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금금리는 2%대에 머무는 반면 대출금리는 5~6% 수준을 유지하면서 은행 자금이 증시로 이동하는 ‘머니무브’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unsplash |
“이자소득세 떼고 물가 상승률까지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나 다름없다. 예금은 2% 수준인데 대출금리는 6% 가까이 된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차라리 변동성이 있더라도 증시 대기 자금으로 돌려두려 한다.”
김 씨처럼 ‘쥐꼬리 예금’에 실망한 자금이 썰물처럼 은행을 빠져나와 여의도로 향한다. 금융권 자료를 종합하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의 정기예금 잔액은 올해 1월부터 2월까지 두 달간 약 2조4132억원 감소했다.
증시 투자자예탁금은 큰 폭으로 늘어 지난달 26일 기준 119조4832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2%대 예금에 묶여 있던 자금이 수익률을 찾아 증시 주변으로 이동하는 대이동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은행 떠난 돈, 증시 대기자금으로
은행권 요구불예금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2월 말 기준 684조8604억원으로 2026년 1월 대비 5.1%(33조3225억원) 증가했다. 정기예금에서 빠진 일부 자금이 언제든 투자에 활용할 수 있는 대기성 자금(파킹통장 등)으로 이동하는 흐름이다.
단기 투자 대기 자금으로 분류되는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 역시 2월 넷째주 기준 200조원 안팎을 기록하며 역대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국내 증시뿐 아니라 더 높은 수익률을 찾아 미국 주식을 사들이는 이른바 ‘서학개미’의 공격적인 투자도 자금 이동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한국예탁결제원 집계에 따르면 개인 주식 투자자는 2024년 말 기준 약 1424만명으로, 국민 4명 중 1명꼴로 증시에 참여하고 있다.
◆벌어지는 예대금리차, 왜?
그렇다면 왜 이런 자금 이탈이 가속화할까. 핵심은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를 명분으로 대출금리는 높게 쥔 채 예금금리만 억누르는 수익 구조에 있다. 가계대출 총량 규제라는 정책 기조 속에서, 은행 입장에서는 굳이 높은 금리를 얹어주며 예금을 유치할 유인이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데이터에 따르면 1월 예금은행의 신규취급액 기준 예대금리차는 약 1.46%p로 2025년 12월 대비 0.17%p 확대됐다.
5대 은행의 가계 예대금리차(정책서민금융 제외) 평균치 또한 1.504%p로 2025년 12월 대비 0.242%p 상승하며 2025년 2월 이후 1년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반면 12개월 만기 정기예금 기본금리는 2%대 초중반에 머물러, 3%를 넘는 시중은행 상품은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국채금리와 기준금리 간 괴리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25년 12월 말 기준 원화대출 연체율이 0.5%로 약 10년 만에 다시 0.5%대에 진입했다. 은행들이 연체 리스크 프리미엄을 금리에 선반영하고 있어 당분간 대출금리 하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이자 장사 논란과 독자의 지갑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대출 수요 자체가 제한적인 상황”이라며 “높은 금리를 지급하면서까지 예금을 적극적으로 끌어올 유인은 크지 않다”고 귀띔했다.
이러한 예대금리차 확대가 장기화할 경우 ‘이자 장사’ 논란과 자산 양극화 문제는 더욱 짙어질 가능성이 크다.
투자자예탁금은 119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unsplash |
금융감독원 자료를 보면 국내 은행의 순이자이익은 2025년 결산 기준 약 59조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금리 격차가 벌어지는 틈새에서 은행의 금고는 두둑해지지만, 평범한 금융 소비자의 이자 상환 부담은 턱밑까지 차오르는 모순적 구조다.
은행 문을 나서는 김 씨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해외 주식 실시간 시세가 붉고 푸른빛을 내며 쉴 새 없이 번쩍인다.
월급은 제자리걸음인데 대출 이자는 6%에 육박하는 팍팍한 현실. 2% 남짓한 예금 통장에 돈을 묵혀둘 것인가, 변동성의 파도를 감수하고 증시로 뛰어들 것인가. 내일 아침, 당신의 여윳돈은 어느 계좌를 향해 흘러가고 있을지 돌아볼 때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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