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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각관계만 찾아다니는 당신에게 [.t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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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상대방이 언제 약혼자에게 돌아갈지 모른다는 사실은 어떤 안도감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이상하게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과 계속 연애를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여사친이 이성으로 보이면서 시작됐습니다. 그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저희가 멀어질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로서 자주 만나 오다 연애 감정을 느껴 고백했고, 상대 남자의 온갖 비난과 주변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상대에게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 다가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정은 여자의 몫이니까요.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 줄 알았는데 보통은 연애 중인 사람을 아예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더군요. 그러면 진짜로 단념이 된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지만 어쨌든 이 경험을 통해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은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또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변명하자면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아예 모른 채로 시작했습니다. 만난 지 한달 정도 됐을 때, 여자친구가 결혼을 전제로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부모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고 있지만 곧 정리할 거라고 해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년이 넘었습니다. 중간에 몇번 제가 데드라인을 주고 그때까지 정리가 안 되면 헤어지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사정하는 여자친구를 보며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상대 남자에게 또 수모를 당하면 어쩌나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여자친구가 사랑하지도 않는다는 그 남자 때문에 제가 물러나긴 싫습니다.



몇번 평범한 연애를 하기도 했지만 왠지 밋밋한 느낌이었습니다. 장애물이 있어야 사랑도 커지는 건지, 지금 여자친구를 잃으면 다시는 이렇게 진심으로 누구를 사랑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애정 결핍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준성(가명·32)





준성님의 사연을 읽으니 ‘사랑은 쟁취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누가 이 말을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검색도 되지 않습니다. 영화 대사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어쩌면 인류가 긴 시간 동안 직간접적으로 삼각관계를 경험하며 집단 무의식에 새겨진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를 독차지하기 위해 아빠를 밀어내는 오이디푸스 갈등 구조가 누구에게나 각인되어 있고, 이미 타인의 것이 된 사람을 빼앗는 과정을 운명적인 사랑이자 구원으로 그리는 드라마와 영화를 숱하게 접하니까요.



그런 걸 생각하면 준성님 말대로 임자가 있다는 게 사랑을 단념하는 이유가 되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합니다. 포기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승부를 피하지 않아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은 삼각관계의 목전에서 잘 돌아서는지 준성님이 느끼는 의아함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마음이 가는 걸 무엇도 막을 수 없다는 듯 돌진하는 기세와 상반되게 준성님의 모습은 아주 수동적입니다. 여자친구의 선택만 기다리는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말은 “진짜 사랑은 당신뿐”이라는 여자친구의 확인일 것입니다.



삼각관계에서는 ‘저 사람이야, 나야?’라는 질문을 상대방과 자신에게 끊임없이 반복합니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이라는 대답을 들으면 내가 누군가에게 절실한 존재라는 느낌이 생생하게 경험됩니다. 내 가치와 의미도 연장됩니다. “결정은 여자의 몫이니까요”라는 준성님의 말도 상대를 존중하는 말 같지만 스스로를 선택받는 위치에 두고 상대에게 선택권을 넘기면서 타인의 필요와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말인지도 모릅니다.



삼각관계 속에서 느끼는 강렬한 감정은 사랑과 혼동되기도 합니다. 삼각관계는 언제 들키거나 관계가 파탄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질투와 채워지지 않는 갈증,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인한 분노로 마음이 쉴 새 없이 요동칩니다. 그 뒤에 찾아오는 “진짜 사랑은 당신”이라는 확인은 모든 진통제를 능가하는 안도감을 줍니다. 그렇게 고통이 ‘진짜 사랑’의 증거로 해석됩니다.



반면 긴장이 없는 일대일 관계는 사랑의 공백으로 느껴집니다. 강렬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동반되어야만 사랑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안정된 관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진공 상태와 다름없습니다. 상대방에게 내가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없고, 상대방은 내가 없어도 잘 살 것만 같습니다. 제3자로 삼각관계에 있을 때보다 내 위치가 확고한 일대일 관계에서 스스로가 더 주변인으로 느껴지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평범한 관계는 밋밋하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준성님의 위치는 상대방에게 완전히 속해 있지도 완전히 밀려나 있지도 않은 후보의 자리입니다. 절반 정도만 발을 걸치고 있는 셈입니다. 평범한 관계는 밋밋해서 사랑 같지 않다고 하지만 어쩌면 친밀한 결합이 두려워서 무의식적으로 삼각관계를 계속 찾아다니는 건지도 모릅니다. 삼각관계는 애초에 완전한 밀착이 불가능하니까요.



상대방이 언제 약혼자에게 돌아갈지 모른다는 사실, 시간과 정서적 에너지가 분산되어 있다는 사실은 준성님을 안달 나게도 하겠지만 동시에 마음이 너무 깊어지는 것을 막아주기도 할 것입니다. 서로를 향한 몰입이 어려운 관계이니 혼자 남겨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사랑에 집어삼켜질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사회적 금기를 깨는 것도 불사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진하고 있지만, 이는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마음 깊이 두렵다는 사실을 준성님 자신에게조차 들키지 않으려는 위장일지 모릅니다.



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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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름 심리상담공간 숨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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