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치료비와 끝없는 가려움보다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은 ‘이번 약도 안 들으면 어쩌나’ 하는 불확실성이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들에게 이러한 ‘시행착오’는 일상에 가깝다.
하지만 최근 생명공학 혁신 기술인 ‘피부 오가노이드’가 등장하면서 환자의 몸이 아닌 실험실에서 최적의 치료제를 찾아내는 ‘정밀 의료’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피부 오가노이드란 환자의 혈액이나 피부에서 얻은 세포를 배양해 만든 ‘장기 유사체’다. 기존 2차원 세포 배양 방식은 피부의 입체적인 구조를 재현하지 못해 실제 약물 반응을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반면 피부 오가노이드는 표피와 진피, 모낭과 땀샘, 피지선까지 포함한 3차원 구조를 가진다. 이 기술의 핵심은 환자의 유전 정보와 체질 특성을 지닌 ‘복제 피부’를 실험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환자의 역분화 줄기세포를 이용하면 환자가 지닌 면역 과민 반응이나 피부 장벽 결함을 그대로 재현한 ‘질병 모델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는 환자에게 직접 약을 투여해본 뒤 몇주, 몇달을 기다려 경과를 확인해야 했지만, 이제는 환자의 세포로 만든 수십개의 ‘미니 피부’에 각기 다른 약물을 미리 테스트해볼 수 있다. 이를 ‘드러그 스크리닝’이라 한다. 환자 본인은 부작용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서도 자신에게 가장 효과적인 ‘골든 치료제’를 단기간에 찾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맞춤형 치료 개념은 한의학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한의학은 수천년 전부터 환자의 체질과 상태에 따라 처방을 달리하는 ‘개인 맞춤형 의료’의 기틀을 닦아왔다.
다만 주관적인 변증에 의존한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왔으나 이제는 피부 오가노이드라는 객관적인 시험대를 통해 한의약의 정밀함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한약의 장점인 ‘다중성분-다중타깃’ 특성을 이용해 특정 환자의 유전적 환경에서 피부 장벽을 어떻게 복구하고 염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하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의학연구원 연구팀은 이러한 전통 의학의 지혜를 첨단 바이오 기술로 입증하며, ‘경험의 의학’을 ‘데이터의 과학’으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고 있으며, 현재 피부 장벽을 구성하는 핵심 단백질인 필라그린을 평가할 수 있는 피부 오가노이드를 개발 중이다.
아토피 피부염은 인간 특유의 복합적인 면역 질환이기 때문에 동물 모델에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피부 오가노이드는 인간 피부를 모사해 신약 개발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핵심 플랫폼이 된다. 한국의 우수한 줄기세포 배양 기술과 정보기술(IT) 기반의 데이터 분석 역량이 결합한다면 글로벌 아토피 치료제 시장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20년 전만 해도 상상에 불과했던 ‘나만을 위한 맞춤형 피부 치료’는 이제 실험실 접시 위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약물 유목민’이 정착할 수 있는 시대, 피부 오가노이드 기술이 그 이정표를 세우고 있다.
채성욱 한국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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