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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종말…어쩌면, AI는 이미 죽은 채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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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속도'는 AI 시대를 설명하는 좋은 키워드다. 인간의 속도는 기계의 속도에 잠식당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 정부의 지출을 절감하겠다며 일론 머스크가 설립한 '정부효율부(DOGE)'는 AI 시스템을 도입해 매주 평균 100억 달러(약 13조5000억 원) 이상을 절감했다고 주장했다. 연방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정부 용역과 보조금을 취소, 혹은 삭감하는 등 2만9000여 건의 감축 조치를 통해서다. 물론 팩트 체크 결과 상당 부분 '허풍'에 불과했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중요한 건 일론 머스크가 '관료제'를 구성하는 '인간'을 '효율'의 걸림돌로 봤다는 점이다.

막스 베버가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 사회의 '필수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봤던 관료제는, 베버가 죽은지 불과 100년만에 열렬한 'AI 신봉자'에 의해 '비효율의 극치'로 재조정됐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치는 건 뭘까. 왜 '효율적 인간 조직'은 100년만에 신뢰를 잃었나. 이건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다. 연방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고 이를 AI로 대체하겠다는 구상이 바로 우리의 '미래'라는 것이다. 의사결정 구조를 빠르게 하고, 관료제의 모든 비효율적 절차를 뛰어넘는 새로운 구조의 정부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이 아이디어는 대중의 박수를 받았다. AI가 인간보다 빠르고 효율적이라는 걸 인간들이 받아들였다. 인간이 인간을 믿는 시대는 끝났다는 선언이다. 인간은 인간을 의심하고, AI를 더 신뢰한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실리콘벨리의 AI 신봉 억만장자들은 인간을 알고리듬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크고, 인간이 모인 조직은 필연적으로 비효율적이며 미래로 나아가는 '속도'를 제어하는 장애물이라는 걸 전제한다. 인간의 속도를 뛰어넘고자 하는 조급증이 자본 권력을 빌려 인간을 기계의 속도에 밀어넣고 있다. 우린 이 '기계의 속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넥서스>를 통해 "AI는 삶의 속도, 변화를 가속화한다. 그런데 생명체의 주기를 따르는 사람이 늘 켜져 있는 컴퓨터의 속도에 맞추자면 결국 무너지게 된다"고 했다. 돌이켜보면 18세기, 19세기의 산업혁명은 속도의 시대였다. 인간이 세상 모든 것을 조율하고 관장하던 시대에서, 기계의 속도에 인간이 맞춰가는 시대로로 이동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목전에 둔 AI 시대는 기계의 속도가 인간의 속도를 압도하는 시대다.

일론 머스크가 정부 효율부를 만들어 관료제에 타격을 입히려 했던 실험은 군사 분야에서 더 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을 공습하며 영화 <아이언맨>의 '자비스'처럼 행동한 AI 시스템 '메이븐'의 분석을 충실히 따랐다. 수백명이 수개월을 필요로 했던 분석을 메이븐은 단 며칠만에 해냈다. 메이븐은 곧바로 1000개의 타깃을 제시했다. AI의 속도에 매료된 인간은 정보 수집부터 표적 분석까지 모든 행위를 엄청난 속도로 처리해낸 AI의 알고리듬과 데이터 분석을 신뢰하고, 모든 군사적 행정 절차를 뛰어넘어 지휘관의 테이블에 올렸다. 인간 지휘관은 그에 따라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

인간의 속도는 비효율적이고, 기계의 속도에 인간이 딸려들어 간다. 인간끼리의 '대화'와 '토론'은 없고 '명령'만 남는다. 유발 하라리는 이걸 민주주의와 독재로 구분했다. 민주주의의 특징은 '대화'와 '소통'이다. 이건 '인간의 속도'로 이뤄진다. AI의 알고리듬은 기계의 속도로 모든 과정을 뛰어넘고 곧바로 '명령(dictate)'으로 직행한다. 독재(dictatorship)의 특징이다. 우린 '명령'의 시대를 더 익숙하게 더 효율적으로 받아들인다. AI의 알고리듬에 의심을 품지 않는다. 실제 트럼프는 중국의 체제를 닮고 싶어하고, '자유진영'의 사람들은 그것이 전략적으로 맞는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뛰어넘기 전에 미국이 중국을 뛰어넘겠다는 것, AI는 그것을 '민주주의 국가'라는 비효율적 체제에서 현실화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다.

일론 머스크와 같은 AI 신봉자들은 100년 전 양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기계의 속도'를 예찬했던 미래주의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1909년 이탈리아의 전위 작가 필리포 토마소 마리네티는 볼로냐의 신문 '가제타 델레밀리아'에 '미래주의 선언문'을 게재하고 속도, 기계, 폭력, 전쟁을 찬양하며 전통과 과거를 파괴하자고 주장했다. 마리네티는 "우리는 세계의 찬란함이 새로운 아름다움, 속도의 아름다움으로 풍성해졌다고 선언한다. 폭발적으로 숨을 내뱉는 뱀처럼 위대한 튜브가 보넷에 장착된 레이싱카, 머신건이 내뿜는 불꽃처럼 굉음을 내는 자동차가,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상(Niké of Samothrace)보다 더 아름답다"고 말했고, "우리는 어느새 절대성 속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영원한, 어디에나 존재하는 속도를 이미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특히 마리네티는 전쟁을 '세상의 유일한 위생학'이라고 부르며 찬양했고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열열히 추종했다. 그는 '이성적'이라 주장한 '남성성'을 칭송하고, '여성 경멸'을 찬양하며 패미니즘과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이 주창한 '미래주의 선언문'에 따라 충실히 활동하던 마리네티는 무솔리니를 추종했고 파시스트 작가 연맹에 참여했으며, 1942년엔 그가 숭배해마지않던 전쟁(2차 세계대전)이라는 숭고한 태스크에 직접 참전했다. 마리네티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전 1944년에 심장마비로 죽는다. 속도를 찬양하던 인간이 마주한 것은 전지구적 '잿더미'였다.

산업 혁명이 가져온 기계의 속도를 찬양했던 20세기 초의 예술가와, AI 혁명이 가져올 효휼성의 속도를 찬양하고 있는 21세기의 인간들. 인류의 꼴이 어째 점점 마리네티와 닮아간다. 실리콘 밸리의 '기술독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어쩌면 "AI는 죽은 채로 태어났다."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나열해 'AI 시대'에 대한 불안감을 조장하고 세상이 망할 것이라고 예언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간 우리가 AI의 장밋빛 미래라든가, 노동 없는 세계와 같은 새로운 시대를 상상하는데 공을 들여왔다면, 이제 AI가 가져올 기계 시대의 암울한 미래를 상상하는 데에도 시간을 충분히 투입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결국은 우리는 'AI 자체'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AI를 이용하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하기 때문이다. 속도와 기계를 찬양하는 일론 머스크가 정치에 뛰어들어 '인간'이라는 비효율을 제거하려 한 것은 이제 우리 정치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방위산업체'로 변신한 AI 테크 기업의 억만장자들이 전쟁에 뛰어든 것도, 이제 우리 정치의 새로운 도전 과제다.

프레시안

▲2023년 5월 경,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 건설회사 CEO인 대니얼 마빈이 트위터에 "일론 머스크가 미래의 아내를 발표했다. 그녀는 누구인가?"라는 말과 함께 머스크가 여성 로봇들과 안거나 키스하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해당 사진들은 AI로 생성한 '가짜 사진'이었고, 마빈은 이 사진들을 공개한 이유에 대해 "AI의 위험성을 명확하게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세열 기자(ilys123@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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