오트 퀴진(Haute cuisine)의 프렌치에 머무르지 않는다. 강민철 셰프의 스타일로 재해석한 누벨 퀴진(Nouvelle cuisine)이라고 해야 할까. 강민철 셰프의 프렌치는 전통을 외면하지는 않는다. 전통 위에 강민철 셰프의 색을 덧입혔다. 화려함과 심플함을 넘나든다. 때론 일본의 연회식 가이세키를 연상케하기도 한다.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는 포인트는 강민철 셰프의 스타일이면서, 전통적인 깊이있고 묵직한 소스의 전통적 농후함은 유지한다.
동양적인 형태의 미감을 보이는 강민철셰프의 요리. 클래식한 프렌치와 다른 강민철 셰프만의 색을 보여준다. 강민철레스토랑 |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전통과 현대의 만남입니다. 그것부터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클래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저희의 색을 입히고자 합니다. 동시에 손님들에게는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맛을 제공하려 하고 있습니다. 상상하지 못한 맛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말린 죽순을 태워 소스를 만든다거나 미역을 이용한 육수를 이용한다든지 기존 플렌치에서 사용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맛을 찾으려 계속해 도전하고 있습니다.”
강민철레스토랑 |
강민철 셰프는 2024년 한식 다이닝 기와강을 오픈했다. 프렌치를 하는 셰프가 한식 다이닝에 도전하는 건 당시에는 꽤나 이색적인 일이었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한식을 손 놓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에 한식 다이닝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기와강 역시 전통적인 한식 위에 강민철 셰프의 색을 입혀 새로운 맛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올해 미슐랭 1스타에 이름을 올렸다.
“서양의 음식을 연구하고 책을 보면서, 우리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왔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역사와 음식을 존중하지 않은 게 한 없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한식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한식 다이닝까지 열게 됐습니다. 기(氣)와강(江)은 우리의 에너지가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입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에 모여 전 세계를 돌듯, 우리의 에너지가 강물처러 돌고 돌아 모두에게 전달되기를 말입니다.”
심플함이 돋보이는 강민철 셰프의 요리. 강민철레스토랑 |
결국 강민철 셰프가 요리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거창한 기술이나 화려한 기교가 아니다. 한 접시의 음식에 담긴 마음, 그리고 그것이 사람에게 전해지는 순간이다. 사랑으로 시작된 손길은 정성이 되어 맛을 만들고, 그 맛은 다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미식이란 결국 혀끝에서 끝나는 경험이 아니라, 마음에서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