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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지점핑도 중독된다고?... 공포가 쾌감인 사람들 [안철우 교수의 호르몬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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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호르몬은 생명의 진화와 함께 종에서 종으로 전달되고 발전했다. 생명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존재할 화학물질이 있다면 바로 '호르몬'이다. 이런 의미에서 호르몬은 불멸이다. 안철우 교수가 칼럼을 통해 몸속을 지배하는 화학물질인 호르몬에 대해 정확히 알려주고 삶을 좀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은 스트레스 상황이나 위험이 발생했을 때 신체에 강력한 파워를 불어넣는다. 심장은 쿵쿵 뛰고 팔다리 근육이 불끈거리고 머리가 맑아지고 눈이 커져서 사물이 더 또렷이 보인다.

이러한 흥분과 각성의 상태를 선천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험을 추구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들, 신나고 즐거운 일을 찾는 사람들, 따분한 건 조금도 못 참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유형이다.

이들은 스노우보딩, 스카이다이빙, 산악자전거, 번지점핑 등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안정된 관계보다 위험하고 짜릿한 관계를 좋아한다. 이렇게 일부러 위험을 찾아다니는 사람을 '아드레날린 정키'라고 부른다.

아드레날린 정키란 에피네프린 혹은 노르에피네프린 중독자를 뜻하는 말이다. 앞서 중독을 설명할 때 도파민을 위주로 설명했지만 다른 여러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도 중독에 관여한다.

예를 들어 우리 몸에 내재하는 마약이라고 불리는 엔도르핀도 중독과 관련이 있다. 엔도르핀 역시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엄청난 육체적 고통이 수반되는 일을 수행할 때 부신에서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이 만들어져 온몸에 강한 파워를 공급한다면, 뇌에서는 엔도르핀이 만들어져 고통을 잊게 만든다. 고통을 잊는 정도가 아니라 하늘을 나는 듯한 황홀경을 선사해준다. 엔도르핀의 진통효과는 모르핀의 100배에 이르고 황홀감도 더 크다.

엔도르핀이라는 이름도 '몸 속에 존재하는 모르핀'이라는 의미다. 엔도르핀이 주는 황홀경을 경험하려면 육체를 극단으로 몰아가야 한다. 예를 들어 42.195킬로미터의 마라톤을 완주하려면 보통 남자는 2시간 이상, 여자는 2시간30분 이상을 달려야 한다.

심장이 조이고 숨이 멈출 것 같은 고통을 어떻게 참을까 싶지만, 마라톤 선수들은 잘 참는다. 아니, 즐긴다. 빠르면 30분, 적어도 1~2시간 사이에 '러너스 하이'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러너스 하이'란 마라톤 선수들에게 찾아오는 엔도르핀 황홀경을 뜻하는 용어다. 많은 운동 중독자들이 '러너스 하이' 중독자들이다.

엔도르핀은 일상에서는 행복감과 기분 좋은 상태를 만들어주는 좋은 호르몬이지만 운동 중독자들에겐 위험할 수 있다. 몸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심하게 운동을 하고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계속 운동을 해서 몸을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근육파열, 골절 등의 부상은 물론 지나친 흥분 상태로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어 수면 부족, 불안, 빈맥 등 각종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도르핀 황홀경을 맛보기 위해 계속 운동을 해서 몸을 더 망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데 필자가 에피네프린 정키를 설명하다 갑자기 엔도르핀을 소개하는 이유는 뭘까? 사실 엔도르핀과 에피네프린은 먼 친척 같은 관계다.

뇌에는 부신피질호르몬 전구단백질이라는 분자량이 아주 큰 단백질이 있다. 이것이 몇 조각으로 갈라져서 엔도르핀과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이 만들어진다. 부신피질자극호르몬은 부신으로 가서 에피네프린을 분비하게 한다.

엔도르핀과 에피네프린은 완전히 다른 호르몬으로 기능하지만 같은 단백질에서 파생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독과 가장 관련이 깊은 도파민은 노르에피네프린의 전구체다. 보상회로를 형성하는 도파민,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과 에피네프린, 진통 호르몬인 엔도르핀이 모두 중독과 관련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렇다면 엔도르핀 중독과 에피네프린 중독은 어떻게 다를까? 엔도르핀 중독이 육체를 고통의 한계로 몰아서 마약 같은 황홀경에 탐닉하는 것이라면, 에피네프린 중독은 고통과는 상관이 없다. 고통은 빼고 위험과 스릴, 공포,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활동과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다.

외신에서 가끔 듣는 번지점핑 중독자들이 좋은 예다. 번지점핑은 40미터 이상의 고공에서 떨어지는 체험 스포츠다. 목숨을 지켜주는 것은 몸에 묶인 로프 한 줄이 전부다. 번지점핑 중독자들은 죽을지도 모르는 이 모험을 틈만 나면 한다. 공포와 함께 분비되는 에피네프린의 짜릿함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학에서 에피네프린 중독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엔도르핀 중독은 마약 중독에 버금가는 심각한 문제로 보지만 에피네프린 중독은 심각한 의료적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험을 추구하다 크게 다칠 수는 있지만, 위험 추구 자체는 병이 아니다.

'아드레날린 정키'라는 용어조차도 병명이 아니다. 위험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관용어로 딱히 부정적인 어감이 들어있지도 않다. 그래서 에피네프린 중독에 대해서는 의학보다 심리학에서 더 관심을 갖고 있다.

2013년 발표된 연구를 보면 에피네프린 중독은 타고난 성향과 큰 관련이 있다고 한다. 프랑스 오르세 대학교 연구팀이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남성 302명의 성격유형을 검사한 결과, 이들은 강한 외향성을 가졌고 규범 존중과 충동 통제, 계획 실행성을 뜻하는 컨셔스니스가 매우 낮은 자들이었다.

여기에 충동성, 쾌락추구성, 불안도 등을 알려주는 심리학의 지표인 뉴로티시즘 지수까지 매우 높은 경우가 많았다. 외향적이면서 충동적이고 통제와 규범을 싫어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모험가이며, 이들이 바로 '아드레날린 정키'다.

하지만 의료적 상황이 아니라고 해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건강에 특별히 해를 끼치지는 않지만 위험추구 성향이 과도하면 그것이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위험을 추구하며 살던 사람이 그 행동을 멈추면 중독자가 약을 끊었을 때와 똑같은 금단증상에 시달린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암벽등반을 하는 8명의 남성에게 암벽등반을 멈추게 하자 이들은 암벽등반을 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으며 안절부절 못하거나 버럭 화를 내는 등의 부정적 행동이 나타났다.

이러한 증상은 암벽등반을 오래 해온 사람일수록 더 심했다. 위험추구 성향을 가진 사람에겐 익스트림 스포츠가 오히려 긍정적인 발산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사람들을 평범한 일상에 가두면 자동차를 과속으로 몬다든지,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싸운다든지, 위험하고 공격적 행동으로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해 에피네프린 러시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 긴장과 스트레스, 불안 등을 다스리고 충동성을 조절하는 이들만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단, 반드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만약 익스트림 스포츠에 빠져 평일에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업무 약속을 어기고 심지어 회사를 펑크내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하러 갈 정도라면 이미 균형이 깨진 것이다. 이런 상태를 인지했다면 스스로 바로잡으려고 노력하고 혼자 힘으로 어렵다면 정신과 진료도 고려해야 한다.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 등으로 근육의 긴장을 풀어주고 마사지, 족욕, 반신욕 등으로 몸과 마음을 이완할 필요가 있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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