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서 시작된 이란 전쟁이 지상전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며 난타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양쪽 모두 소모전을 각오한 가운데 전쟁 비용이 천정부지로 늘 것이라는 예측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란은 사망한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후임으로 그의 차남을 내세우며 보복 의지를 다졌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그 과정에서 지난 4일(현지 시간) 잠시 안정을 찾았던 국제 유가는 다시 급상승하는 분위기다. 벌써 배럴당 80달러에 도달해 장기적으로 100달러도 넘어설 수 있다는 주요 외신 예측에 다가가고 있다. 한국과 각국 소매 기름값도 벌써부터 연쇄적으로 인상되고 있어 서민들의 부담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적 열세’ 미군, 쿠르드족 지상전 투입설...이란은 미사일 소진 중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은 5일 중동 곳곳에서 엿새째 전투를 이어갔다. 미국은 4일 스리랑카 인근 인도양에서 이란 해군 호위함을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하기도 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전쟁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국이 단호하고 파괴적으로, 그리고 자비 없이 승리하고 있다”며 “하루종일 하늘에서 죽음과 파괴를 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신정체제와 이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한 3단계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1단계는 이란 지도부 제거, 2단계는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방공망 파괴다. 이후 3단계가 어려운 일인데, 바로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 민병대 등을 무너뜨리는 구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실제 이스라엘군은 민중 봉기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최근 반정부 시위를 탄압한 이란 내 치안 당국을 주로 공습했다. 이스라엘은 이란을 도와 자국을 공격 중인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의 전투에도 지상군을 동원했다.
쿠르드족이 미국, 이스라엘과 손잡고 이란 내부에서 지상전을 개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쿠르드족 병력 수천 명이 이라크에서 이란으로 진입해 지상 공격 작전에 착수했다. 쿠르드족은 튀르키예, 이라크, 이란, 시리아에 걸쳐 거주하는 약 3000만~4000만 명의 이란계 산악 민족이다. 국가가 없는 민족 가운데 인구가 가장 많다. 쿠르드족은 그간 이란에서 오랫동안 차별과 탄압을 당했기에 이번 분쟁을 자치권 획득의 기회로 보고 있다. 애초 중동 지역 내 미군 수는 제한적이어서 미국이 정권 전복을 위한 지상전을 펼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전 초부터 이란 내 민중 봉기를 부추기는 것도 이 같은 이유와 맞닿아 있다.
CNN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이란의 반정부시위를 확대할 목적으로 쿠르드족과 작전을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란은 이에 맞서 이라크 쿠르디스탄 자치구에 위치한 쿠르드족 단체 본부를 미사일로 타격했다. 또 아랍에미리트(UAE)에 위치한 아마존웹서비스(AWS)의 데이터센터와 바레인에 있는 중동 내 최대 아마존 데이터센터를 연달아 때렸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미사일 재고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은 브리핑에서 “이란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발사 횟수는 전투 첫날에 비해 86% 감소했다”며 “지난 24시간 동안만 해도 23% 감소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하메네이 차남 후계자설에 분노...美, 천문학적 재정적자 속 추가 전쟁비용 부담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이란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차남을 후계자로 선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바꿔 말하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구축한 신정 체제를 강화하겠다는 뜻이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3일 이란 당국자 등을 인용해 최고지도자를 선출하는 헌법 기구가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후계자로 뽑는 방안을 심의했다고 보도했다. 1969년생인 모즈타바는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은 막후 실세 인사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정보기관 내 영향력이 막강한 강경파 인사로 꼽힌다. 이스라엘 최대 일간지 예디오트 아흐로노트의 온라인 뉴스 포털 와이넷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재산을 1000억~2000억 달러로 추정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5일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나는 베네수엘라에서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과 했던 것처럼 그 임명에 관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임시 대통령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미군에 의해 축출당할 당시 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며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아들은 경량급”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아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란이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기조를 이어갈 지도자를 세울 경우 5년 안에 다시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도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지 않은 이유는 그가 무능력하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라며 “우리는 핵무기 없이도 이란을 훌륭하게 건설할 인물이 그 자리에 오르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4일에도 “이란의 지도자가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을 맞을 것”고 말했다.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질 징후를 보이면서 천문학적인 비용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올 1월 연방정부의 국가 총부채는 38조 5100억 달러(약 5경 3000조 원)에 달한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는 총 9015억 달러인데 최근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로 올해에는 그 부담이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가뜩이나 재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전쟁을 위한 추가 채무까지 져야 할 수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명예훈장 수여식에서 이란 전쟁 발발 후 첫 공개 연설을 갖고 “이란 전쟁이 4~5주 걸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우리는) 그보다 더 오래 지속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역설한 바 있다.
폴리티코는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이 4일 행정부의 지출 승인 요청이 있을 경우 “적절한 시기에 추가 지출 예산안을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스티브 파인버그 미국 국방부 부장관이 최근 무력 충돌로 소모된 무기 재고를 보충하기 위해 500억 달러(약 74조 원) 규모의 추가예산 요청안을 작성해 6일 공개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존슨 의장은 ‘의회가 500억 달러 규모 추가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느냐’는 질문에 “백악관과 국방부의 입장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 문제에 대해 우리는 열린 논의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공화당의 스티브 스칼리스 하원 원내대표는 마코 루비오 국무부 장관 등의 의회 대상 브리핑에서 “추가 예산이 필요할 수 있다는 점이 제기됐다”면서도 “아직 전투 초기 단계이고 국방부로부터 공식적인 추가 예산 요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진보 성향의 싱크탱크 미국진보센터(CAP)의 앨리슨 맥매너스 국장은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중동에서 무모한 선택적 전쟁을 시작했다”며 “이는 이미 미국 납세자들에게 50억 달러(약 7조 4000억 원)가 넘는 비용을 초래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맥매너스 국장은 세부적으로 국방부가 밝힌 전투기와 미사일 등 군사 자산 투입만으로 40억 달러 이상 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여기에 중동에 병력과 장비를 재배치하는 데에만 약 6억 3000만 달러가 소요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쿠웨이트의 오인 사격으로 미군 ‘F-15’ 전투기 3대가 격추된 사건에서도 약 3억 5100만 달러의 손실을 봤을 것으로 추산했다. 추가 예산 요청이 현실화되면 전쟁 비용이 최소 8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켄트 스메터스 펜실베이니아대 ‘펜 와튼 예산모형’ 책임자는 포천지 인터뷰에서 대(對)이란 전쟁이 미국 경제에 최대 2100억달러(약 309조 원)의 비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란이 사용하는 샤헤드 공격 드론의 제작 비용은 2만~5만 달러 수준이지만, 이를 요격하는 미국의 패트리어트 미사일의 가격은 한 발에 300만 달러 이상에 이른다.
유가는 또 폭등...중간선거 목적 전쟁에 ‘인플레 장기화 우려’ 변수로
전쟁 비용뿐 아니라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공포도 문제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바깥의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 정박하고 있던 유조선을 공격했다는 소식에 국제 유가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5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은 배럴당 81.01달러로 전 거래일보다 8.51% 상승했다. 이는 지난 2024년 7월 이후 1년 8개월 만에 최고치이다.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도 4.93% 올라 배럴당 85.41달러에 도달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이라크 바스라주 호르 알주바이르 항구 인근에 정박한 유조선 한 척이 폭발로 파손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도 같은 날 걸프 해역 북부에서 미국 유조선을 타격했으며 이 선박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JP모건은 투자자 노트에서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봉쇄가 지속될 경우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원유 공급이 며칠 내로 중단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분쟁 8일째에는 하루 최대 330만 배럴의 공급이 차단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미자동차협회(AAA)에 따르면 이날 미국 내 휘발유 1갤런(약 3.78리터)의 소매 가격은 지난주보다 약 27센트 상승한 평균 3.25달러를 기록했다. AAA는 미국 휘발유 가격이 이렇게 급등한 것은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로 유가는 물론 유조선 운임까지 사상 유례없는 수준으로 폭등하자 GS(078930)칼텍스는 그리스 미네르바마린 소유의 31만 7000톤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을 최근 하루 약 42만 4000달러(약 6억 2000만 원)에 계약했다. 용선 기간은 약 60일인데 전체 용선료가 2600만 달러(약 380억 원)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오일뱅크도 그리스 선사 라츠코시핑의 최신 선박을 평시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빌려 미국에서 수입할 원유 운송에 투입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중동 지역을 지나는 선박 보험료는 최고 12배 급등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서비스 오피넷에 따르면 국제 등유 가격은 3일 배럴당 130.24달러에서 4일 231.41달러로 하루 만에 77.7% 폭등했다. 5일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지역별·유종별로 현실적인 최고 가격을 신속하게 지정하라”며 매점매석과 폭리 단속을 주문했다.
백악관도 휘발유 등 에너지 가격을 낮출 수 있는 조치들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폴리티코는 5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이 참모들에게 휘발유 가격을 낮추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지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5일 유럽에 대한 가스 수출을 중단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곧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라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전쟁을 계기로 유럽을 옥죌 목적에서다.
이번 전쟁이 미국인들에게 경제적 피해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도 약발이 잘 먹히지 않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백악관에서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와 양자 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잠시 동안 유가가 조금 높을 수는 있겠지만 이 일이 끝나자마자 내려갈 것이고 심지어 이전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고 장담했으나 여론의 반응은 아직 차갑다.
CNN이 여론조사 업체 SSRS와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미국 성인 10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60%는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공습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1%에 그쳤다. 또다른 여론조사 업체 유고브가 2일 미국 성인 163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8%가 공습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이는 찬성(37%)보다 많은 수준이었다. 폭스뉴스가 유권자 1004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만 공습 찬반이 각각 50%로 팽팽하게 나뉘었다.
애초 이란 전쟁의 목적에 올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겨냥한 대외 성과였음을 감안하면 유가와 물가 상승, 재정 부담 증가는 앞으로의 전황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중동 전쟁으로 원유 가격이 계속 오를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케빈 워시 의장 후보자까지 지명하며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줄기차게 요구한 추가 금리 인하도 쉽지 않게 될 수 있다.
이번 중동 전쟁의 ‘진짜 승자’가 중국인 이유는?
뉴욕=윤경환 특파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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