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호르무즈해협을 둘러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의 대치가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이란의 주변국 에너지시설 보복공격으로 치달았다.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는 금지선(레드라인)이 깨지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았다.
중동전쟁 격화 소식에 19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7.9원 급등한 150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전날 올랐던 주가도 급락했다. 이날 환율은 낮 거래 종가 기준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0일 이후 17년만의 최고치다.
그만큼 고환율ㆍ고물가(유가)ㆍ고금리의 '3고高' 파고가 거세졌다. 경제 및 외교안보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특히 석유ㆍ천연가스 등 에너지와 자원 공급망은 불안정(Unstable)ㆍ불확실(Uncertain)ㆍ예측 불가(Unpredictable)의 '3U' 상태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호언과 달리 중동전쟁은 시간이 갈수록 장기전 늪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석유 의존도, 특히 중동산 비중이 높은 한국으로선 고유가 충격이 길어질 것이란 걱정이 더 커졌다.
전쟁이 3~4개월 지속되면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웃돌고, 6개월까지 길어지면 150달러를 넘어서리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란의 기뢰 부설로 호르무즈 해협이 완전 봉쇄되면 국제 유가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정부는 18일 원유에 대한 자원안보 위기 경보를 기존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높였다. 아울러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어려운 쪽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며 "밤새워서 (하라)"라며 신속한 추경 편성을 지시했다. 최대 20조원 규모 '벚꽃 추경'설이 나돈다.
[사진|뉴시스] |
추경 요인은 존재한다. 국내 기름값은 지난 13일 최고가격제 도입 이후 다소 하락했다. 이로써 소비자 부담이 경감됐지만,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대응하는 대책은 못 된다. 국제 유가 상승세가 지속되고 가팔라지면 정유사에 보전해줘야 할 재정 부담이 커지기 때문이다.
재난ㆍ전쟁 등 비상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을 풀어 충격을 완화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것은 필요한 조치다. 문제는 '전쟁 추경' '에너지 추경'을 틈타 각종 예산 청구서가 들이닥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이미 올해 전년보다 8.1% 많은 727조9000억원 규모 '초슈퍼예산'을 짜둔 상태다.
이 대통령은 문화예술 분야 지원과 국세체납관리단 확대, 창업 프로젝트 지원 등을 거론하며 추경 필요성을 언급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이런저런 명목의 예산이 끼어들 소지도 다분하다. 과거 국회 심의 과정이 보여주듯 정부가 편성한 추경안을 심의하는 여야 의원들이 민원성 쪽지예산을 집어넣기도 한다.
중동전쟁이 격화ㆍ장기화하며 세계 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도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 속 경기 침체) 경고등이 켜졌다. 에너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이번 추경은 지난해 1인당 15만∼52만원 민생회복 지원금(소비쿠폰)을 뿌린 경기부양용 추경과는 달라야 한다. 이미 '3고' 파고가 거센 판에 막대한 재정이 풀려 총수요가 확대되면 인플레이션과 고환율 압력이 커지는 등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19일 확대거시경제회의를 열고 이번 추경은 고유가ㆍ고물가로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 농어민, 운수업 종사자 등에 대한 '직접 지원'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시장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국채 발행 없이 초과 세수 등을 활용한 '건전 추경' 기조를 지키기로 했다.
추경은 필요하고 빠른 집행도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선별적, 제한적으로 쓰도록 추경 규모와 용도를 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부터 경기 방어 효과가 크고 인플레를 자극하지 않는 분야에 집중해 편성해야 마땅하다.
석유 인프라는 파괴하지 않는 금지선이 깨지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10달러까지 치솟았다.[사진|뉴시스] |
취약계층을 지원할 에너지 바우처 재원을 마련하고, 고유가 타격이 큰 중소 수출기업을 도울 사업을 발굴해야 한다. 에너지 공급 다변화 및 효율화, 물류 지원용 투자 재원도 확보해야 한다. 동시에 승용차 5부제 운행과 대중교통 이용 권장 등 에너지 수요 억제책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추경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려면 정치권 협치도 긴요하다. 여야가 협의해 이번 '에너지 추경'의 원칙을 분명하게 정하고 제대로 실천하자. 여야 정당이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상호 감시하자. 시민단체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자. 과거 예산안 심의 때처럼 끼워 넣기를 시도하는 정치인의 명단을 공개하자.
중동 사태가 장기화하면 '3차 석유파동' 같은 쓰나미가 닥칠 수 있다. 반도체 경기와 증시 활황에 따른 법인세 및 증권거래세 징수 호조로 국채 발행 없이 마련할 수 있는 '착한 추경'이라도 국민 세금인 재정을 허투루 써선 안 된다. 추경을 세금이 더 걷히는 만큼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알뜰 편성하고 남는 것을 비축하는 것이 미래를 생각하는 정부의 자세다.
양재찬 더스쿠프 편집인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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