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진단과 처방을, 약사는 조제와 복약지도를 담당하는 것이 의약분업의 대원칙입니다. 만약 성분명 처방이 강행된다면 이를 의·약·정 합의의 일방적 파기로 간주하고 의약분업 제도 자체의 전면 백지화를 선언할 겁니다. ”
김택우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11일 성분명처방 저지 궐기대회에서 “처방 주체와 책임을 모호하게 만드는 성분명 처방의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엄포를 놨다.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궐기대회에는 의협 집행부를 포함해 200여 명의 의사 회원들이 참석했다. 얼마 전까지 의과대학 정원 증원 대응에 힘을 쏟았던 의협이 궐기대회를 연 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심의안건에 성분명 처방을 의무화하는 법안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성분명 처방이란 의사가 특정 의약품의 제품명이 아니라 약물의 주성분명으로 처방하는 것을 말한다. 성분명 처방이 제도화되면 의사가 처방전에서 약품 상표명 대신 성분명을 기재하고 약사가 동일 성분·함량의 여러 제품 중 하나를 선택해 조제할 수 있다. 예컨대 ‘타이레놀’ 대신 성분명 ‘아세트아미노펜’으로 처방하는 식이다.
대한약사회는 △환자 선택권 확대 △약가 절감 △의약품 품절 대응 등을 이유로 성분명처방 제도 도입을 강조해 왔다. 사단체의 오랜 숙원이던 성분명 처방 도입 논의가 물살을 탄 건 정부와 국회가 필수품절약에 한해 성분명 처방을 도입하자고 나서면서다. 장종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9월 수요 증가와 공급 중단 등의 사유로 수급이 불안정한 의약품의 경우 성분명 처방을 허용하자는 내용의 약사법·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는 처벌 규정도 담겼다. 6개월 넘게 잠들어있던 법안이 이날 상정된다는 소식에 의협이 부랴부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주병 범의료계 대책특별위원회(범대위) 성분명처방 저지위원회 위원장은 “성분명처방을 하지 않으면 징역을 살아야 한다는데, 이게 그런 중범죄냐”며 “도대체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왔냐”고 핏대를 세웠다. 이 위원장은 약사회를 겨냥한 듯 “일부에서는 의사들이 리베이트 받아먹으려고 상품명 처방한다고 말하는데, 당신들은 리베이트 받으려고 성분명 처방을 주장하냐”고 되물었다.
의사들은 성분명 처방이 2000년에 이뤄진 의약분업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국정과제로 제시된 수급불안정 의약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이미 2025년 11월 약사법이 개정됐고, 필수의약품 수급대책이 시행될 예정인 만큼 성분명 처방 의무화가 불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 회장은 “동일 성분이라도 임상 반응은 천차만별로, 특히 소아와 고령자, 중증질환자처럼 건강이 취약한 국민들께 이런 작은 차이는 생사를 가르는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도대체 국회가 통과시킨 법안이 시행되기도 전, 의약분업의 근간을 저해하는 또 다른 악법을 개정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시민사회와 일부 학자들은 약품비 지출을 줄이기 위해 성분명 처방이 필요하다며 법 개정에 힘을 싣고 있다. 나영균 배재대 보건의료복지학과 교수는 이날 오전 더불어민주당, 무상의료운동본부 등이 연 국회 토론회 ‘대한민국 약제비 구조의 개혁방안’ 주제발표에서 “우리나라는 의사가 성분명이 아닌 특정 브랜드명으로 처방하는 상품명 처방 관행 때문에 약사가 동일한 성분의 더 싼 제네릭으로 약을 교체할 수 없는 구조”라며 “성분명 처방 의무화 등을 도입하면 27조원에 이르는 약품비 지출이 절반가량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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