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다큐멘터리 <미쳤대도 여자야구>의 포스터. SBS 제공 |
이맘때면 울려 퍼지는 곡성이 있다. “아~야구 보고 싶다!” 체감상 가을 야구 끝난지 100일은 됐고, 2026년 프로야구 리그 개막일과 경기 일정표도 나왔다. 일주일에 6일 하는 야구 경기는 야구팬의 일상에 깊이 침투하여 저녁이 있는 삶을 앗아간다. 막상 개막하면 응원 구단을 막론하고 ‘화 많은 야구팬’이라는 밈을 실천하게 될 터지만, 야구팬들은 평화로운 여유보다 고통스러운 재미를 갈구한다. KBO리그의 흥행으로 야구팬 또한 급증한 가운데, 빠질 수 없는 주제가 바로 ‘야구와 여성’이다. 야구는 유독 젠더의 장벽이 높은 스포츠다. 야구는 대부분의 스포츠와 달리 여성 리그가 없으며, 취미의 영역에서도 몇 년 전까지 명백한 남초였다. 최근에는 여성팬이 늘어나면서 여러모로 야구 문화가 지각변동 중이다. 한편, 야구장에 존재하는 젠더화된 구획은 거칠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야구를 즐기는 주체로서 여성이 볼거리로 소비되거나, 진정한 팬이 아니라는 식으로 격하되는 점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야구를 하는 주체인 여성에게 그라운드에 진입하는 길은 완전히 막혀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굳건히 닫힌 문을 두드리는 여자 야구선수들이 있다. 1월4일과 11일 공개된 SBS의 2부작 다큐멘터리 <미쳤대도 여자야구>와, 채널A의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이다.
“여자야구? 미쳤다고 하죠.” <미쳤대도 여자야구>의 오프닝 대사는 대중의 ‘평범한’ 인식이자 여자야구 선수들이 평생 몸으로 부딪어온 견고한 편견의 벽이다. 그리고 선수들의 자신만만한 발언이 뒤따른다. “내가 더 잘하는데.”, “미쳤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가슴이 뜨거워지는 시작이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투수 김라경, 유격수 박주아, 포수 김현아는 70년만에 다시 열리는 미국 프로 여자야구 리그에 도전하고자 입단 테스트인 트라이아웃에 참가한다. 김라경은 현재 일본 프로구단 산하의 여자 야구팀 ‘세이부 라이온즈 레이디스’ 소속이다. 국내에는 여자야구 리그가 없어서 일본 리그에 도전했다. 하지만 숙소 지원이 없고, 야구 선수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평일에는 요양사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서 맨몸으로 길을 뚫는 김라경의 고군분투는 대중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김라경의 학벌에서도 드러난다. 여자 야구선수로서 고등학생 이후로도 야구를 계속할 방법을 찾던 김라경은, 특기생이 아닌 학생도 야구부 대학 리그에서 뛸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이 서울대라는 사실을 알고 일반 입시로 진학에 성공하기도 했다. 국내 여자야구의 에이스이자 야구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는 김라경에게, 여자야구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이 너무 누추하다. 포수 김현아와 유격수 박주아는 아직 대학생이다. 프로 리그가 없는 상황에서 여자야구는 취미와 아마추어 사이에서 애매한 위치고, 취업이라는 현실의 벽이 성큼 다가왔다. 그러나 생업과 병행하면서도 빠지지 않는 주말 훈련의 강도나 야구를 향한 열정은 결코 애매하지 않다.
다큐멘터리는 세 사람의 야구를 향한 열정을 인터뷰로 구성하고, 트라이 아웃에 참가하는 현장을 착실하게 따라간다. 전세계에서 600명이 지원서를 낸 트라이아웃 현장에는 300명이 모였다. 인종도, 연령대도, 체격도 다양한 여성들이 공을 던지고 치고 달리는 모습은 협소한 인식 체계를 부순다. 1차, 2차 테스트를 통과한 선수들은 마침내 구단의 지명을 받을 기회를 얻는다. 결과는 뉴스로도 대대적으로 보도 되었지만, 다큐멘터리에서 직접 확인하기를 권한다. 넷플릭스와 SBS 홈페이제서 볼 수 있다. 항저우 여자야구 아시안컵에 출전한 국가대표팀의 여정을 담은 2편에도 다양한 국가에서 온 여자야구 선수들이 등장한다. 전세계에 여자 프로야구가 있는 나라는 일본뿐이니, 그 많은 나라의 참가자는 모두 직업이 따로 있는 데다 그저 야구가 좋아서 그 모든 과정을 감내한다는 뜻이다.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에는 영화 <야구소녀>(최윤태, 2019)의 주연 배우 이주영이 참여했다. <야구소녀>는 여자 야구선수 ‘주수인’이 고등학교에서도 야구를 이어가며 최초로 프로 구단에 입단하려는 도전을 담았는데, 영화 대부분이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에게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야구 선수”인 안향미의 삶. 잠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해보자. 안향미는 1997년 교육청 규정에 청원을 내면서까지 덕수정보고에 야구선수로 입학한, 그 당시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야구선수다. 하지만 따돌림과 소외 속에서 연습 상대조차 찾지 못한 채 야구단 생활을 해야 했다. 안향미는 감독에게조차 “여자가 야구하면 재수 없다”라는 이유로 배척 당하다가, 처음으로 고교야구대회 4강전 선발투수로 출전했다(안향미 회고, 2007년 11월22일 한국체육학회지 24쪽). 1999년 당시 중앙일보의 스포츠 1면 탑 기사는 “앗! 마운드에 여자가 나왔잖아”. 뭐…악어떼라도 나온 줄? 그러나 1905년 국내 야구가 도입된 이래 전국 공식 경기에 여고생이 마운드에 오른 것은 처음이며, 일본과 미국에서도 드문 기록이니 그 호들갑도 이해는 된다. 안향미는 2002년 일본 여자 야구팀 드림윙즈에 입단하는데, 그때 활성화된 일본의 여자야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여자야구의 선택지가 열려있는 일본에서는 여자가 야구를 한다는 사실을 굳이 설명할 필요 없었다는 안향미의 회고가, 여전히 여자가 무슨 야구냐는 질문과 배척 속에 서 있는 지금의 선수들과 겹쳐진다.
채널A 예능 <야구여왕> 포스터 |
채널A의 <야구여왕>은 은퇴한 운동선수들이 모여 야구단을 조직하고 여자야구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이다. 박세리가 단장, 추신수가 감독을 맡았으며 각 분야에서 정상을 경험한 선수들이 참여했지만 야구는 단기간에 실력을 끌어올리기 어려운 종목이다. 개인의 뛰어난 역량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배우며 팀 ‘블랙퀸즈’는 차근차근 손발을 맞춰가는 중이다. 깨지고 부서지는 ‘블랙퀸즈’의 성장 서사와 개성 넘치는 캐릭터만큼이나 눈길을 끄는 것은 매회 그들과 경기를 벌이는 여성 사회인 야구팀이다. 여자는 야구를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세상에서, 그래서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야구장 속 여성의 자리는 응원석 아니면 인터뷰어 정도로 제한되는현실에서, “충격! 야구하는 여성 실존!” 현재 여자 사회인 야구팀은 49개, 참여하는 선수는 1100명이 넘는다. 전체적으로 보면 매우 적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은 수다. 어떤 담론이나 명제가 반드시 참은 아니며 오히려 목적에 따라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지우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블랙퀸즈의 첫 번째 대결상대는 경찰청 여자 야구단이었고, 이 팀에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메달리스트들이 속해 있다. 야구단 레이커스의 유순열 선수는 47세에 야구에 입문해 50세에 국가대표이자 국제여자야구대회 최고령 선수로 활약했으며 <야구여왕>에서 ‘환갑의 야구도사’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야구계 ‘금녀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스포츠계의 여성 종목은 언제나 남성 종목과 비교의 대상이고, 남성 종목에 비해 체력이나 실력이 떨어지는 ‘하위 종목’으로 여겨지기 일쑤다. 무엇을 좋고 우월하다고 평가하는 데에는 문화적 가치체계가 개입한다. 여자야구 감상에도 꼭 남자 야구와의 비교가 따라붙는다. 익숙한 만큼 남자 야구와 비교하는 것은 학습된 반응일 수 있지만, 여자야구의 지향점은 얼마나 남자 야구와 비슷한지가 아니다. 예를 들어, <미쳤대도 여자야구> 2편에서 한국팀은 일본과 대만에 패하면서 4위로 마무리했다. 객관적으로는 초라한 성적이다. 하지만 선수들은 일본을 상대로 처음으로 득점을 했다거나, 번번이 발목을 잡히던 대만에게 잠깐이나마 역전을 경험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과거 안향미 선수는 여자야구단을 처음 창단해서, 자비로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 참가했다. 일본과의 경기에서 53:0으로 대패하고 귀국하면서 국내에서 나라 망신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동시에 큰 점수 차에도 끝까지 경기를 포기하지 않은 근성이 화제였다. 안향미의 도전이 그 자체로는 실패였으나 결국 한국 여자야구연맹의 탄생으로 이어졌듯 야구여자 국가대표팀의 행보는 또 다음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서사 또한 여자야구의 고유한 매력일 수 있다.
금기와 기준의 벽을 타고 오르내리며 제각각의 삶과 열정을 피우는 여자 야구선수들은 그 거절과 격하와는 무관하게 존재한다. 때로는 그 기준을 넘어서려는 패기로, 때로는 ‘너희끼리 만든 기준’은 알 바 아니고 가능한 만큼 최선을 다하는 태도로, 또렷하게 말이다. 새해에는 야구를 보고 또 하는 주체로서 야구장에서 자유롭게 활약하는 여성을 미디어에서 더 많이,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참고자료 : 하웅용‧최영금, ‘최초 여자야구선수 안향미의 생애사’, 한국체육학회지, 한국체육학회, 2009.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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