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그간 우리 정부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으며, ‘한반도 2국가 체제’를 인정하는 것이 향후 현실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한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국책연구기관 토론회에서 나왔다. 아울러 북한과 중국·러시아 간의 ‘핵 공유 협정’을 인정하는 등 북한에 안보 자산을 제공해 비핵화를 이끌어내는 방안도 현실적 해법으로 제시됐다.
4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에 따르면 연구원은 전날 서울 중구 웨스틴 호텔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현실적 해법 모색’을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북핵문제의 국제정치적 함의 △현실적 북핵 접근법 등의 주제가 다뤄졌다.
토론 발제자로 나선 전봉근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지난 시기 우리는 북한의 붕괴나 변화를 전제로 한 비핵화 전략을 채택해왔지만 북한은 현재 최소 50기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으며 매년 10기 이상 증강시키고 있다고 보이는 만큼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소련, 미국과 중국 등 지정학적인 경쟁이 계속되는 동북아 안보환경상 북한 정권은 붕괴될 수 없는 구조”라며 “북한의 변화나 붕괴를 전제로 한 비핵화 전략이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무장에 나서는 근본적 이유가 남북 간의 ‘통일경쟁 관계’에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한반도 내 ‘2국가 체제’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북한 비핵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남북은 여전히 한 쪽이 살면 나머지가 죽는 생존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며 “한반도에 사실상 2국가 체제가 비핵화 달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 연구위원은 “북한이 현재 주장하는 ‘적대적 2국가 관계’는 우리가 수용할 수 없다”며 “결국 ‘평화적 공존’을 위한 2국가 관계가 필요하다. 이는 지난 1991년 남북의 동시 유엔 가입 당시에도 사실상 나타난 바 있다”고 했다.
조성렬 경남대 초빙교수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는 한국과 미국이 평화 체제를 제공하는 한편, 북한에 경성 안보 자산을 제공해 핵 자산을 포기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한미가 북한에 제공 가능한 평화 체제와 관련해 “우선 미국이 북한을 독자적인 전략 국가로 인정하면서 중국·러시아로부터 떼어내는 방안이 있다”며 “주한미군의 역할도 대북 억제에서 동북아 안정으로 전환한다면 비핵화 타협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또 “이를 위해 우리는 북한이 주장하는 ‘두개의 주권국가’ 체제를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한에 안보 자산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조 교수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간의 핵공유 협정 사례처럼 중·러를 활용해 북한에 핵을 대신할 경성안보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체제를 한·미·일이 인정하고 동시에 미국은 북한과 불가침 조약을 맺는 등의 안전보장 조치를 제공하면서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토론회에서는 최근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는 신호가 나오는 등 한반도 비핵화가 한층 어려워진 국제정치 상황에 대한 인식도 공유됐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입장이 북핵 문제를 중요하지 않다고 보고 북핵을 용인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미국이 지난해 국가안보전략서(NSS)와 국방전략서(NDS)에서 북핵이나 한반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을 제시하며 “결과적으로 북한도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하고 미국도 더는 이와 관련해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비핵화가 물 건너 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유승 기자 ky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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