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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웨이 김제영 기자, 이승용 기자]
중동 군사 충돌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자 국내 산업계에도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정유업계는 고유가에 따른 정제마진 확대를 기대하고 있지만, 철강업계는 에너지 비용과 원료 조달 부담이 동시에 커지며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정유 웃지만 불안…호르무즈 봉쇄에 공급망 비상
9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벤치마크인 브렌트유 가격은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배럴당 107.70달러까지 상승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역시 배럴당 108.15달러를 기록하며 100달러 선을 넘어섰다. 특히 WTI 가격은 전쟁 발발 이후 약 일주일 사이 35% 급등해 지난 1983년 선물거래 통계 집계 이후 가장 큰 주간 상승폭을 기록했다.
국제유가 급등은 통상 정유사들의 수익성 개선 기대를 키운다. 석유제품 가격 상승 폭이 원유 도입 가격 상승 폭을 웃돌 경우 정유사의 핵심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33달러 수준까지 올라 업계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4~5달러를 크게 웃돌고 있다. 저가에 확보한 원유 재고의 평가이익과 래깅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단기 실적 개선 기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런 호재가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유업계가 유가 상승보다 더 민감하게 보는 변수는 원유를 제때 들여올 수 있느냐는 공급망 문제다. 한국의 원유 수입 가운데 약 70%가 중동산이고, 이 가운데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국제유가가 오르며 정제마진이 개선되더라도 정작 원유 도입이 막히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 국내 정유사에 원유를 공급할 유조선 7척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묶여 있는 상태다. 선박 한 척당 최대 200만 배럴을 실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일주일치 국내 석유 소비량에 해당하는 물량이 제때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정유사들은 이미 비상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전쟁 발발 이후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원유 수급 상황과 국제 시황, 선박 운항 동향을 상시 점검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 브라질, 서아프리카 등 중동 외 지역에서 대체 원유 확보를 추진하고, 재고 관리와 선적 일정 조정에도 나선 상태다.
송헌재 서울시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 정제마진이 개선돼 실적이 오를 수 있지만 절대적인 거래량이 줄어서 기업에 좋지 않은 신호다"라고 말했다.
철강 '전력·원료비' 이중 부담…수익성 경고등
철강업계는 유가 상승 부담의 영향을 더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철강 산업은 대표적인 에너지 집약 산업으로, 고로(용광로)와 전기로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전력을 사용한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발전 연료 가격 상승이 전력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철강 생산비 증가로 연결되는 구조다.
특히 전기로 비중이 높은 업체일수록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전기로는 전체 제조원가에서 전력비가 약 15%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가 상승이 단순한 에너지 비용 증가를 넘어 생산 전 과정의 원가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 철강업계가 탄소 배출 감축 기조에 맞춰 전기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포스코는 오는 6월 광양제철소 내 연산 250만t 규모 전기로를 가동할 계획이며, 전기로 풀가동 시 광양제철소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기존보다 10% 이상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제철 역시 전기로 비중이 높아 연간 전력비 부담이 약 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환율 상승 역시 철강업계의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철강사들은 철광석과 제철용 원료탄 등 주요 원료를 해외에서 달러로 구매하기 때문에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입 원가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철광석과 제철용 원료탄은 대부분 해상 운송을 통해 들여오는 만큼, 국제 유가 상승은 선박 연료비와 해상 운임 인상으로 이어져 실질적인 원료 조달 비용을 더욱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원료 가격 자체가 오르지 않더라도 운송비 부담이 확대되면 전체 조달 비용은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유가 상승은 단순한 에너지 비용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상 물류비 상승에 따른 원료 조달 비용까지 동시에 끌어올리는 요인"이라며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할 경우 철강 산업의 비용 구조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 장기전 땐 정유·철강 모두 비상
문제는 고유가 국면이 단기에 머무르지 않고 장기전으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당장은 정유업계가 정제마진 확대에 따른 수혜를 기대하고, 철강업계가 비용 부담을 먼저 떠안는 구조지만 중동 정세 불안이 길어질수록 두 업종 모두 각기 다른 형태의 부담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정유업계의 경우 지금은 제품 가격 강세와 재고평가이익 덕에 실적 개선 기대가 가능하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원유를 제때 들여오지 못하면 정제마진 개선 효과보다 수급 차질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일부 업체들이 이미 4월 도착 예정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내부적으로 가동률 하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정유 공장 가동률이 낮아지면 휘발유와 경유 등 석유제품 공급이 줄어들어 국내 기름값 상승 압력이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철강업계 역시 고유가 장기화의 후폭풍을 피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전력비와 운송비, 원료 조달 비용 상승이 부담이지만, 시간이 갈수록 수요 부진이 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이미 글로벌 경기 둔화로 업황이 부진한 상황에서 건설·자동차·조선 업종의 투자와 생산이 위축되면 철강 수요 회복 시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원가 절감과 생산 효율화로 버티고 있던 업계 입장에서는 고유가 장기화가 수익성 회복 흐름 자체를 흔드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부는 원유 수급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한국석유공사는 UAE와 쿠웨이트에서 총 8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국내 비축량은 정부 7648만 배럴, 민간 7383만 배럴 등 총 1억5700만 배럴 수준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월간 수입 규모를 감안하면 긴급 확보 물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비축유 방출 여부가 시장 안정의 핵심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브롬가스 공급의 90% 이상을 이스라엘에 의존하는 만큼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하면 국내 산업 전반과 수출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정부가 전략 비축유 방출 등을 검토해 당장은 3~4개월 정도 대응할 수 있더라도 전쟁이 길어질 경우 충격이 불가피한 만큼,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동 원유를 대체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제영 기자 zero1013@newsway.co.kr
이승용 기자 lsy2665@newsw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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