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 자치정부 군대 페슈메르가[게티이미지] |
[헤럴드경제=서지연 기자]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이어가는 가운데 쿠르드족이 전쟁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르드 무장세력을 활용해 이란 정권을 압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5일(현지시간) 쿠르드족이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규모 민족 집단 가운데 하나로, 중동에서 오랜 기간 무장 세력을 유지해 온 만큼 이번 전쟁에서도 전략적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쿠르드족 무장조직 분포 현황 |
쿠르드족 인구는 전 세계적으로 약 3000만~40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은 튀르키예 동남부와 이라크 북부, 이란 서북부, 시리아 북동부 등 네 나라 국경이 맞닿은 산악 지대에 주로 거주한다. 언어는 인도·유럽어족 이란어군에 속하는 쿠르드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대체로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다.
민족 규모만 놓고 보면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아랍인, 튀르키예인, 페르시아인에 이어 네 번째로 큰 집단이다. 그러나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한 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아가는 ‘무국가 민족’으로 남아 있다.
쿠르드족이 국가를 갖지 못하게 된 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중동 국경 재편 과정에 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에는 쿠르드 독립국 구상이 담겼지만, 1923년 로잔 조약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되면서 쿠르드 지역은 튀르키예·이라크·이란·시리아 등으로 분할됐다.
이후 독립 요구는 각국에서 반란으로 간주돼 강하게 탄압됐다.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쿠르드어 사용과 방송을 금지했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1988년 화학무기를 사용해 쿠르드 민간인 수천명을 학살하기도 했다.
쿠르드 자치정부 군대 페슈메르가[게티이미지] |
이 같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쿠르드 사회에서는 “쿠르드인의 친구는 산뿐이다”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외부 강대국이나 주변 국가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집단적 기억이 담긴 표현이다.
쿠르드족은 자체 무장세력인 ‘페슈메르가’를 중심으로 강한 군사 조직을 유지하고 있다. 페슈메르가는 쿠르드어로 ‘죽음을 마주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험준한 산악 지형에 대한 높은 이해와 기동성을 바탕으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비정규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실제로 쿠르드 무장세력은 미국 주도의 국제연합군과 함께 이슬람국가(IS) 격퇴 작전에서 핵심 지상군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군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했고, 서방 군사 작전의 주요 파트너로 자리 잡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쿠르드 세력을 활용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쿠르드 민병대를 통해 이란 북서부 국경 지역에서 군사 압박을 가하면 이란군의 병력과 자원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외신에서는 반이란 성향의 쿠르드 무장세력이 이란 국경 지역에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이들 세력은 이란 서북부 산악 지형에 익숙해 게릴라전 수행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쿠르드 세력이 이란 내부 깊숙이 진격하기보다는 국경 지역에서 전선을 확대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공중 지원과 군사 고문이 동반될 경우 일부 쿠르드 거주 지역을 장악하며 이란군을 국경 전선으로 끌어내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 현재 이라크 북부 쿠르드 자치정부 지도부는 이번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또 쿠르드족은 과거에도 중동 분쟁 때마다 강대국의 전략 속에서 이용됐다가 방치되는 경험을 반복해 왔다. 2019년 미국이 시리아 북부에서 철군하자 쿠르드 지역은 곧바로 튀르키예 군사 압박에 노출되기도 했다.
가디언은 “전쟁이 벌어질 때마다 쿠르드족은 종종 교전의 한복판에 놓였다”며 “그들에게 진정한 보호자는 주변의 산맥뿐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