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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전 한밤 중 목욕탕에 나타난 김정은, 분노한 이유는 [주성하의 ‘北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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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장벽 너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반세기 동안 북한을 지켜봐 온 주성하 기자의 시선으로 풀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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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새로 건설된 온포근로자휴양소를 찾은 김정은이 여성탕에 들어가 나이든 여성들과 대화하며 활짝 웃고 있다. 노동신문 뉴스1


북한 매체들은 21일 김정은이 함경북도 경성군 온포근로자휴양소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크게 보도했다.

준공식에서 김정은은 “몇 해 전 이곳에 왔을 때 당의 영도 업적이 깃든 사적 건물이라는 간판은 걸어 놓고도 휴양소의 모든 구획과 요소들이 비문화적이고 운영 또한 비위생적으로 하고 있는 실태를 심각히 비판하던 때가 기억난다”면서 “오늘 이렇게 인민의 훌륭한 휴양 봉사 기지로 다시 개건된 휴양소를 보니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을 또 하나 했다는 긍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얼핏 들으면 인민을 위해 엄청난 선심을 쓴 것처럼 들리지만, 김정은이 온포근로자휴양소에 집착한 데엔 나름 다른 이유도 있다.

이날 준공사를 한 리일환 노동당 비서는 “소문난 명승지인 온포지구의 새로운 전변은 원수님께서 이곳을 찾아오시었던 2018년 7월의 그날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바로 2018년 7월 초 그날 밤에 일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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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포근로자휴양소 전경. 건설하는 데 8년이 걸렸다. 노동신문 뉴스1


● 한밤에 쳐들어온 김정은

당시 노동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동지께서는 깊은 밤 온포휴양소를 찾으시어 관리 운영 실태와 형편을 요해하시였다.… 휴양소의 목욕탕을 돌아보시면서 관리를 잘 하지 않아 온천 치료 욕조가 어지럽고 침침하고 비위생적이라고, 최근에 잘 꾸려진 양어장들의 물고기 수조보다도 못하다고, 탈의실도 온전히 꾸려져 있지 않고 환기가 잘되지 않아 습하고 불쾌한 냄새가 난다고, 인민들이 휴양와서 치료하는 곳인데 소독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환경에서 치료가 되겠는가고, 정말 너절하다고 지적하시었다.

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 업적이 깃들어 있는 사적 건물이라는 간판을 걸어 놓고 이렇게 한심하게 관리 운영하여 인민들의 호평이 아니라 비평을 받게 되면 사철 온천물이 마를 줄 모르고 솟아나는 경치 좋은 곳에 인민을 위한 휴양소부터 일떠 세워주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업적을 말아먹고 죄를 짓게 된다고 준절히 이르시었다.”

노동신문에 이 정도로 보도가 나가면 김정은이 당시 얼마나 신경질적 반응을 보였을지 대략 상상이 된다. 아마 여러 간부들이 처벌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이상한 일은 김정은이 왜 하필 깊은 밤 온포휴양소를 찾았을까 하는 것이다.

온포휴양소는 북한 최북단 함경북도 경성역에서 직선거리로 12km 떨어진 곳에 있다. 관모봉에서 시작돼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개천을 따라 꾸불꾸불 산길을 20km는 달려야 한다. 김정은이 인민이 걱정돼 함경북도까지 와서 한밤중에 차를 몰아 올라갈 사람은 아닌 듯싶은데…,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온포휴양소에서 다시 직선거리로 14km 정도 상류로 올라가면 김정은의 호화 별장 ‘온포특각’이 있다. 김 씨 일가를 위한 호화 별장을 북한에선 특각, 또는 초대소라고 부른다.

예로부터 주을온천 또는 경성온천으로도 불린 온포온천은 신경통과 관절염, 피부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라돈 온천이다. 경성의 옛 지명 주을은 여진어로 ‘뜨거운 물’이란 뜻이다.

일제시대에 일본군도 요양소를 세워 이용했을 정도로 유명한 주을온천은 광복 후 김일성이 특히 좋아했다. 김일성은 함경북도를 시찰할 때마다 도 소재지 청진에 있는 특각에선 딱 두 번만 자고 늘 온포특각에 머물렀다.

김정일도 권력을 장악했을 때, 이 온천이 마음에 들어서인지 김일성 특각 옆에 자기 특각을 따로 지어 사용했다. 이 특각들은 당연히 김정은이 물려받았다.

그런데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냄새’가 나는 특각이 싫었는지 두 다 허물어 버리고 자기 특각을 새로 지었다. 이 특각은 2016년경 완공됐다.

특각까지는 지방에선 보기 드물게 길이 수십km 아스팔트도로가 쭉 연결돼 있다. 특각 지구엔 낚시터도 있는데, 물고기는 전부 특별 임무를 받은 양어 작업반이 청진시 한 호수에서 애지중지 키워 옮겨 온다. 어쩌다 나타나는 김정은을 위해 길이 20cm 이상의 잉어와 붕어를 비롯해 각종 물고기 수만 마리를 항상 낚시터에 가득 채워 넣어야 한다. 이 수만 마리 물고기가 오염시킨 물이 강을 따라 인민의 휴양소로 흘러내려 간다.

온포특각을 지키기 위해 974부대 정예 병력 1개 여단 2500명이 상시 주둔한다.

물론 주민들은 온포휴양소 상류에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누구도 접근할 수도 없고, 또 구글어스로 내려다볼 수도 없다. 그냥 “저기 상류에 장군님 특각이 있는데, 거기 경치는 훨씬 좋다” 정도의 소문만 돈다.

2018년 7월 초 새로 지은 온포특각을 찾은 김정은은 갑자기 잠이 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화풀이 대상을 찾고 싶었는지, 혹은 만취했는지는 몰라도 깊은 밤에 갑자기 차를 타고 하류에 있는 온포휴양지에 나타났다.

원래 김정은이 시찰할 곳은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나타나면 방법이 없다. 온포휴양소 간부들은 준비 없이 경을 치게 됐다.

사실을 따져 보면 휴양소가 양어장 욕조보다 못한 것이 간부들 책임은 아니다. 휴양소를 제대로 관리하려면 수익을 창출해 그 일부로 다시 휴양소를 관리해야 한다. 북한은 이런 시스템이 아니라서 당국에서 자재나 자금을 대주지 않으면 관리가 될 수가 없다.

먹고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온천욕이나 하려고 멀리서 며칠씩 기차를 타고 오지도 않는다. 아니, 온천욕하러 가겠다고 여행증을 발급해 달라고 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는다.

한국도 온천 문화가 쇠퇴하면서 과거 인기를 누리던 온천 시설들이 문을 닫은 사례가 많은데, 북한은 그것보다 상황이 심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류의 멀쩡한 김일성 특각과 김정일 특각을 다 밀어 버리고는 자기 특각을 새로 지은 김정은이 “수령님과 장군님 업적을 말아 먹었다”고 화를 내는 것이 황당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김정은이 격노했는데 새로 건설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날 저녁 김정은은 “인민군대가 다음 해에 멋들어지게 건설하여 우리 인민들에게 선물하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건물 몇 채를 완공하는 데까진 무려 8년이 걸렸다.

아마 다시 특각에 올라가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땐 필름이 끊겼는지 인민군대를 보내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잊어 버린 것 같다. 국가에서 자재와 인력을 대주지 않으니 함경북도 간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인민들 주머니를 쥐어짜서 휴양소를 지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3월 다시 온포휴양소에 나타난 김정은이 자기가 한 말을 기억해 냈는지, 이번엔 인력과 자재를 대주어 올해 완공된 것이다. 이제 김정은은 자신의 온포특각에 올라갈 때마다 도로 중간쯤에 있는 새 휴양소를 보면서 기분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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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포휴양소 상류에 있는 김정은 특각. 중간 공터에 있는 흰색 네모 칸 흔적이 김일성과 김정은 별장이 있던 자리이다. 김정은 새 특각은 산자락에 붙여 지었다. 그 아래로 개울을 막아 만든 전용 낚시터도 보인다. 이 별장 주변을 군인 2500명이 지키고 있다. 구글어스 캡처.


● 김 씨 일가 ‘현지 지도’의 비밀

이런 식의 김 씨 일가 현지 지도에는 숨겨진 공식이 있다. 그들이 자주 현지 지도했다는 지역을 보면 꼭 근처에 김 씨 일가가 사랑하는 특각이 있다. 특각에 와서 놀다가 심심하면 주변을 둘러보고 뭐라고 지적하는 것이 곧 현지 지도가 된다.

이는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김일성이 가장 많이 찾은 지역이 평북 창성인데, 100번 넘게 현지 시찰을 하고 북한 전국 지방 발전의 본보기로 삼았다. 그 외진 창성을 수없이 찾은 이유는 창성에 김일성이 제일 좋아한 특각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창성을 매우 사랑했다. 그는 가끔 동해안에 있는 원산특각과 함흥 서호특각을 찾았다.

스키를 좋아하는 김정은은 집권 초 겨울에 스키를 타려 삼지연을 자주 방문했는데, 그때 낡은 삼지연 시가지가 눈에 거슬렸던 것 같다. 김정은 지시로 지금 삼지연은 거의 새로 건설됐다고 할 만큼 천지개벽했다.

특각이 근처에 있으면 주변 지역 간부들은 늘 긴장하고 살 수밖에 없다. 언제 김 씨 일가가 들이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신 김 씨 일가는 특각이 없는 지역은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

김정은도 집권한 지 15년이 돼 가지만, 함경북도만 봐도 그가 시찰한 곳은 동해안을 따라 몇 군데밖에 되지 않는다. 특각이 주변에 없는 데다 도로 사정이 안 좋은 내륙 주민들은 평생 김정은을 직접 볼 기회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새로 지은 온포휴양소가 개장하면 북한 인민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줄지어 찾아올까. 2019년 김정은 지시로 축구장 200면 이상을 합친 면적의 터에 대규모로 건설된 양덕온천문화휴양지나, 지난해 건설된 원산갈마관광지구를 보면 답이 나온다. 모두 파리만 날린다.

돈을 벌지 못하는 휴양지나 관광지구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다. 선조들이 남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북한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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