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오션의 30만DWT급 초고대형원유운반선(VLCC) 'GRAND BONANZA'호 팬오션 제공 |
[파이낸셜뉴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기 전 팬오션이 VLCC(초대형원유운반선) 10척을 선매입한 것은 '해운 사이클을 한 박자 빠르게 읽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단순히 선박을 사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해당 선박이 투입돼 있던 국내 주요 화주 장기 화물운송계약(COA)까지 함께 넘겨받는 구조로 계약을 설계해 변동성 방어력을 높였다. 팬오션은 탱커 시황이 흔들릴 때마다 반복되는 '스팟 의존' 대신, 선복+장기계약을 패키지로 가져오는 방식으로 탱커 확장을 '베팅'이 아닌 '구조화'로 바꿨다. 또 벌크 편중 포트폴리오를 탱커·LNG로 넓히는 체질 전환에 방점이 찍힌다.
9737억 빅딜의 진짜 가치..선박이 아니라 '고객'을 샀다
16일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팬오션은 밸류에이션을 높게 받기 어려운 건화물선 대신 LNGC, VLCC 등 웨트벌크(탱커)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다"며 "지난해 처음으로 LNG·탱커 영업이익이 기존 벌크 부문을 역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선가가 급등하기 직전에 VLCC 10척을 매입했던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닌 해운시장 흐름을 선제적으로 읽을 수 있는 팬오션의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거래의 구조를 뜯어보면 단순한 중고선 매매가 아니다. 팬오션은 사모펀드(PEF) 운용사 한앤컴퍼니가 보유한 SK해운의 VLCC 10척을 약 9737억원에 인수하면서, 해당 선박에 묶여 있던 국내 주요 화주와의 장기 화물운송계약(COA)도 일괄 양도받는 구조로 딜을 설계했다. 중고선 인도는 기업결합 신고 절차를 거쳐 오는 5월부터 시작된다. 2027년 4월 전량 인수를 완료할 계획이다.
최 연구원은 "중고선을 좋은 타이밍에 잘 사온 것 이상으로 SK해운의 고객 기반까지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져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된 만큼, 국가기간산업으로서 해운사 역할에 대한 재평가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팬오션은 이번 인수와 별도로 HD현대중공업에 30만DWT급 친환경 VLCC 신조 2척도 발주한 상태다. 척당 1억2750만달러(약 1750억원), 총 약 3500억원 규모다. 2027년 3분기에 인도받는 것이 목표다. 길이 328m, 폭 60m에 달하는 초대형 선박으로 국제해사기구(IMO) 친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차세대 설계가 적용됐다.
결국 팬오션은 중고선 10척+신조 2척을 합쳐 약 1조3000억원 이상을 VLCC에 집중 투자하는 셈이다. 벌크 편중에서 탱커·LNG 중심의 '토탈 해운사'로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숫자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호르무즈 봉쇄가 증명한 '선제적 판단력'..VLCC 운임 사상 초유의 폭등
팬오션의 VLCC 매입 타이밍이 얼마나 절묘했는지는 호르무즈 사태 이후 시장 상황이 증명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VLCC 운임은 사상 유례없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3월 둘째 주 기준 30만t급 VLCC의 하루 운임(TCE)은 42만3736달러로 전주(20만9550달러) 대비 102.2% 폭등했다. 중동~중국 항로 일일 용선료는 47만5991달러까지 치솟았다. 장금상선은 글로벌 정유사에 하루 80만달러(약 11억7800만원)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발발 직전과 비교하면 약 3.3배 많다. VLCC 용선료가 평소의 열 배에 달하는 초유의 상황이 현실화된 것이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국내 VLCC만 7척에 달한다. 해운업계 손실이 5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사태의 여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봉쇄 이후 호르무즈 해협 통과 물동량이 80% 감소하면서 원유·LNG 도입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팬오션이 사태 이전에 VLCC 10척과 장기계약을 함께 확보해둔 것은, 단기 스팟 운임의 급등 수혜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도 안정적 수익 기반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금상선도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 연구원은 "장금상선은 VLCC의 구조적 공급부족을 기회로 노리고 선박들을 쓸어담고 있다. 단번에 과점적 사업자로 부상하며 운임·선가 상승을 주도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VLCC 시장은 공급 측면에서도 구조적으로 부족하다. 전 세계 VLCC 중 20년 이상 노후선이 약 12%에 달한다. 2027년까지 인도 예정인 신조선은 88척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제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은 팬오션의 연결 실적으로 매출은 2023년 4조3610억원, 2024년 5조1610억원, 2025년 5조4330억원에서 올해 6조370억원, 내년 6조2140억원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이익도 2023년 3860억원, 2024년 4710억원, 2025년 4920억원에서 올해 5390억원, 내년 5560억원으로 꾸준한 증가가 전망된다.
특히 순이익은 2025년 3010억원에서 2026년 3810억원으로 전년 대비 26.4% 급증할 것으로 예상돼, 비벌크(탱커·LNG) 부문의 이익 기여가 본격화되는 시점으로 읽힌다. EPS(주당순이익)도 2025년 564원에서 2026년 713원, 2027년 742원으로 상승하고, ROE(자기자본이익률) 역시 5.4%에서 6.7%로 개선될 전망이다. 배당금도 2024년 120원에서 2026년 190원, 2027년 200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투자증권은 "VLCC·LNG 등 ?벌크 비중 확대가 2026년부터 실적에 본격 반영되면서, 팬오션은 BDI(발틱운임지수)에만 좌우되던 과거와 질적으로 다른 이익 구조를 갖추게 된다"고 평가했다.
ggg@fnnews.com 강구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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