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뉴스

하와이에서 결혼하는 일본인들, 왜?···헛도는 ‘부부별성’ 논의 속 ‘내 이름 지키기’ 안간힘

댓글0
일 마이니치신문, 해외 ‘리걸 웨딩’ 사연 소개
다카이치 총리의 결혼 전 성 ‘통칭’ 사용 방안에
“정체성 문제···이름 두 개 갖고 싶은 것 아냐”
경향신문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오른쪽)가 지난달 27일 가타야마 사츠키 재무상과 도쿄 중의원에서 열린 예산위원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AFP연합뉴스


일본 고베에 사는 반노 미사키(26)와 남편(26)은 지난해 9월 미국 하와이에 가서 결혼식을 치렀다. 하와이 결혼식이라면 부유층의 호화 결혼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반노 부부의 예식은 결혼 중개인인 목사 1명만 참석하는 간소한 결혼식이었다. 이들이 가족도 친구도 없이 멀리 하와이에서 외로운 결혼식을 치른 이유는 부부별성이 허용되지 않는 일본에서 결혼 전 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하와이를 원해서가 아닌 이름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던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의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공전하고 있는 일본에서 자신의 성을 지키기 위해 해외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이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반노 부부처럼 결혼 전 성을 유지한 채 해외로 나가 ‘리걸 웨딩’, 즉 법률혼을 올리는 이들이 선호하는 곳이 바로 하와이다. 하와이는 18세 이상 미혼자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결혼이 가능하며 거주 연수 등 조건이 있는 다른 지역에 비해 법률혼의 문턱이 낮기 때문이라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일본 민법은 부부가 같은 성을 갖도록 강제하고 있다. 민법 750조는 ‘부부는 혼인 시 정한 바에 따라 남편 또는 아내의 성을 칭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아내의 성을 따르는 경우는 극소수다. 대부분 여성이 혼인신고와 동시에 남편의 성을 따르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여성계와 야당 일부가 법제화를 주장해온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는 부부가 다른 성을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는 제도다. 하지만 지난 2월 실시된 중의원 선거의 당선자 중 절반에 가까운 47%가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반대하고 있어 이 제도 도입은 현재로선 어려운 상황이다.

교토대 대학원생으로 고대 로마사 연구자인 반노가 시간과 비용을 들여 하와이에서 결혼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자신의 학술 분야에서의 커리어 때문이다. 논문과 학위, 학회 발표, 국제네트워크 등에서 모두 이름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성을 바꾸면 지금까지의 업적이 다른 사람의 것처럼 취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결혼 전 성을 통칭으로 사용할 경우 호적명을 따르는 여권과의 불일치 때문에 학회 참석을 위한 해외 입국이 거부될 우려도 있다.

결혼 전 성을 통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추진하는 방안으로, 법률상 성은 남편을 따르더라도 일상에서는 결혼 전 성을 사용하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마이니치는 다카이치 총리가 최근 각료들에게 공적인 증명서 등에 여성들이 남편의 성과 결혼 전 성을 병기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 전 성만 적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방안에 대해 반노는 마이니치에 “정체성의 문제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성을 옛 성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면서 “이름을 두 개 갖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노처럼 해외에서 법적으로 혼인관계를 인정받는다고 해도 일본의 호적제도가 법률상 부부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생기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마이니치는 2022년 미국에서 결혼 전 성을 유지한 채 결혼한 영화감독 소다 카즈히로와 아내 카시와기 키요코의 부부별성 혼인 확인을 위한 소송에서 도쿄지방법원이 해외에서의 혼인 자체는 ‘우리나라에서도 유효하게 성립한다’고 판단하면서도, 별성으로 호적에 혼인관계를 기재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반노 부부의 부부별성 혼인신고서 역시 ‘불처리처분’을 받았다.

경향신문

일본 고베시의 라이프 파트너제도 안내. ‘인생을 함께 걷다. 두 사람을 응원합니다’ ‘고베시 라이프파트너 제도’라고 적혀있다. 고베시 누리집 갈무리


게다가 관공서나 보험사 등은 해외에서 결혼하고 온 이들에 대해 ‘해외 증명서로는 부부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사실혼으로 간주해 처리하는 경우도 많다. 질병이나 부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도 법적인 배우자로 취급받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이 같은 불편으로 인해 반노 부부는 고베시가 운영하는 라이프파트너 제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라이프파트너 제도는 사실혼 관계를 지자체가 증명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를 이용하면 병원에서 부부로 대우받는 것이 가능하다. 반노는 “해외 결혼과 라이프파트너 제도는 현행 제도의 구멍을 메우는 퍼즐 조각”이라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하지만 해외 법률혼은 누구에게나 열린 것이 아니며 왕복 항공운임과 체재비로 상당한 지출을 각오해야 하고, 일정한 어학 실력이 없으면 선택할 수 없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요시이 미나코 무코가와여대 준교수는 리걸웨딩에 대해 마이니치에 “오랜 세월 답보를 계속해 온 일본의 법 제도에 대해 당사자가 선택할 수밖에 없는 실무적인 대항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해외 결혼은 특권적인 선택지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면서 “원래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가족형성 권리가 개인의 조건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법에 따른 평등에 반하는 심각한 불평등”이라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요뉴스

해당 언론사로 연결

이 기사를 본 사람들이 선택한 뉴스

  • 아시아경제부여군, 소비쿠폰 지급률 92.91%…충남 15개 시군 중 '1위'
  • 동아일보[부고]‘노태우 보좌역’ 강용식 전 의원 별세
  • 노컷뉴스'폐렴구균 신규백신' 10월부터 어린이 무료 접종
  • 연합뉴스속초시, 통합돌봄 자원조사 착수…'노후 행복 도시' 기반 마련
  • 머니투데이"투자 배경에 김 여사 있나"… 묵묵부답, HS효성 부회장 특검 출석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