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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사고, 이혼, 밥 대신 소주 두 병으로 버티던 삶…그는 이제 누군가를 살린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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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溫記: 따스함을 기록하다)
강상국 초록우산 후원자 인터뷰
추락사고·이혼·고립, 벼랑 끝 시작한 ‘밑반찬 사업’
생애 첫 적금 모아 50만원 기부
“돈은 남기고 가야” 유산기부도 결심
헤럴드경제

19일 초록우산 대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는 강상국 후원자. 정주원 기자



[헤럴드경제=정주원 기자] “받기만 하고 살았지, 준 적은 없더라고요.”

지난 19일 초록우산 대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강상국(64)씨는 자신의 삶을 짧게 정리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지는 문장이었다. 그는 지금 4년째 이곳에서 반찬을 만들고, 시설을 정리하고, 봉사자가 비는 자리를 채우며 지낸다. 직원들은 그를 ‘명예 직원’이라 부른다.

복지관은 그의 일상 중심이 됐다. 반찬 만들기·시설 정리·장난감 소독 등 여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며 직원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몇 년 전만 해도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는 “이제는 밖에 나와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더 편하다”고 했다.

추락사고 뒤 무너진 삶 “밥 대신 술로 버텼다”
강씨의 삶이 급격히 기울기 시작한 건 추락사고 이후였다. 사고는 2011년 1월 18일, 4대강 사업이 진행되던 낙동강 공사 현장에서 발생했다. 그는 새벽 첫 작업으로 투입돼 카고 트럭 장비로 약 2톤에 달하는 철근을 내리는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길이 8m에 달하는 철근이 바람에 흔들리며 스윙하자 두 사람이 잡아 고정해야 했지만, 한 작업자가 순간 놓치는 사이 철근이 뒤통수를 강하게 가격했고 그대로 아래로 추락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철근공으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그는 이 사고로 척추를 크게 다쳤다. 병원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이후 후유증으로 사지마비 증상이 두 차례나 나타났다.

영남대학교병원에서만 5개월 넘게 입원했고, 다른 병원에서도 수개월을 더 치료받아야 했다. 신경 손상으로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한동안은 목발에 의지해 생활해야 했다.

사고 이후 약 1년간 일을 쉬었고, 2012년부터는 앉아서 철근을 묶는 결속 작업 등 제한적인 형태로 현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몸 상태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고 3년 뒤에는 후유증으로 혈관이 막히는 증상까지 나타나 다시 입원과 재활을 반복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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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대구종합사회복지관 고독사 예방 프로그램 ‘반찬 만들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강씨의 모습. [초록우산 제공]



경제적 기반이 사라지면서 가족과의 관계도 흔들렸다. 그는 가족들을 더 이상 책임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미안함에 이혼을 선택했고 자녀들과도 멀어졌다. 당시 가지고 있던 아파트·아버지 유산 등 전 재산을 아내에게 넘기고, 자신은 몸만 나왔다. 현재까지도 아들·딸의 소식은 간간이 전해 들을 뿐, 직접 연락이나 교류는 없다고 한다.

강씨는 딸의 결혼식 사진인 휴대전화 배경 화면을 보여주며 “연락을 해도 받지 않더라. 그래도 사진은 지우지 못한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혼자가 된 이후의 삶은 급격히 무너졌다. 끼니를 챙기지 못했고 하루 두 병의 소주로 시간을 버텼다. 음식 섭취 없이 술만 마시는 생활이 6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그는 병원에서 간경화 진단을 받았고 체중은 45㎏까지 떨어졌다. 유도 6년·대학교 달리기 선수까지 했을 만큼 건강한 체력을 자랑하던 그는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으며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고 했다.

정신적으로도 극단까지 내몰렸다. 현관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던 날도 있었다. 강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그때는 살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버틴다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극단적 선택까지도 매일 고민하며 잠에 들지 못하는 일상이 반복됐다.

밑반찬 사업이 바꾼 일상…다시 사람들 사이로
그러던 그에게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2023년 복지관의 ‘밑반찬 사업’ 참여부터였다. 계기는 절박함이었다.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동사무소와 지역 복지관을 찾아다니며 살 길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초록우산의 반찬 사업을 소개받았다. 평소 반찬을 해 먹을 줄 몰라 끼니 해결조차 어려웠던 상황에서 ‘먹기 위해 시작한 선택’이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단순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직접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며 변화가 생겼다. 두부조림·제육볶음·콩나물무침 같은 반찬을 직접 만들고 집에 싸가고, 레시피를 따라 하며 집에 돌아가 다시 만들어보며 잃었던 체중·삶의 의지를 되찾았다.

강씨는 “처음에는 칼을 잡는 것도 어색했지만 하나씩 따라 하다 보니 몸이 조금씩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체중은 50㎏까지 늘었고 간경화 상태도 치료를 통해 점차 호전되기 시작했다.

생활 반경도 덩달아 넓어졌다. 집 안에 머물던 그는 복지관을 중심으로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정원 관리와 환경 정리 같은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농촌에서 자란 경험과 몸으로 익힌 기술이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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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온기’ 인터뷰_강상국씨 관련 사진. 지난해 복지관 목공예 프로그램에 참여한 강씨의 모습. [초록우산 제공]



강씨는 “뭐라도 심어놓으면 결과가 보인다”며 “그게 사람을 살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복지관 곳곳을 돌며 고장 난 시설을 고치고 복지관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소독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놀 곳이 마땅치 않은 마을 아이들이 사용할 장난감을 깨끗하게 닦아 다시 놓아두는 작업이었다. 그는 “누군가 쓰게 될 물건을 준비하는 일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고 말했다.

복지관은 그에게 단순한 프로그램 공간을 넘어섰다. 직원들과 이용자들은 자연스럽게 가족 같은 관계가 됐다. 이제 그는 직원들이 지쳐 보이면 “얼굴색이 안 좋아 보이네 무슨 일 있어?”라며 음료를 건네며 안부를 묻고, 필요한 일이 있으면 자신이 먼저 나선다.

“돈은 남기고 가야죠”…받던 삶에서 나누는 삶으로
강 씨의 삶이 가장 크게 달라진 지점은 ‘나눔’이었다. 그는 현재 매달 1만원을 복지관에 정기 후원하고 있다. 무려 담배를 줄이며 만든 돈이다. 금연의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눔을 위한 습관”이라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한다.

“많은 금액이 아니어도 꾸준히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기부를 위해 살면서 처음으로 적금을 들었다. 몇 년간 꾸준히 모은 50만원을 흔쾌히 기부했다. 현재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국가유공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생활조정수당’을 함께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수급자 자격이 유지되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는 지원금으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적금을 모아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강씨는 그 돈을 “처음으로 제대로 써본 돈”이라며 “내가 쓰는 것보다 남을 위해 쓰는 게 더 낫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사후에는 남은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조손가정을 비롯한 치료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쓰이길 바란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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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그린레거시’ 명패를 받은 강씨의 모습. [초록우산 제공]



강씨는 인터뷰 내내 “돈은 가져갈 수 없다”며 “결국 남기고 가야 한다”를 강조했다. 현재 그는 재활을 위해 수영을 다니며 건강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한쪽 귀는 기능을 잃었고 다리 신경 손상도 남아 있지만 꾸준히 몸을 관리하고 있다.

그는 건강을 챙기는 이유에 대해 한참을 생각한 뒤 “오래 살아서 더 나누려고 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처음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그는 거절했다. 나서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을 바꿨다.

“이걸 보고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나도 해볼까’라고 생각하면 좋겠어요.”

강 씨에게 나눔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저 자신이 받은 것을 조금이라도 돌려주는 방식이다. 그는 오늘도 복지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 달에도 같은 금액을 기부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거창하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다만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작은 ‘온기’로 남아 나눔을 망설이던 사람에게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되기를 바란다.

금액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처럼 적은 금액이라도 꾸준히 나누는 마음, 그 진심이 결국 누군가에게 닿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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