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중국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8일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계기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
중국 외교 사령탑인 왕이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이 8일 양회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계기로 열린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을 두고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힘의 외교를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을 직접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미·중관계에서 협력을 강조했다.
왕 부장은 이날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약 1시간 26분 동안 생중계로 진행된 ‘전국인민대표대회 외교분야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 21개에 답하며 중국의 올해 외교정책을 설명했다.
왕 부장은 먼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과 관련해 “본래 일어나서는 안 될 전쟁이며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다”며 “당장 무력행동을 멈추고 전쟁을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한비자에 나오는 구절인 ‘병자 흉기야, 불가불심용(兵者, 凶器也, 不可不审用)’를 언급했다. 이는 ‘전쟁은 재앙을 부르는 수단이기 때문에 사용하더라도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왕 부장은 이란과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 원칙으로 “이란과 걸프 지역 국가의 주권, 안전, 영토 보전은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며 “색깔 혁명과 정권교체를 조직하는 것은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색깔 혁명’은 중국과 러시아가 1990년대 중반부터 중동·중앙아시아에서 일어난 일련의 혁명 뒤에는 서방이 배후에 있다며 폄하하는 표현이다.
왕 부장은 “강한 무력이 곧 강한 도덕적 기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잦은 무력 사용은 강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며 민중이 무고한 희생양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베네수엘라와 이란 등 곳곳에서 무력 행동과 전쟁을 강행한 미국을 겨냥한 비판으로 풀이된다. 그는 남미와의 관계에서는 “21세기는 19세기의 낡은 드라마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의 서반구 회귀를 선언한 ‘21세기 돈로주의(도널드 트럼프와 먼로주의 합성어)’를 비판했다.
다만 이날 왕 부장의 발언에 미국, 이스라엘을 직접 언급한 대목은 없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결집을 부르지 않고 미·중 대화 국면을 이어가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미·중관계와 관련해서는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평화 공존의 원칙을 지키고 협력과 상생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아직 공식화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 방중과 관련해서는 “올해는 확실히 중미 관계의 중요한 해로, 고위급 교류 일정이 이미 테이블에 올라와 있다”며 “이견을 관리하고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며 불필요한 방해를 배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절제된 톤으로 역사 문제를 거론했다. 왕 부장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 시 자위대 개입’ 발언과 관련해 일본 군국주의가 과거 존립 위기를 구실로 다른 나라를 침략했던 전례를 고려할 때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향후 행보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올해가 도쿄전범재판 80주년이며, 역사는 다시 한번 일본에게 과거를 되돌아볼 기회를 줬다”며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이 누구도 실수를 반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대만 문제 관련해서는 대만 집권 민진당을 평화 위협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국제적으로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여론이 선명해질수록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며, 그 누구도 80년 전 (일본에서) 해방된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왕 부장은 지난해에는 “대만의 올바른 이름은 중국 대만성”이라고 말했는데 올해는 대만 관련 위협 수위를 낮췄다고 평가된다.
왕 부장은 미국과 미국 동맹국에 대한 비판 수위는 낮추면서도 다자주의를 강조하면서 국제사회에 중국의 리더십이 미국과는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 등이 글로벌 도전에 함께 책임을 지고 대응하자며 제시한 ‘미·중 공동통치’ 프레임을 받아들이는가“라는 미국 매체의 질문에 “중국과 미국은 당연히 세계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만, 우리는 이 행성에 190여개 국가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며 “중국은 절대 강대국이 되면 반드시 패권을 추구하는 옛길을 가지 않고, ‘강대국 공동통치’ 논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이 말하는 세계 다극화의 의미에 대해 “모든 국가가 자신의 지위와 역할을 갖고, 유엔(UN) 헌장과 국제관계 기본준칙을 준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왕 부장은 “유엔은 완벽하지 않지만 유엔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더욱 나빠졌을 것”이라면서 “유엔에서 스스로 고립하는 소규모 집단은 일은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하는 ‘평화위원회’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왕 부장은 올해도 ‘주변국 외교’가 중국 외교정책에서 가장 중요하다며 “중국이 몇몇 전통적 강대국들처럼 주변에 세력 범위를 긋고 진영 대결을 도발하거나 심지어 이웃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아시아의 형세가 오늘처럼 안정적이었겠는가”라며 중국이 지역 안보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고산처럼 편안하다(風雨不動安如山)’는 두보의 시 구절을 인용해 양국의 끈끈함을 표현했다.
왕 부장은 지난해 이어 올해도 한·중관계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하지 않았으며 한국 기자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한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초 외교 성과를 설명할 때 사례로서 잠시 언급됐다.
베이징 | 박은하 특파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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