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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檢事長)의 종말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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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장(檢事長)은 일본에서 생겨난 용어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는 지금의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공소원(控訴院)이란 재판 기구가 있었다. 당시엔 검찰청을 따로 두지 않고 공소원 산하에 검사국이 있었다. 그 검사국의 우두머리가 바로 검사장이다. 얼핏 보면 법원과 검찰이 한 지붕 아래 있는 듯하지만 이름만 공소원 검사국일 뿐 검사들은 업무상 판사들과 분리돼 있었다. 오늘날 일본은 최고검찰청(우리 대검찰청 해당) 아래 고등검찰청의 기관장을 검사장이라고 부른다. 그 아래 지방검찰청의 책임자는 검사장이 아니고 ‘검사정(正)’이다.

세계일보

서울 서초구의 서울고등검찰청 및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청사 출입구 모습. 공소청법 제정에 따라 서울고검은 ‘서울광역공소청’, 서울중앙지검은 ‘서울중앙지방공소청’으로 각각 바뀔 전망이다. 기관장명도 기존의 검사장 대신 ‘공소청장’을 쓰게 된다. 방송 화면 캡처


광복 후 탄생한 한국 검찰은 일본 검찰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검사장은 검사의 계급인 동시에 보직명이기도 했다. 검찰총장, 고등검사장, 검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검사 계급 체계는 군대를 방불케 할 만큼 일사분란했다. 대검 아래 전국 곳곳의 고검과 지검의 기관장 명칭 또한 검사장이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서울중앙지검장’은 실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의 준말이다.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검찰 개혁 일환으로 검사 계급이 검찰총장·검사 2단계로 확 줄어들며 계급으로서 검사장은 사라졌다. 하지만 보직명으로서 검사장은 그대로 남았다.

기업의 별은 임원, 군대의 별은 장성인 것처럼 검사장은 수십년간 ‘검찰의 별’로 통했다. 검사로 임용돼 20년 넘게 근속하고 검사장으로 승진하면 관용차가 지급되는 등 차관급 대접을 받게 되니 그럴 만했다. 대검 차장과 부장, 법무부 실·국장 등도 검사장과 동급으로 여겨졌다. 검사장 또는 검사장급 보직들 가운데 핵심 요직으로 꼽히는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중수부장·공안부장을 일컬어 ‘검찰 빅4’라고 불렀다. 이들 자리 중 하나를 거쳐 고검장으로 승진하면 그때부터는 자연스레 강력한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에 포함됐다.

세계일보

지난 20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공소청법 제정안이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공소청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검찰을 둘로 쪼개 수사 기능은 중앙수사청(중수청)으로 넘기고, 기존 검찰청은 공소청으로 이름을 바꿔 기소 및 공소 유지 기능만 맡게 한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직책인 검찰총장은 공소청 출범 후에도 그대로 남는다. 반면 광역공소청(현 고검)과 지방공소청(현 지검)의 책임자는 기존의 검사장 대신 각각 광역공소청장, 지방공소청장으로 불리게 된다. 1948년 검찰 탄생 이래 우리나라에서 ‘권력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직책들 중 하나였던 검사장이 78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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