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제품 빠지고 비인기 품목만 내려
소비자 실제 혜택은 크지 않아…체감효과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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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편집자]
대통령이 "감사"한 가격 인하
유통업계에서 지난 한 주간 가장 많이 나온 기사가 뭐였을까요. 아마 가격 인하 관련 기사였을 겁니다. 담합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았거나 받을 예정인 제당·제분업계가 먼저 가격을 내리더니, 라면·제빵·제과·빙과업계도 경쟁하듯 가격 인하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이런 가격 인하를 자발적인 행동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실제로 가격 인하에 나선 기업들은 인하에 앞서 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물가 안정 대책을 논의했다고 하지만 이 자리에서 가격을 내리라는 압박 혹은 회유가 있었다는 건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재명 대통령/그래픽=비즈워치 |
답합으로 가격을 올렸던 밀가루와 설탕 가격을 '정당하게' 내렸으니 밀가루와 설탕을 많이 사용하는 라면과 제과 등의 업계도 가격을 내리는 게 맞다는 정부의 논리는 일견 합당합니다. 그간 원재료 가격이 올랐다며 예고 없이 가격을 인상했던 기업들로서도 변명할 거리가 마땅치 않았죠. 릴레이 가격 인하가 이뤄진 배경입니다.
가격 인하에 동참한 기업들의 면면을 보면, 롯데웰푸드, 오리온, 빙그레, SPC삼립,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대상, 해태제과, 팔도 등 내로라할 식품 기업들은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흡족해하며 "위기 극복 동참 기업에 감사"한다고 말할 만해 보입니다.
이게 뭔데?
그런데 인하한 제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라면업계가 대표 제품인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진라면을 인하 제품에서 제외했다는 소식은 지난 주 [주간유통]에서 알려드렸었죠. 그런데 빙과업계·제과업계·제빵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빙그레는 링키바·구슬폴라포 키위&파인애플·왕실쿠키샌드 피넛버터·밀키프룻 2종·로우슈거데이 2종·냠 등 8종의 가격을 내렸는데요. 이 중 폴라포와 링키바를 제외하면 홈페이지에서조차 정보를 찾기 힘든 비인기 제품군입니다. 그나마 폴라포는 8가지 맛 중 단 한 가지 맛만 인하합니다.
다른 곳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력 제품'이 빠진 건 비슷합니다. 9개 품목 제품 가격을 최대 20% 내렸다고 밝힌 롯데웰푸드는 빼빼로와 월드콘, 스크류바 등이 모두 제외됐습니다. 그나마 '엄마손파이'가 포함됐는데요. 공교롭게도 엄마손파이의 인하율은 인하 품목 중 가장 낮은 2.9%였습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
영업이익률이 17%에 달하는 오리온 역시 꼬북칩, 포카칩, 초코파이, 오징어땅콩 등 자랑하는 제품들 대신 배배와 바이오캔디, 웨하스 등 3개 제품만 100~200원 내렸죠. 해태제과도 맛동산, 에이스, 콘칲 등의 대표 제품 대신 계란과자 베베핀과 롤리폴리 2종만 인하에 돌입합니다.
각 사가 가격을 내린 제품들의 개별 매출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해당 제품들이 물가를 움직일 만한 힘이 없는 제품들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금 거론한 제품들을 최근 1년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분들도 많을 겁니다. 저만 해도 이번 가격 인하 제품 중 최근에 구매해 본 제품이 전혀 없었습니다. 지난주에 신라면·진라면·불닭볶음면이 빠졌다며 라면업계를 비판한 게 민망해지는 라인업입니다.
얻은 자와 잃은 자
사실 이번 가격 인하 이슈는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윈-윈입니다. 정부 입장에선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시그널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보여줬죠. 정부가 나서서 담합을 했던, 가격을 올렸던 '나쁜 기업'들을 혼내줬다는 인상도 줬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크게 손해볼 것 없는 거래였습니다. 가격 인하를 하긴 했는데, 애초에 매출이 많지 않은 제품들이라 피해가 크지 않습니다. 매출 50억원짜리 제품의 가격을 4% 인하했다고 하면 가격 인하에 따른 손실분이 2억원 정도 되는데요. 가격 인하 발표로 얻는 이미지 개선 효과를 생각하면 광고 한 번 돌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금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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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윈-윈'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본격적인 가격 인하 시점인 4월 이후 대형마트 등에 방문해 라면과 과자 등을 사는 소비자들은 계산대 앞에서 의아할 겁니다. 평소에 사던 제품들을 구매했다면 전혀 싸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가격 인하 품목들을 구매하면 된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죠. 이참에 그간 사 보지 않았던 제품들을 사게 되는 효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신라면이 비싸졌다"는 하소연에 "그럼 더 저렴한 저가 라면을 사 먹어라"라는 대답과 다를 게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물가 안정'은 내가 사 먹던 제품의 가격이 안정되는 것이지 평소 거들떠보지도 않던, 취향에 맞지 않는 제품을 싸다고 사 먹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업으로서는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대형 제품의 가격을 섣불리 내리기 어려울 겁니다. 정부도 거기까지 희생을 강요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짜고 치는 고스톱'이 아니라면 진짜 서민들의 체감 물가를 낮춰줄 수 있는 방안이 뭔지, 지금보다는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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