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매일 에너지를 쓰며 활동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독성 단백질 찌꺼기를 생성한다. 이 노폐물은 뇌척수액에 녹아 배출되는데, 청소 과정이 원활하지 않아 뇌에 축적되면 알츠하이머병 등 퇴행성 뇌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뇌질환 예방의 핵심은 이 노폐물을 얼마나 잘 빼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간 학계에서는 뇌 속 노폐물이 주로 정맥 혈관을 통해 배출되거나 일부 림프관을 거치는 것으로 추정해 왔으나, 그 구체적인 연결 고리와 조절 기전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관련 논문 발표한 국내외 공동 연구진은 얼굴 코 뒤쪽 깊은 곳을 지나는 림프관이 뇌 노폐물을 치우는 핵심 통로라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이번 연구를 총괄한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고규영 교수(기초과학연구원 혈관연구단장)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뇌 속 하수구'의 작동 원리와 뇌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한 일상 속 관리법에 대해 들었다.
뇌 속 정화 시스템 고장, 퇴행성 뇌질환 유발해
뇌는 신체에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장기 중 하나로, 활발한 대사 활동의 이면에는 '아밀로이드-베타(amyloid-ẞ)'나 '타우(tau)'와 같은 독성 단백질 부산물이 필연적으로 생성된다. 건강한 뇌는 이러한 노폐물이 뇌척수액에 녹아들어 신속하게 배출되는 자체적인 정화 시스템을 가동한다.
고규영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뇌 활동으로 발생한 각종 노폐물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뇌척수액에 녹아들고, 이 중 약 70%가 림프관을 통해 뇌 밖으로 빠져나가며 뇌 청소 과정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몸에서 림프관은 본래 '하수구' 역할을 담당한다"며 "혈관이 뇌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상수도'라면, 림프관은 오염된 물을 내보내는 '하수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이 배출 시스템이 노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면 뇌 건강에 문제가 생긴다. 자체적인 청소 기능이 저하되면 독성 물질이 뇌 신경망을 서서히 파괴해 인지 기능 저하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동물 실험에서는 치매 유발 물질이 원활히 청소되지 못하고 축적될 경우 치매를 일으킨다는 인과관계가 관찰됐다"고 부연했다.
뇌 노폐물의 배출구, '비인두 림프관망'의 발견
뇌 안의 노폐물이 고이지 않도록 적절히 비워내는 하수 처리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은 뇌 건강 유지와 치매 예방을 위한 중요한 전제 조건이다. 하수관의 위치와 구조를 알아야 막힌 곳을 뚫을 수 있듯, 퇴행성 뇌질환의 치료 전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이 '뇌 속 하수구'의 해부학적 경로를 파악하는 것이 기초 자료가 된다.
뇌 정화 시스템의 정확한 배출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고규영 교수 연구팀은 생쥐(Prox1-GFP 형광 쥐)와 영장류(원숭이) 모델을 활용한 해부학적 관찰 및 생체 내(in vivo) 형광 이미징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진은 뇌척수액의 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특수 형광 물질(TMR-dextran)을 쥐의 뇌 지주막하 공간(거미막밑 공간)에 주입한 뒤, 시간 경과에 따른 이동 경로를 첨단 시각화 장비로 정밀 추적했다. 그 결과, 뇌를 순환하며 노폐물을 머금은 뇌척수액이 두개골 밖으로 배출될 때 집결하는 핵심 허브가 얼굴 코 뒤쪽 깊숙한 곳에 자리한 '비인두 림프관망'임이 객관적 데이터로 확인됐다.
비인두 림프관망은 평활근(smooth muscle) 덮개가 없고 독특한 판막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반면 하류에 위치한 깊은경부림프관(deep cervical lymphatics)은 전형적인 반월형 판막과 평활근 덮개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뇌척수액을 깊은경부림프절로 운반하는 실질적인 펌프 역할을 수행한다.
노화로 좁아진 뇌 속 하수구...약물 치료 가능성도
연구진은 노화가 뇌 하수 처리 시스템에 미치는 퇴행적 변화에도 주목했다. 노화된 쥐의 비인두 림프관망은 심하게 위축되는 양상을 보였으며, 단일 세포 유전자 발현 분석 결과 제1형 인터페론(type I interferon) 신호 전달과 염증성 사이토카인이 증가하는 등 구조적·분자적 퇴행이 관찰됐다. 노화로 인해 뇌 속 하수구의 '상류 입구'가 좁아지고 망가진 것이다.
그러나 상류의 림프관망이 위축됨에도 불구하고, 하류의 깊은경부림프관은 노화에 따른 구조적 변화 없이 펌프 기능이 상대적으로 잘 유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망가진 상류 배출구를 당장 복원하지 못하더라도, 기능이 살아있는 하류 펌프를 표적으로 삼아 강하게 작동시키면 정체된 노폐물을 원활하게 빼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연구진이 하류 림프관의 평활근 세포 신호(알파-아드레날린 및 산화질소)를 자극하는 약물을 투여하자, 하류 펌프 기능이 활성화되며 노화된 쥐에서도 뇌척수액 배출량이 능동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노화로 저하된 뇌 청소 기능을 '하류 림프관 자극'이라는 약물학적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다는 새로운 치료적 접근법을 제시한다.
"씹고, 말하고, 웃어라"…안면 근육 움직임이 '뇌 청소' 돕는다
이러한 해부학적 발견은 안면 근육의 움직임이 뇌 청소를 보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진다. 뇌 노폐물을 품은 뇌척수액이 코 옆 비강을 지나 눈 주변과 팔자주름 부위 피부 아래 림프관을 거쳐 목 안쪽으로 빠져나가는 만큼, 이 부위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림프액의 순환을 돕는 물리적인 펌프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 교수는 뇌 속 하수구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기, 웃기 등 안면 근육을 자주 움직이는 활동이 뇌 청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벼운 얼굴 마사지나 음식을 천천히 오래 씹는 습관, 노래 부르기 등도 노폐물 배출을 도울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성급한 확대 해석은 경계했다. 고 교수는 "이번 결과는 동물 실험을 통해 확인된 기초 연구인 만큼, 사람에게서도 동일한 기전과 인과관계가 성립하는지, 인체 내 청소 기능 저하를 어떻게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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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한 기자 hidoceditor@mcircle.biz저작권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