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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도 차별하는 세상…당신의 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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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스물셋 베트남 청년 뚜안의 ‘마지막 길’
경향신문

19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로 숨진 뚜안(23)의 발인식이 엄수되고 있다.


가족들 뒷바라지 위해 E-9로 입국
열심히 번 돈 대부분 본국에 송금
혼자 기계 점검하다 안타까운 희생

비자 연장 칼자루 쥔 사업주 눈치
열악한 환경 속 상시적 위험 노출
이주노동자들 ‘안전권 보장’ 절실

컨베이어 벨트 끼임 사고로 숨진 23세 베트남 이주노동자 뚜안의 발인이 19일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이날 오전 10시30분 평소 고인과 가깝게 지내온 친척 형 A씨(35)는 뚜안의 영정을 들고 빈소 밖으로 나섰다. 뚜안의 친척과 지인, 노동단체 관계자 30여명이 뒤따랐다.

참석자들은 눈물로 뚜안을 배웅했다. 베트남에 있는 뚜안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머니, 어린 동생들은 건강 문제 등으로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해 마지막 길을 끝내 함께하지 못했다.

뚜안의 화장은 낮 12시30분 용인 평화의 숲에서 이뤄졌다. 유골은 친척을 통해 베트남의 가족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20일 오후 6시5분 인천발 하노이행 비행기를 통해 고국으로 옮겨진다.

뚜안은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생전 축구와 영화, 오락을 좋아했다. ‘열심히 돈 벌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꿈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경향신문

끼임사고로 숨진 뚜안. 뚜안 유족 제공


가족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번 돈 대부분을 베트남에 송금하며 성실하게 살았다. 추가근무를 꽉꽉 채워가며 번 돈 300만원 중 뚜안이 사용한 금액은 15만원 남짓이었다.

뚜안은 2023년부터 한국에서 일했다. 밝은 성격에 항상 주변에 사람이 모였다. 그가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은 뒤 빈소에는 뚜안을 기억하는 베트남 동료 수백명이 다녀갔다.

뚜안은 영면에 들었지만, 그의 죽음은 우리 사회의 ‘이주노동자 안전 문제’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지난 10일 새벽 뚜안은 이천 자갈 가공업체에서 혼자 기계를 점검하다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기계 사이로 빨려 들어가며 시신이 처참하게 훼손될 때까지, 아무도 사고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가장 기본적인 안전수칙인 2인 1조 근무는 지켜지지 않았고, 기계에는 비상 스위치도, 사람의 신체가 위험 구역에 접근하면 기계를 멈추게 하는 자동 정지 장치도, 덮개도 없었다고 한다.

올해 들어 뚜안을 포함해 9명의 이주노동자가 숨졌다. 이들이 숨진 일터는 대부분 소규모의 영세한 사업장이었다. 위험하고 고된 업무인 데다 처우가 열악해 한국인들은 기피하는 일자리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이 떠난 공백을 채웠지만, 정작 이들의 안전은 제대로 보장되지 못했다.

뚜안이 일한 곳 역시 15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사업장’이었다. 뚜안 외에도 2명의 이주노동자가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번 사고로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명은 ‘본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다른 1명은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E-9’(고용허가제 비전문취업 비자)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서 일한다. 이를 통해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절실한 ‘비자 연장’은 절대적으로 사업주의 의지에 달려 있다. 사업주에게 안전 장치를 요구하기도,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이천지역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등은 이날 이천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은 대부분 큰 위험에 노출돼 있지만, 노동의 안전과 권리는 한참 뒤로 밀려나 있다”며 “사람의 생명보다 이윤추구만을 우선시하는 사업구조, 일터 주변에 도사리는 각종 위험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안전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 김태희 기자 kth0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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