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크레인 조종사가 현대건설이 개발한 원격 조종실에서 타워크레인을 조종하고 있다. 현대건설 |
#현대건설은 지난 1월 말 국내 최초로 원격제어 타워크레인 1대를 경기도 과천시 시공 현장에 도입했다. 타워크레인은 건설 현장 필수 장비지만 사람이 직접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작업해야 하는 만큼 위험이 뒤따른다. 현대건설은 원격제어를 적용해 안전한 지상에서 작업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확대 계획에 대해선 소극적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올해 7월 말까지 원격제어 타워크레인을 운영하고 도입 결과를 반영해 확대 여부와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했지만 업계에선 "노조가 강성인 건설업 특성상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황에 빠진 건설업계가 신기술 도입을 주저하고 있다. 안전을 확보하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선 혁신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만 현실은 다르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일명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3조 개정)이 신기술 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까지 포함되면서 사용 확대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을 주저할 경우 지난해 시행된 상법상 주주 이익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건설사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이 경기도 과천 주암동 '디에이치 아델스타' 건설 현장에 도입한 크레인은 지상에 마련된 원격 조종실에서 제어할 수 있고 총 9대 카메라로 작업 반경 전반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풍속 정보, 타워크레인 충돌방지시스템 등 주요 안전 정보도 전달된다. 무엇보다 사람이 고소·고위험 작업 구역에 진입하지 않아도 되는 만큼 안전 측면에서 유리하다.
현대건설이 확대를 주저하는 건 스마트건설 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은 성명에서 "건설 현장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이며 이윤 보전을 위해 비용 절감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라며 철회를 요구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도 "차라리 타워크레인에 승강기를 설치하라"며 반대 성명을 내놨다.
노조가 반대하는 건 무인화로 진척될 경우 기술 안전성 문제와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건설 측은 무인화를 추진하는 기술이 아닌 만큼 고용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측이 도입한 원격제어 타워크레인은 원칙적으로 1대당 1명의 조종사가 운용한다. 하지만 기술적으론 여러 대를 연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노조에선 향후 기술 개발이 진척될 경우 무인화 또는 인력 감축에 대해 우려가 나올 수 있다. 한국노총 한국타워크레인조종사노동조합 측은 "(무인화로 인해) 생존권 문제가 걸리면 쟁의나 기업을 상대로 고소·고발 등을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력 등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타워크레인 조종수는 월 500만원 이상의 급여를 받는다. 추가 수당 등을 고려하면 월 1000만원에 달한다. 급여 외에도 현장에서 비공식적으로 지불하는 월례비도 있다. 원격으로 제어하면 이런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는 현대건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포스코이앤씨는 국내 최초로 원격제어 굴착기 현장 실증에 성공했지만 상용화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 도입할 경우 노조와의 갈등도 배제할 수 없다.
신기술 도입에 따른 비용 절감은 개정된 상법과도 맞닿아 있다. 상법에서 주주 충실의무가 강화되면서 이익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 시행과 맞물리면서 노조와 주주를 모두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기업에 비용이 발생한 경우 주주 가치가 훼손될 수 있어 침해 주장이 나올 수 있다"며 "개별 시각으로 보면 법률 마련을 추진할 수 있겠지만 전체 맥락으로 보면 충돌이 나타나는 사례"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선 그러나 낮은 생산성을 감안할 때 스마트 기술 도입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견해가 나온다. 포스코이앤씨는 로봇 전문기업 클로봇과 협업해 공간 정보와 이동 경로를 사전에 학습한 자율주행 청소 로봇을 도입, 서울 서초구 신반포21차아파트 재건축 현장에서 준공 청소에 활용하고 있다. 삼성물산도 자율주행 지게차, 자재 이동 로봇, 청소로봇, 살수용 드론 등 인공지능(AI) 기반 스마트건설 기술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국생산성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건설업의 산업생산 기준 노동생산성 지수는 78.7로 집계됐다. 이는 전분기 86.7과 비교할 때 9.2% 하락한 수치다. 해당 지수는 2020년을 기준인 100으로 보고 노동 등 요소 투입과 산출한 생산량 간 관계를 보여주는 지수다. 2022년 88.4, 2023년엔 99.2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다시 하락했다. 건설업 종사자의 고령화와 외국인 근로자 유입이 생산성 하락의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인건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건설업 전체 직종 평균 임금(1일 8시간)은 매년 상승해 27만9988원으로 파악됐다. 2022년 1분기 24만2931원과 비교할 때 4년 동안 15.2% 올랐다.
삼일PwC 경영연구원은 '내일의 건설, 건설산업의 지속 성장을 위한 전략' 보고서를 통해 국내 건설업계를 쇠퇴기에 진입한 것으로 정의하고 사업 다각화를 비롯해 스마트건설 활용 확대를 주문했다. 연구원은 "자동화된 공정과 데이터 관리를 통해 불필요한 노동력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며 "공사 기간 단축을 통해 공정의 효율성 및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로봇에서 성과를 보이는 만큼 무인화를 포함한 스마트건설도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중장비 업체 캐터필러는 엔비디아와 협력해 중형 굴착기에 AI 어시스턴트 시스템을 탑재한 자동화 건설장비 도입을 진행 중이다. 국내 두산밥캣도 음성 명령으로 장비 설정 등 50여 가지 기능을 실행하는 AI 기반 음성 제어 기술을 선보이며 피지컬 AI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무인 건설 기계가 상용화된다고 하면 고용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어떤 기술을 채택할지는 사용자가 선택할 문제지만 노조와의 입장 차이가 사회적 이슈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노사가 상법과 노란봉투법 사이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진경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정책연구본부장은 "스마트건설이 실직으로 연결될 수 있어 노조 우려는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자동화 또는 무인화가 진행될수록 관리 등으로 근로자의 역할이 변화하게 될 것이어서 (기업과 노조가) 역할을 조정하며 협의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황 교수는 "노란봉투법과 상법 충돌로 인한 후폭풍을 줄이기 위해선 백화점식으로 제도를 마련하기보단 전체적인 시각에서 여러 분야의 목소리를 듣고 어젠다를 세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이번 정부에서 발의되고 제정된 상법이 충돌하는 요소가 어디고 어떤 이유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지 전체를 살피는 조직 구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정윤 기자 leejuyoo@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