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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아니라 오해에서 시작된다[명쾌한 임대차 분쟁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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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임대차 분쟁은 대개 거창한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사소한 오해 하나가 쌓이고 그것이 풀리지 않은 채 또 다른 오해를 낳으며,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진다. 처음에는 단순한 표현의 차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의미를 바로잡지 못한 순간, 관계의 방향은 서서히 어긋나기 시작한다.

임대차 관계에서 오해는 대개 ‘기대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임대인은 계약서에 적힌 조건을 기준으로 관계를 이해한다. 반면 임차인은 계약서에 적히지 않은 맥락과 분위기, 당시의 합의 취지까지 함께 기억한다. 같은 계약을 두고도 해석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에, 작은 상황 변화에도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예컨대 임대료 인상 문제에서 임대인은 “법에서 허용된 합리적 범위”를 강조한다. 그러나 임차인은 “처음 계약할 때의 신뢰”를 떠올린다. 조건을 말하는 쪽과 관계를 기억하는 쪽의 간극이 설명되지 않으면, 상대의 주장은 곧 의심의 대상이 된다.

오해는 상대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듣지 않는 순간 시작된다. 이미 감정이 상해 있다면, 설명은 변명으로 들리고 제안은 압박으로 해석된다. 이때부터 대화는 사실 확인을 넘어 의도를 추정하는 심리전으로 변한다. 말의 내용보다 숨은 뜻을 먼저 의심하는 순간, 해결은 멀어진다.

임대차 관계 특유의 구조적 불균형도 오해를 증폭시킨다. 임대인은 계약 종료나 조건 변경이라는 권한을 갖고 있고, 임차인은 그 결정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임차인은 상대의 모든 말을 이미 내려진 결정으로 받아들이기 쉽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반응을 과도한 방어로 오해하기 쉽다. 의도적 왜곡이 아니라 위치의 차이에서 비롯된 해석의 차이다.

문제는 이 오해가 확인되지 않은 채 굳어질 때다. 한 번 형성된 부정적 인식은 이후의 모든 대화를 같은 틀로 재해석하게 만든다. “저 사람은 원래 그렇다”는 판단이 자리 잡는 순간, 어떤 설명도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 대화가 멈춘 자리에 왜곡된 기억이 대신 들어선다.

실무에서 오해가 풀리는 경우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상대의 말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지금 말씀하신 뜻이 이런 의미입니까?”라는 질문 하나가 왜곡의 속도를 늦춘다. 의도를 추측하기보다 사실을 확인하려는 태도가 관계를 되돌려 세운다.

반대로 오해가 분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대체로 비슷하다. 직접 묻지 않고 제삼자의 해석이나 추측에 기대어 판단할 때다. 문자 몇 줄, 주변의 조언 몇 마디가 관계 전체를 규정해 버린다. 확인되지 않은 해석은 사실처럼 굳어지고, 그 위에 감정이 덧붙는다.

임대차 분쟁은 대개 법 조항의 차이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다르게 이해한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 오해를 바로잡지 못하면, 결국 법원이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된다.

오해를 줄이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다. 더 많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묻는 것이다. 협상이 감정에서 무너진다면, 분쟁은 오해에서 자란다. 그 흐름을 인식하는 순간, 많은 갈등은 초기에 멈출 수 있다.

황규현 교수는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이자 부동산·임대차 분야의 전문가이다. 그는 홍익대학교에서 “임차인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 규제에 관한 연구(영국, 미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서울시 소상공인과 주무관으로 근무하며 실무 경험을 쌓았다. 주요 저서로는 ‘NEW 상가임대차 분쟁 솔루션’을 포함한 5권의 전문 서적이 있다.

황규현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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