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스마트 시니어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 노인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서성일 기자 |
초인종이 울렸던가. A씨는 문득 현관 쪽을 바라봤다. 건물에 사는 젊은 주민의 얼굴을 떠올렸다. “무슨 일 있거나 아프시면 연락주세요.” 고개를 내저었다. 먼저 연락하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리라. 혼자 산 지 오래인 A씨는 가만히 얼굴들을 세어봤지만 통 짐작 가는 인물은 없었다. 강도라면 연락이 끊긴 첫째에게 전화를 걸까. A씨는 휴대폰에 뻗었던 손을 거뒀다. 일하는 데 방해가 될 터다.
다시 벨 소리가 들린다. 이번엔 휴대폰에서. “텔레비전이 11시간38분째 켜지지 않아 연락드렸어요. 병원은 갔다 오셨어요? 식사는 하셨고요.” 연달아 질문이 쏟아지자 A씨는 정신이 번쩍 났다. “아가씨 고마워요. 아주 건강해요. 경로당에 다녀오느라….” 조곤조곤 대화 소리가 집 안을 채운다. 때마침 TV 옆 플러그의 작은 불빛이 재롱이라도 떠는 듯 깜빡였다. A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2024년 서울시 스마트돌봄서비스 만족도 조사 보고서(서울시복지재단) 속 인공지능(AI) 안부전화 서비스 이용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최근 노인 고독사 예방 등을 위해 AI가 위기 징후를 포착하고 주기적으로 안부전화를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국가가 AI에 노인 돌봄을 외주화하는 셈입니다. 그럼 뭐가 달라지는 걸까요?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일러스트|NEWS IMAGE |
점(사실들): 효도, 이제 AI가 한다?
정부는 지난달 27일부터 ‘고독사위기대응시스템’을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전·단수, 가스·통신비 체납, 알코올 중독·정신질환 여부 등 위기 정보 공공데이터를 바탕으로 고독사 위험군을 조기 발굴하는 서비스가 핵심인데요. 노인층에는 AI 안부전화 등을 도입했습니다. 이미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단순히 안부를 묻는 수준을 넘어 생성형 AI 말벗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맥락들): ‘돌봄의 사회화’ 정부가 AI 보급 나선 이유
고독사에 정부가 범국가적 차원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건 비교적 최근부터입니다. 정부가 처음 고독사 실태조사와 통계 집계를 한 때가 2022년인데요. 2024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20% 이상) 진입 등 노인 인구 증가 추세, 가정에서 사회로 돌봄 주체의 변화 등으로 인해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노인을 돌보는 일은 오랫동안 ‘효도’라는 이름으로 가족에게 맡겨졌습니다. 국가로서는 복지 지출에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국민을 동원할 수 있던 셈이죠. 그러나 1990년대 말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가족관을 크게 바꿨습니다.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굳건했던 가부장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겁니다. 서구 국가들은 비교적 긴 시간을 들여 돌봄 노동을 사회로 넘겼지만, 한국은 단기간에 복지서비스를 도입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각종 복지 수요가 생길 때마다 땜질하듯 복지서비스를 도입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노동의 가치는 헐값으로 책정되고, 민간 비중이 높은 이른바 ‘한국식 돌봄의 사회화’가 나타났습니다. 국가데이터처 ‘2023년 지역별 고용조사’를 보면 요양보호사 등 돌봄노동자는 주 28.7시간을 일하고 월 143만원을 받았는데요. 전체 임금노동자 평균(307만6000원)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2024년 7월18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이용자 자택에서 서울사회서비스원 요양보호사 박모씨가 노인성 치매를 앓고 있는 송모씨에게 인지 훈련을 하고 있다. 김송이 기자 |
노동강도에 비해 낮은 보수는 인력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부족한 돌봄 인력 규모는 2032년 최대 71만명, 2042년 155만명까지 늘 것으로 전망됩니다. 2024년 윤석열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사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데요. 저임금·인력 부족 문제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는 돌봄 수요를 감당할 대안으로 AI가 주목받은 이유입니다. 처음엔 이용자의 욕구와 상황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려워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평가됐는데요. 2023년 챗GPT가 대중화된 이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정서적 안정과 고독감 해소 측면의 효과성 등이 인정받기 시작한 겁니다. 실제 이용자들 사이에선 “바쁘다고 전화도 안 하는 자식보다 낫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입니다.
챗GPT 기술을 적용한 대전시 돌봄로봇 ‘꿈돌이’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8월 대전 대덕구에 홀로 거주 중인 70대 A씨는 꿈돌이와 대화를 나누다 “죽고 싶다. 살려줘”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는데요. 꿈돌이는 A씨의 이상징후를 감지하고 경보를 전송했습니다. 실제로 경찰이 방문했을 때 A씨는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독거노인인 김영태 할머니가 2021년 10월 서울 구로구 오류동 자택 인근에서 봉제인형 모양의 인공지능(AI) 반려로봇 효돌이를 업고 산책을 하고 있다. 궁동종합사회복지관 제공 |
면(관점들): ‘가성비 돌봄’ 말고 행복 찾으려면
AI나 로봇에 대한 과도한 의존이 오히려 고립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영국 언론 가디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챗GPT를 과다 사용했던 48세의 미국인 조 체칸티는 현실과 철저히 격리된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의 아내에 따르면 그는 하루에 12시간씩 챗봇과 대화를 나누곤 했습니다.
지난해 공무원 설문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강원 스마트돌봄 현황과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AI 돌봄 도입 과정상 어려움으로 대상자의 낮은 기술 수용성과 기기 활용에 대한 거부감이 꼽혔습니다. 노인·장애인들이 기기 조작을 어려워 하고 조작 중 실수할까봐 두려워 하지만, 정작 조작을 도와줄 사람은 주변에 없는 현실 때문입니다. 정서적 공감과 인간적 상호작용 측면에서는 여전히 사람 중심의 돌봄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있고요.
벤치에 앉아있는 노부부의 뒷모습. 경향DB |
‘한국식 돌봄’의 문제까지 AI가 해결할 수는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진환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교수는 정부의 AI 돌봄 활용에 대해 “돌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의 부재, 공공의 역할 부족, 젠더적 맥락에서의 불평등 등 우리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알고 있는 문제점과 해법이 있는데, AI가 만병통치약처럼 이야기되면서 오히려 사회적 자원 분배에 대한 논의가 희미해질까 우려스럽다”고 밝혔습니다.
노년기 삶의 질은 AI 돌봄으로 ‘가성비 좋게’ 치환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권명아 동아대 교수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가 정책에서 고령 대책은 이른바 고령 인구를 가족에 짐이 되는 인구로 배치하면서 더 짐이 되지 않을 정도의 돌봄만 하는 것이다. 거기에 행복이 있는가”라고 물었는데요. 돌봄의 공백을 기술로 메우기만 하면 노인의 삶이 과연 더 나아지는 것인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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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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