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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가족, 사회와 단절된 채…버거씨병 노인은 그렇게 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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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거씨병 앓던 60대 노인 사망 그 후
4천만원 전셋방 보증금 200만원 뿐
"다리 절단" 진단…돈 걱정에 진료 거절
유족 있지만 무연고자로 장례 치를 듯
노컷뉴스

정수씨가 살던 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 민소운 기자



손발이 썩어가는 버거씨병을 앓던 60대 기초생활수급자 김정수(67·가명)씨가 지난 6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에서 홀로 숨졌다. 사망 당시 그의 오른 다리는 발끝부터 허벅지까지 모두 괴사한 상태였다. 죽기 전날 출동한 119 구급대가 인근 병원 여러 곳에 연락했지만 모두 입원이 거절됐고 결국 만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자택에서 사망에 이른 것이다.

이웃들에 따르면 정수씨는 지금 집에 1년 전쯤 이사를 왔다. 한때는 집 앞 슈퍼에서 우유나 물 등 생필품을 사 올 정도로 건강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 몇 걸음도 걷지 못할 만큼 병세가 악화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H 대학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오른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의사 소견을 듣고는 곧바로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수씨는 "수술비만 수천만 원 든다더라"고 읊조리며 줄곧 진료를 거부했다고 한다. 수십만 원의 생계 급여가 그의 월 소득 전부였고 전셋방 보증금 4천만원 중 정수씨 돈은 겨우 200만원이었다. 어쩌면 그를 짓누른 것은 오른 다리를 통째로 절단한다는 두려움보다 치료비 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작은 공간 속 모든 물건 중 안방구석에 펼친 두꺼운 이불이 가장 온전했다. 전농2동 주민센터가 지난겨울을 앞두고 보내 온 새 이불이었다. 겉이불을 걷어낸 장판과 벽지 곳곳에 진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진물을 닦은 휴지와 수건, 정수씨가 사용하던 기저귀가 함께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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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씨가 살던 7일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방. 민소운 기자



방 한편에서는 2020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면서 만든 은행 입출금 통장이 발견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책자 위에는 주민센터 사회복지사 전화번호, 집주인 이름·휴대전화 번호가 삐뚤삐뚤한 손 글씨로 적힌 메모지가 올려져 있었다. 유일한 외부인의 흔적이었다.

식탁에는 요플레 용기와 물병, 우유갑, 소주병이 고스란히 올려져 있었다. 정수씨는 늘 밥 대신 죽, 죽 대신 요플레나 우유를 먹었다고 한다. 그의 집 근처에서 만난 한 주민은 "그렇게 발을 절면서도 늘 술과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고 정수씨를 회상했다. 말초 혈관이 막히는 버거씨병 환자에게 담배는 독약과도 같다.

가끔 함께 밥을 먹고 돌봤다는 박모씨는 정수씨의 죽음 앞에서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했다. 정수씨는 큰돈이 든다는 이유로 한사코 병원 치료를 거절했다고 한다. "아쉬워. 더 해서 먹이고, 억지로 때려서라도 병원에 끌고 갈 걸 그것도 못 하고. 한 번도 아프다 소리 내는 걸 못 들어봤어. 억지로라도 더 해볼걸."

정수씨는 사망 전날 출동한 소방대원과 주민센터 직원들의 끈질긴 설득 끝에 마음을 돌려 병원행을 결심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받아주는 병원이 한 곳도 없었다. 2시간 넘는 기다림에도 국립중앙의료원과 서울의료원, 인근 대학병원 모두 입원 허가가 나지 않자 구급대원은 간단한 처치만 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진료를 하면 입원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는 9일 한 병원 외래 일정을 잡았지만 이제는 소용없는 일이 됐다.

그는 연을 끊고 지낸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다. 사망 직전 어렵게 연락이 닿아 연명 치료 의사 등을 물었지만 끝내 거절했다고 한다. 현재 그의 시신은 서울 동대문구의 한 병원 안치실에 있다. 유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고 있어 조만간 무연고자로 분류돼 공영 장례가 치러질 전망이다. 시신은 화장한 후 유골을 봉안한다. 5년 뒤에도 유족 연락이 없으면 산분(散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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