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이란의 탄도미사일 공격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정유시설 ./ 소셜미디어 |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이란이 주변 걸프국을 향해 보복하자, 중동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테헤란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다”며 필요시 군사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걸프국들이 한때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으나 피해가 커지자 이란의 신정 체제가 해체되길 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19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요르단·카타르 등 이슬람권 12국 외무장관들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회의를 열고 이란 전쟁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회의가 진행되던 도중 리야드를 향해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날아들었다. 회의장 근처에서 요격 미사일이 발사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란의 공격은 앞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가스전을 타격한 데 대한 보복이었다. 전날 이스라엘은 이란의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를 폭격했다. 이에 이란은 카타르 라스라판의 가스 시설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생산 밀집 시설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우디 국방부는 “리야드를 겨냥한 탄도미사일 4발을 요격했으며 잔해 일부가 도시 남쪽의 정유 시설 인근에 떨어졌다”고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외무장관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외무장관이 19일 리야드에서 열린 협의체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파이살 빈 파르한 알 사우드 사우디 외교장관은 회의 직후 이날 새벽 “이란에 대한 얼마 없던 신뢰마저 무너졌다”며 “(이란의) 압박은 정치적·도덕적으로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군사적 조치를 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 왕국뿐 아니라 주변 국가들은 결심만 하면 즉시 투입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적 역량을 가졌다”며 “우리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이란에 남은 시간이) 하루 이틀인지 일주일인지 패를 미리 보여주진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황을 잘 판단하고 이웃 국가들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그럴 만한 지혜가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그는 외교장관 회의 도중 리야드로 미사일이 날아든 것과 관련해서도 “많은 외교관이 회의 중인 리야드를 표적으로 삼은 것은 이란이 외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고 했다.
로이터 통신은 “약 3주간의 전쟁 기간 동안 걸프 왕국에서 나온 가장 강경한 논평”이라고 평가했다.
19일 사우디아라비아 수도 리야드에서 아랍 및 이슬람 국가 그룹의 외무장관 협의 회의에 앞서 외무장관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중동 걸프 국가들은 그간 이란에 대해 직접적인 보복을 자제해왔지만 이란이 교통·관광·금융 시설 등 민간 인프라까지 공격을 가하자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나아가 걸프국들이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이란이 미래에 다시 공격을 시도할 수 없도록 미국이 이란 정권을 무력화시키길 바라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8일 “걸프 국가들은 이제 이란 신정 체제의 존재 자체를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이들은 전쟁이 끝난 뒤 다시는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도록 이란 정권이 무력화되거나, 가능하다면 완전히 해체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등은 미국의 우방국이지만 이란과의 무력 충돌을 피하기 위해 그간 관계 개선을 모색해 왔다. 사우디는 2023년 중국의 중재로 이란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했고, UAE도 2022년 테헤란 주재 대사관을 재개했다.
그러나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되고 이란이 걸프국을 공격하면서 점차 등을 돌리고 있다. 이란은 역내 미군 기지를 공격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석유 시설 및 민간 시설이 큰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UAE이다. 이란은 이번 전쟁 이후 UAE에 2000기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다. 공격의 80% 이상은 석유 시설, 정유소, 공항, 항만, 호텔, 데이터센터 등 민간 인프라를 겨냥한 것이었다. 이에 글로벌 허브 공항 역할을 해온 두바이 국제공항이 운영 차질을 빚기도 했다.
술탄 알자베르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은 “이것은 군사적 교전이 아니라 외교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평화로운 국가에 대한 공격”이라며 “장기적인 정치적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능력, 그리고 지역 대리 세력 네트워크 등 모든 위협을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예멘의 후티,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내 여러 무장 단체 등 친이란 군사 조직의 활동 제한까지 협상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걸프국 고위 관계자는 “전쟁에서 유일하게 수용 가능한 결과는 이란의 힘을 빼고 약화시켜 다시는 이웃 국가들을 위험에 빠뜨리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13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국제금융지구에 요격된 이란의 드론이 떨어져 한 빌딩 외벽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X |
최근 일주일 넘게 이란의 공격을 받은 두바이에 외국인들이 빠져나가자 해변과 수영장, 쇼핑몰 등의 텅 빈 모습이 12일 X에 올라왔다. 영상을 올린 사람은 "40년간 발전이 11일 만에 공포로 가득 찬 유령 도시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했다. /X |
걸프 국가들의 일부 관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할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이란 원유 수출의 90%를 담당하는 하르그섬을 점령하는 것뿐이라 생각하고 있다.
카타르 도하대학원의 무하나드 셀룸 교수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갖게 두는 것은 걸프 국가들에게 재앙이 될 것이라며 “이란 정권은 모든 레드라인을 넘어섰다. 이제 미국이 전쟁을 마무리 짓는 것이 걸프 국가들을 포함한 모두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지금 전쟁이 끝나고 이란이 미국이 패배했다고 주장하며 승리를 선언한다면, 이란은 지역 전체를 인질로 잡고 압박을 받을 때마다 걸프 국가들을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최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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