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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띠는 마지막 정리…‘자기중심’을 찾는 게 품격이니까[박민지 디자이너의 옷 잘 입는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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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벨트
경향신문

하이웨이스트와 로웨이스트가 함께 점령한 시대
가장 몸이 편안해 보이는 위치가 ‘나의 웨이스트’
데님 위 가죽벨트는 ‘정돈된 여유’를 보여줘
폭 5cm 이상이거나 과한 버클은 피하는 게 좋아

캐주얼이 지겨워지는 순간이 있다. 그렇다고 예전과 같은 포멀함을 다시 갖추는 일도 부담스러운 것이 요즘의 흐름이다.

넥타이를 매고 구두를 신는 방식은 여전히 아름답지만, 오늘의 리듬과는 자주 어긋난다. 수평적인 관계가 강조되는 시대에 회의와 이동, 가벼운 식사와 약속이 한날에 겹친다면 지나치게 각을 세운 옷도, 지나치게 편안한 옷도 부담스럽다. 이날의 가장 영리한 해법은 옷장을 갈아엎는 것이 아니라 ‘아이템의 트위스트’를 한두 개 들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역할을 가장 조용하게, 확실하게 해내는 것은 벨트다.

벨트의 역사는 원래 장식이 아니라 기능이었다. 옷이 몸에 맞춰 정교하게 재단되지 않던 시절, 벨트는 옷을 몸에 고정하는 생활 도구였다. 테일러링이 발전하면서 벨트는 규범이 되었고, 포멀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의 벨트는 실루엣을 조율하는 마지막 조정 장치다. 하이웨이스트와 로웨이스트가 동시에 거리를 점령한 지금, 허리선은 하나로 합의되지 않는다. 그래서 벨트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내 허리선은 어디인가’를 유행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나는 어디에 중심을 두고 싶은가’를 스스로 결정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답이 하나였던 시절에는 ‘맞고 틀림’이 분명했지만, 정답이 여러 개인 지금은 ‘해석’이 중요하다. 벨트의 위치로 나의 리듬을 설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이웨이스트가 한동안 강력했지만, 모두에게 편한 트렌드는 아니다. 허리를 과하게 올려 묶는 방식은 배를 조이는 느낌을 주기도 하고, 강조된 허리선이 오히려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렇다고 로웨이스트를 하자니 비율을 잃어버리는 것이 불안해진다. 모델 같은 비율이 아니라면, 허리를 내린 만큼 다리가 짧아 보이는 느낌은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오히려 단순하다. 유행의 허리선이 아니라 ‘나의 웨이스트’를 찾는 것이다. 배꼽 위냐 아래냐의 문제가 아니다. 거울 앞에서 가장 자연스럽게 몸이 편안해 보이는 지점을 찾고, 그 위치에 벨트를 두는 것이다. 벨트를 조이는 도구로 생각하지 말고 실루엣을 정리하는 가이드라인으로 생각하면 된다. 과장된 X라인으로 만들지 말고, 허리 주변의 원단을 한 번 잡아준다. 상·하의의 비율을 맞추며 전체 인상을 정리해주면 되는 것이다. 이 작은 정리가 전체 인상을 훨씬 지적으로 만든다.

가장 현실적인 장면은 데님에서 시작된다. 티셔츠와 진, 니트와 진처럼 기본 조합은 늘 안전하지만, 조금만 방심하면 너무 캐주얼해 보이거나 ‘꾸미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때가 있다. 이때 진 위에 벨트를 더하면 스타일의 문장이 달라진다. 허리를 한 번 끊어주고, 상·하의 톤을 정리해주면, 전체가 의도된 캐주얼로 바뀐다. 데님이 가진 자유로움은 유지하되, 그 자유로움을 방치가 아닌 ‘정돈된 여유’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반대로 벨트는 포멀을 가볍게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옛날 정장 바지는 잘 만들어진 것일수록 요즘도 경쟁력이 있다. 다만 예전 방식으로 그대로 위아래를 입으면 지나치게 갖춰 입어 보인다. 이때 슈트 팬츠에 벨트를 하고, 신발은 스니커스나 로퍼로 바꿔보자. 이너로 니트를 입든 티셔츠를 입든 벨트가 들어가면 룩은 단정해진다. 다만 단정함이 답답함으로 번지지 않도록 신발과 가방 같은 한두 요소에서 가벼운 리듬을 주면 된다. 여기서 벨트를 고르는 기준이 중요하다. 허리선이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정리감이 생기는 벨트를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바지 원단과 같은 소재의 벨트가 달린 팬츠가 있다면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런 디자인을 찾기 어렵다면, 해법은 톤을 맞추는 것이다.

또 하나, 포인트는 버클이 아니라 폭에서 주는 편이 요즘답다. 벨트 폭이 너무 넓으면(5㎝ 이상) 룩이 정리되기보다 연출로 읽히기 쉽다. 지금 가장 평범하면서도 효과적인 폭은 2~3㎝다. 이 정도는 슈트 팬츠에도 데님에도 무리 없이 들어가고, 허리선은 과하게 주장하지 않으면서 중심을 잡아준다. 버클은 더 조용할수록 좋다. 아이언, 은은한 도금, 앤티크 실버, 혹은 깔끔한 실버 도금처럼 모던한 인상을 주되 존재감이 과하지 않은 것이 좋다.

하지 말았으면 하는 벨트가 분명히 있다. 버클에 과한 장식이 달린 벨트, 그리고 무엇보다 ‘로고가 먼저 보이는’ 벨트다. 한때는 누가 봐도 아는 상징적인 버클이 힘이었고, 그것이 사회적 언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가 읽히는 순간, 사람의 매력보다 브랜드가 먼저 말하기 시작한다. 그때 지적으로 보이기보다 올드해 보일 수 있다.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 치명적이다. 본인의 경력과 분위기가 이미 충분한데도 로고가 덧칠되면 오히려 촌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의 흐름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지금은 하이도 로도 아닌 사람들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벨트는 허리를 강조하는 아이템이 아닌, 실루엣을 정리하는 하나의 언어이다. 벨트 하나로 ‘자기중심’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그런 의미에서 벨트는 유행의 소품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인 품격의 기술이다.

▶박민지

경향신문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


박민지 패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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